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장래 희망 순위를 살펴보면 시대별로 어떤 직업군이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알 수 있다. 개발이 한창이던 80년대에는 과학자가 1순위였다. 교사와 의사 및 판-검사 등 법조계 직업군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2017년, 교육부가 발표한 초등학생 장래희망 순위에 따르면 가수가 상위권으로 올라왔으며 과학자는 9위로 떨어져 간신히 10위권 안에 발을 걸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달과 함께 부각된 아이돌 가수들의 영향이 컸다. 그 외 스타급 요리사들로 인해 셰프라는 직업도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10위권 범주에 들진 못했지만 최근 들어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란에 자주 올라오고 있는 인기직업이 있다. 바로 '유튜버'다. 인터넷 1인 방송이 인기를 얻고 있는 시대. 인터넷 방송이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하기 시작한데다 능력에 따라 연간 수억 원 대의 수입을 올리기도 해 '즐기면서 일하고 싶어하는' 요즘 아이들의 취향에 딱 맞아떨어진다. 이 분위기를 타고 '유튜버' 등 인터넷 방송인들이 아예 주류 방송계까지 진입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인 날로 부각돼
인터넷을 활용한 생방송 콘텐트는 '나는 꼼수다'를 비롯한 인기 프로그램의 등장과 함께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부터 아프리카TV나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며 조회수를 높여 광고를 따내고 돈을 버는 방식이 정착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 방송 진행자들까지 화제가 되거나 스타덤에 오르지는 못했다. 오히려 욕설과 막말 및 선정적인 방송으로 문제가 되는 이들이 더 크게 부각됐다. 그래서 인터넷 방송 자체에 대한 선입견도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조회 수, 구독자 수를 늘려야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인터넷 방송 진행자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눈길을 끌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데에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콘텐트로 승부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한 쪽에서는 수위 높은 언행과 자극적인 내용으로 시청자를 모으려는 문제적 방송도 속출했다.

그 와중에 탄탄한 팬층을 거느리며 인터넷 상에서 놀라운 인지도와 높은 수입을 확보한 이들도 있다. 인터넷 방송이 가능한 플랫폼마다 이런 스타급 인터넷 방송인들이 있으며 이들은 'BJ'(Broadcasting Jockey) 또는 '크리에이터'라는 표현으로 불리고 있다. BJ는 주로 아프리카TV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지칭하며, 크리에이터는 유튜브에서 방송하는 유튜버들을 부르는 수식어다. 혼자서 방송 전반의 일들을 도맡아한다는 차원에서 1인 방송 크리에이터라고 부른다.

앞서 지상파에서 인터넷 방송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기획이 이뤄졌던 적이 있다.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2015년부터 약 2년 동안 인기리에 방영된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다. 연예인부터 각계 전문가나 유명인들을 캐스팅해 1인 방송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게 만들고, 각 1인 방송의 조회 수 등을 계산해 상호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인터넷 방송의 영향력과 인터넷 방송 콘텐트의 과감하고 참신한 시도 등을 접목시킨 기획이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전후해 인터넷 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BJ나 크리에이터들을 방송에 출연시키는 등의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이 안방극장의 스타로 떠오르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면허나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정식 방송인'이 아니라는 선입견에 시달려야 했고 이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직업이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다. 혼자서 방송 수위나 자신의 방송이 미칠 영향에 대한 큰 고민 없이 일해 왔던 인물이 많아 조심성이 부족하고, 또 주류 방송에 나와 보여줄 수 있는 역량 역시 한정적이란 분석이 나오곤 했다.

#'랜선라이프' 인터넷 방송인 전면에 내세워
이처럼 인터넷 방송으로 화제가 됐던 이들의 안방극장 진출은 좀처럼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리지 못했다. 최근에도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폐지 결정되고 시사인 기자 주진우가 출연한 MBC '스트레이트'가 4주 연속 결방되는 등 인터넷방송 출신들을 기용한 지상파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소위 '센 발언'으로 팬층을 형성하고 인기를 얻은 이들이 지상파로 건너와 기존 스타일대로 방송하다 '공공성을 훼손했다'는 말을 듣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주류 방송인이 된 김구라도 무명 시절 인터넷 라디오에서 욕설로 도배된 방송을 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인기 MC로 성장한 뒤에도 인터넷 방송 때 했던 발언들이 문제가 돼 곤욕을 치르곤 했다. 인터넷 방송 출신으로 주류 시장으로 진입한 김구라의 케이스가 있음에도 그 과정이 워낙 녹록치 않았기에 이후 유사 선례가 나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류 방송에서는 인터넷 방송인들을 끌어들여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기획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 방송의 일각에서 문제적 인물들이 진을 치고 있는 건 사실이나 그만큼 상당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수년에 걸쳐 꾸준히 고유의 콘텐트를 만들어 탄탄한 팬층을 형성하고 방송 내용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다.
최근 MBC '라디오 스타'에서 화제가 된 '감스트'라는 닉네임의 출연자는 아프리카TV의 축구 관련 인터넷 방송 BJ다. 축구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경쾌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중계 덕분에 특히 20대까지 젊은 층에 인기가 많다. '라디오 스타'에서도 연예인 못지않은 말재주로 방송의 재미를 살려 눈길을 끌었다.
JTBC는 아예 인터넷 방송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리얼리티 예능을 론칭했다. 인터넷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살아간다는 뜻에서 제목도 '랜선 라이프'로 지었다. 이영자와 김숙 등 잘 나가는 MC들이 중심을 잡고 양 옆에 인터넷 방송인들이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그들이 방송을 준비하는 과정과 사생활을 VCR을 통해 공개한다. 소위 하위문화로 분류돼 주목받지 못하던 인터넷 방송을 주류로 끌어올려 이 문화를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보는 콘셉트다. 게임방송으로 180만 명에 육박하는 구독자를 모은 '대도서관', 대도서관과 부부 사이로 90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를 보유한 뷰티방송의 '윰댕', 그리고 '인터넷 먹방'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구독자 250만 명을 모은 '밴쯔' 등 인기 인터넷 방송인들이 출연한다. 대도서관이 지난해 인터넷 방송으로 17억 원대의 수입을, 밴쯔도 10억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인 인물이다. KBS 2TV '해피투게더3'에 출연한 키즈 전문 인터넷 방송인 '지니언니'도 지난해에만 20억원을 벌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하위문화로 치부되던 인터넷 방송인이 노력 여하에 따라 상당한 수입을 거둬들이고 영향력을 떨칠 수 있는 '직업'이 된 것이 명확한 사실이다. 물론 여전히 명과 암이 뚜렷하지만 이젠 이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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