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가마솥으로 변한 쪽방…한낮 실내온도 40도 이상 치솟아

불볕더위 속 쪽방 주민들 “선풍기 고장나면 죽을만큼 고통스러워 ”

대구의 낮 최고기온이 35.6℃를 보인 18일 오후 서구의 한 쪽방 실내 온도가 아침부터 달궈진 열기로 인해 40도가 넘어가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대구의 낮 최고기온이 35.6℃를 보인 18일 오후 서구의 한 쪽방 실내 온도가 아침부터 달궈진 열기로 인해 40도가 넘어가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쪽방촌 주민들은 숨도 쉬기 어려운 폭염을 맨몸으로 버틴다.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단칸방에서 주민들은 후끈한 열기와 매일 사투를 벌인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은 그늘을 찾아 거리로 나서지만, 거동이 불편한 홀몸노인들은 작은 방 낡은 선풍기에 의지해 기나긴 여름을 견뎌낸다. 쪽방에서 직접 버텨본 한나절은 한증막보다 뜨겁고 축축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적막한 방 안에 잔인하게 내려앉은 열기

낮 최고기온이 35℃를 훌쩍넘은 18일 오전 대구 서구 비산7동 한 단층 쪽방. 10㎡ 남짓한 작은 방안에서 낡은 선풍기가 왱왱 돌았다. 가로 60cm 길이의 창문을 열었다. 창문 밖으로 마주한 건 옆집 벽면. 바람이 스며들 여지도 없을 정도로 바짝 붙었다. 편의점 냉장고에서 나온 생수는 30분도 되지 않아 미지근해졌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다. 목 뒤로 흐른 땀방울이 등을 타고 내려갔다. 그마나 한 줌 바람이라도 보내던 선풍기를 껐다. 선풍기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인내심이 바닥날 무렵 공용화장실로 뛰어갔다. 시원한 수돗물을 틀고 온 몸을 씻었다. 그러나 청량감도 잠시, 화장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땀방울이 줄줄 온몸을 타고 내려갔다.

방바닥에 누워 눈을 감으니 바지 속으로 땀이 흘러내렸다. 개미떼가 다리 위를 기어가는 것처럼 근질거리고 불쾌하다. 더위가 절정에 이른 오후 2시 49분. 온도계는 43.1℃를 가리킨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깥으로 나섰다. 은행은 천국이다.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히며 멍하게 앉아있었다. 30분쯤 흐르니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운 복개도로 아래로 향했다. 할머니 4명이 모여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다. 잠시 안부를 물은 후 모두 말을 잃었다.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거동 불편한 주민은 선풍기가 유일한 생명줄

쪽방촌 주민들은 집안보다 바깥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늘진 골목이나 공원, 다리 아래에서 시간을 보낸다. 몸이 불편해 외출조차 힘든 주민들은 낡은 선풍기 한 대가 유일한 버팀목이다.

17일 오후 7시 대구 서구의 비산7동 쪽방촌. 이곳은 13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대구 최대 쪽방 밀집 지역이다.

주민 배도석(66) 씨가 쌀포대로 부서진 목을 지탱한 선풍기에 의지하고 있었다. 이틀 전 밖으로 나가려다 정신을 잃고 선풍기 위로 쓰러진 탓이다. 부러진 선풍기에서도 용케 바람이 나왔지만 배 씨 얼굴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배 씨는 "16일 하루동안 연거푸 네 번을 기절해 병원에 갔다. 열 탈진이라는데 더위를 피할 방법이 없다. 기온이 오르면 온 몸이 말도 못하게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거동이 어려운 한상길(54) 씨도 폭염을 방안에서 견딘다고 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가 불편한데다 얼마 전 길에서 넘어져 심한 어깨 통증까지 겪고 있는 탓이다.

한 씨는 "무더위 쉼터라도 가고 싶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일도 못해서 하루하루 생계가 걱정"이라고 했다.

정진아 대구쪽방상담소 간사는 "한시적인 관심이 아니라 1년 내내 돌봄이 필요할만큼 주민들의 삶이 열악하다"며 "이들이 자력으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활 기회가 늘어나야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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