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재난시대 대구경북은 지금] <3>재난예방활동 현장을 가다

화재시 탈출구 막히거나 화재경보기 고장난 곳 상당수
국가안전대진단 결과에서도 1천10건의 지적 쏟아져
정부 점검도 중요하지만 소유주의 안전 경각심이 우선

'2018 국가안전대진단'이 시작된 지난 2월 5일 오후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 관련상가 A동 소방기계실에서 대구시설공단 재난안전팀과 시민점검단이 옥내 소방용 펌프 작동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다. 매일신문DB.

18일 오후 대구 북구의 한 여관. 북부소방서 김경열 조사팀장이 객실 구석구석을 살폈다. 더운 날씨에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김 팀장이 객실 창문을 열자 바깥쪽에 알루미늄 섀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섀시에는 한 두뼘 정도의 창문이 나 있었지만 바깥으로 45도 정도만 열려 도저히 탈출이 불가능해 보였다.

김 팀장은 "불이 났을 때 2, 3층의 경우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면 목숨을 건질 수 있는데 이렇게 막혀 있으면 안전지대를 눈앞에 두고도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난의 위험은 생활 주변 곳곳에 잠복해 있다. 다양한 재난 위험 요소들을 사전에 파악해 예방 조치를 하는 것이 실제 재난 발생 시 피해를 줄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시민들의 안전 의식과 책임감은 재난의 위험을 낮추는 가장 큰 요소다.

◆화재안전특별조사 따라가보니…탈출구 막히거나 화재경보기 고장 다수

소방 및 건축공무원, 전기 및 가스안전 민간전문가 등 3~5명으로 구성된 화재안전특별조사팀과 함께 다중이용시설을 돌아봤다. 화재안전특별조사팀은 35개반으로 꾸려져 이달부터 내년 말까지 대구시내 취약시설 2만여곳을 점검한다.

이날 조사팀은 오래된 공단지역 맞은편에 자리잡은 3층 건물의 안팎을 꼼꼼하게 들여다 봤다. 이 건물 1층에는 식당 및 마트, 세탁소 등이 들어서 있고 2,3층은 여관으로 객실 20개를 갖추고 있다.

소방 담당인 김경열 팀장은 소화시설 및 경보·피난장치 등을 점검하고 화재 시 문제가 될 수 있는 가연성 블라인드나 벽지 사용 여부 등을 꼼꼼히 확인했다. 구청 직원 이모 씨도 건축물 대장을 바탕으로 불법 증ㆍ개축 및 용도 준수 여부 등을 살폈다.

이 씨는 "1975년에 지어진 건물이라 건축물 대장만 있고 도면이 없다. 일단 대장상 기재된 면적이나 건물용도 등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가스·전기안전 담당자 역시 건물주가 계약전력을 준수하고 있고 액화천연가스(LPG)통 보관함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기록을 남겼다.

건물주이자 여관 업주 변모(58) 씨는 여관을 공단 근로자들을 위한 달셋방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변 씨는 "건물이 오래되다 보니 요즘 강화된 안전기준에는 미달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매출이 많이 나오면 대응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점검 끝에 지적 사항도 속출했다. 건물 외벽에 새로 설치한 통유리형 섀시는 대피를 방해했고, 화재경보 보조경종도 부서져 있었다. 3층 비상구는 건물 밖에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객실 내에 피난안내도와 휴대용 비상조명등이 없는 점도 문제였다. 층별로 갖출 것을 권고하는 완강기도 전혀 없었다.

업주 변 씨는 "방염인증이 없는 실크벽지가 화재시 유독가스를 뿜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알았다. 소방점검에서 이렇게 상세히 살펴보고 유의사항을 알려준 건 처음"이라며 "지적 받은 부분들은 전체적으로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이 날 점검 결과에 따라 건물주에게는 20일간의 자진 개선기간이 주어졌다. 이후에도 일정기간 개선이 없을 경우 행정명령 및 이행부담금 부과로 이어진다.

◆국가안전대진단에서 지적 사항 1천건 웃돌아

안전취약지역은 다중이용시설과 공동주택에 집중돼 있다. 대구시가 지난 2~4월 공공 및 민간시설 1만1천626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가안전대진단에서 1천10건의 지적 사항이 쏟아졌다.

특히 전통시장 및 대형숙박업소 등 다중이용시설분야에서 375건으로 가장 많은 지적이 나왔다. 지붕철골 부식이나 천장 균열, 소화전 불량 및 문어발식 콘센트 설치가 대부분이었다.

이어 공동주택 및 대형건축물에서도 소화전 앞 물건 적치, 옥상방수 불량, 외벽균열 및 철근노출 등 246건의 지적이 제기됐다.

요양병원이나 찜질방, 중소병원 등에서도 화재 취약 요소로 109건이 지적됐다. 소화기 압력이 부족하거나 유도등 설치가 제대로 돼 있지 않고 화재 확산을 막아주는'도어클로저'가 고장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체육시설 및 공공도서관 등 생활여가 분야에서도 방화셔터가 작동하지 않거나 건물이 노후화되는 등 106건의 지적이 나왔다.

대구시 안전관리과 관계자는 "대형 사고 직후 점검임에도 안전무시 관행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소방도로에 불법주차하거나 LPG통이 보호시설 없이 설치된 경우, 소화전 등 소방시설 앞에 물건을 쌓아놓는 경우 등이 흔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시는 올 연말까지 12억원을 투입해 스프링클러 설치가 시급한 대구정신병원과 노후전기시설로 인한 문제가 잦은 동부도서관의 시설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또 보수가 필요한 시설 40곳에 대해 재난안전특별교부세 74억7천만원을 신청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안전 점검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건물 소유주가 경각심을 가지고 안전을 챙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구경북연구원 최용준 박사는"우리나라는 백화점이나 영화관 등 대형건물을 제외하면 방재 계획이 미비한 곳들이 거의 대부분"이라며 "건물주 스스로가 시민들의 안전과 자신의 재산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을 갖고 관리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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