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유독 '외모'에 대한 집착이 두드러진다. 외모가 스펙이고 계급이 된다. 외모가 개인의 우열 뿐 아니라 인생의 성패까지 좌우한다고 믿다보니 어린 학생들까지도 방학이면 성형외과로 달려가는 '성형 공화국'이기도 하다.
외모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고, 획일화된 기준으로 외모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사회 분위기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근 이런 천편일률적인 기준을 거부하고 나만의 개성을 존중해 달라는 '탈(脫) 코르셋', '탈 갑옷'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으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페미니즘이 '미투(#MeToo) 운동'을 거쳐 이제는 '탈 코르셋' 운동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고, 남성들 역시 이런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남성들에게 강요되는 획일화된 젠더 관념을 벗어던지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강요된 '꾸밈 노동' 거부합니다

코르셋은 16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여성들이 상체가 날씬해 보이도록하기 위해 입었던 보정속옷이 바로 코르셋이다. 외적으로 아름다워보이긴 하지만 코르셋이야말로 여성 억압의 상징이기도 하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옷이었던지 내장이 뒤틀리고 파괴되거나, 갈비뼈가 부러져 숨지는 경우까지 있었다.
'탈 코르셋' 운동은 여성을 억압하는 각종 문화를 벗어던지자는 것이다. '여성스럽다'는 사회적 정의를 거부하고 세상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자신을 꾸미던 것들로부터 벗어나 외모 등을 꾸미지 않을 것을 주장한다. 소위 '꾸밈 노동'에 반대하면서 과도한 다이어트, 짙은 화장, 긴 생머리, 여성스러운 의상 등을 거부하고 여성의 주체성, 자유를 찾자는 취지다.
특히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 불법촬영·유포 사건의 성(性) 편파수사 논란에서 촉발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 일명 '혜화역 시위'가 다음달 4일로 4회째를 맞으면서 페미니즘 의제에 대한 세간과 언론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더 커진 상황이다.
그 좋은 예가 얼마전 TV 아나운서들이 뉴스를 진행하면서 안경을 쓰고 나타나 화제가 된 사건이다. 그동안 여자 아나운서는 눈이 아무리 나빠도 뉴스를 진행할 때 안경을 쓰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존재했고, 이들은 이런 금기를 깼다. 이후 탈 코르셋 운동이 확산하면서 여성들은 긴 머리 대신 쇼컷트로 짧게 자른 머리 사진을 올리고, 화장품을 부수거나 민낯 사진을 올리고, 몸을 옥죄는 속옷을 벗어던지는 등의 지지를 보내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 안에는 암묵적으로 여성의 외모에 대한 억압이 존재해 왔다. 화장을 안 한채 회사에 출근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어디 아프냐"는 걱정에서부터 "뭐라도 좀 발라라"는 핀잔까지 들어야 하고, 직업군에 따라 몸에 쫙 달라붙는 의상을 입고 고된 육체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다양한 업계에서 암묵적으로 여성들의 외모를 규정하고 있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탈 코르셋 운동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다. 1968년 미국에선 미인대회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치마와 속옷 등을 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강요된 '여성성' 속에 불편을 겪고 있다. 지난해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주연을 맡은 엠마 왓슨은 코르셋 착용을 거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여성들의 이런 움직임과 함께 남성들 사이에선 '탈 갑옷'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코르셋과 유사한 개념으로 '갑옷'은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남성성을 의미한다. '갑옷'이라는 표현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웹툰 '남자는 갑옷을 입는다'에서 따온 것이다. 웹툰은 남성들도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우리 사회의 피해자였음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이미지의 압박 또한 적지 않다. 남성들은 '남자가 이것도 못 하냐', '남자가 소심하게 왜 이러냐'는 등의 말을 평생 들으며 그 기대에 부응하려 기를 쓰고 살아가야 한다. 여성성에 대한 획일적 이미지가 강하게 요구되는 사회인만큼 반대 급부로 남성성에 대한 강요 또한 심하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지금까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남성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자 화장실에 마음대로 들어오는 여자 청소부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은 오로지 남자 직원의 몫이었던 무심코 지나쳤던 기존의 성적 불평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탈 코르셋, 탈 갑옷 운동이 성별 대결 양상으로 흐를 조짐을 보이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남성들은 탈 코르셋 운동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고, 반대로 여성 전용 커뮤니티에서는 탈 갑옷 운동에 대해 조롱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특히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워마드나 기존에 지속적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온 일베 등 일부 도를 넘어선 극단적 마초주의자 혹은 페미니스트들의 행동이 이런 성대결 양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꼴이다.
결국 탈 코르셋이든 탈 갑옷이든 그 근본 취지는 강요된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받으며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권리를 달라는 요구다. 강요된 꾸밈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개인의 선택과 행복으로 기꺼이 예쁘게 꾸밀 권리 등 다양한 미적 기준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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