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기무사 문건과 기무사 개혁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계엄 업무는 기무사 설치 목적 아냐
진영 논리로 군 정치적 중립성 위반
유사시 국회'언론 장악, 쓴웃음 나와
국정에 영향 끼치려는 행태 막아야

뜨악하고 어이가 없었다. 이른바 '기무사 문건' 전문을 읽어 본 첫 느낌이다. 뒤이어 떠오른 것은 '시대착오적'이란 단어였다. 2017년 3월 작성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 방안' 문건은 딱 그 정도이다. 서술 양식이나 내용 등에서 1980년대 군에서 접했던 문서와 거의 대동소이하다. 상황 인식과 그에 따른 대응 방안 등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와 국민의 수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국군기무사령부의 지체된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해야 할까. 청와대가 엊그제 새로 공개한 세부계획 역시 같은 연장선에 있다.

문건을 놓고 일각에서는 친위 쿠데타 또는 내란 음모라고 연일 성토한다. 비상시에 대비한 군의 참고자료일 뿐이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일단 과격시위에 대한 군의 비상계획이라고 최대한 선의로 해석하자. 그래도 문건의 문제점은 변하지 않는다.

우선 왜 '기무사'인지 의문이다. 기무사의 주요 임무는 5가지이다. 군사보안 및 군 방첩업무, 군 및 군 관련 첩보의 수집처리, 정보작전 방호태세 및 정보전 지원, 군사법원법에 규정된 특정 범죄 수사, 국방 정보통신 기반체계 보호 지원. 기무사 홈페이지의 '부대 임무'를 옮긴 것이다.

대통령령인 국군기무사령부령 1조에 의하면 '군사보안, 군 방첩 및 군에 관한 첩보의 수집 처리 등에 관한 업무 수행'이 기무사의 설치 목적이다. 한마디로 '계엄 업무'는 기무사의 부대 임무가 아니다. 기무사가 선제적으로 했건 윗선의 지시로 했건 차이가 없다. '기무사가 그런 일을 하면 어때'라는 생각이라면 문제가 더 크다.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행세하는 기무사의 행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도 심각하다. 우리 헌법에까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 준수'를 규정하게 된 까닭은 모두가 알고 있다. 문건에는 왜곡된 인식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진보(종북)세력이라는 단어부터 그렇다. 진영 논리를 떠나 이른바 진보와 종북세력은 엄격히 구분해야 마땅하다. 국회의 위수령 폐지 시도를 무력화할 방안을 강구한 것이나, 유사시 국회와 언론기관 장악 대책 등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쓴웃음을 짓게 한다. 정치환경이나 국민의 의식, 언론 환경 등은 1980년대 국군보안사 시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행이 불가능한 탁상공론을 펼치는 기무사만이 그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지 안쓰럽기까지 하다.

대통령의 지시로 독립적인 군 수사기관이 수사를 시작했다면 청와대도 상황 전개를 지켜보아야 마땅하다. 세부계획 등을 공개하면서 추후 철저한 수사를 주문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군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우선되어야 한다. 기무사 문건 사태의 핵심은 기무사를 기무사답게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이다.

기무사는 말 그대로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비밀을 지켜야 할 중요한 일'을 하는 기관이다. 기무사가 홈페이지를 개설할 정도라면 의식 자체는 상당히 변화했다고 본다. 문제는 체질화된 기무사의 월권적 행태를 바로잡는 일이다. 군과 관련된 모든 일에 간섭하고 국정운영 전반에 영향을 끼치려는 행태를 막아야 한다. 기무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단에 이어 확고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기무사령부는 건군 이후 전 공안기관 검거 간첩의 43%를 검거하는 등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국가안보의 최일선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헌신하고 있습니다." 기무사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공적이다. 군 보안과 방첩업무에만 헌신하는 기무사. 기무사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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