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남북, 다른 길 닮은꼴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을 넘겼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남북 분야가 그렇다. 강산이 갈라진지 73년 세월 속에, 그것도 단일 정부에서 일어나는 남북 변화로는 가장 역동적인 듯하다. 그야말로 북한 말처럼 '씨엉씨엉'(성큼성큼)이다.

자연히 북한 자료를 살필 기회가 늘었고 놓친 남북 모습 비교도 잦다. 12명 대통령을 수반으로 선거한 남한과 세습한 김씨 3명이 영도한 북한의 지난 세월은 분명 '다른 길'인데도 어두운 '같은 꼴'이 숱해 흥미다. 남북이 외세로 38선 허리 잘렸음에도 이러하니 역시 한 뿌리, 두 체제의 한 민족임을 공감(?)한다.

먼저 수도인 두 도시와 나머지 지방과의 심각한 격차의 고착이다. 지금 광역행정구역은 한국 17개 시'도, 북한 12개 시'도이지만 사실상 서울과 평양에 모든 자원이 쏠린다. '특별시' 서울 빼면 모두 시골로 '지방 식민지'이듯, '직할시' 평양을 벗어나면 지옥 즉 '나락'(태영호,'3층 서기실의 암호')인 점이 같다. 과거에는 남북 모두 수도 밖 삶도 살 만했지만 이젠 아니다. 다만 서울은 맘대로 살 수 있지만 평양은 함부로 그럴 수 없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젊은이의 경제적 빈곤도 마찬가지다. 남(南)은 재벌, 대기업, 귀족노조 기업, 공기업 같은 알짜 일자리의 대물림으로 금수저가 유지·재생산되나 '88만원 세대'와 흙수저는 절망의 늪이다. 천민 자본주의가 낳은 결과다. 북한은 꽃제비, '장마당 세대' 젊은이의 짊어진 경제적 짐이 무겁다. 지상낙원을 외친 세습 독재 사회주의 허구가 자초한, 수백만 주민이 굶어죽고 국가 보호망이 붕괴된 '고난의 행군'의 산물이다. 희망의 탈출구가 좁기는 양쪽 모두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 실종도 현실이다. 빈 손에 교육으로 빈곤도 벗고 위로 올라 '개천에서 용이 나던' 세월이 '아, 옛날이여!'가 된 남처럼 북녘도 역시다. 남의 빈익빈 부익부와 계층의 고착화처럼, 북한도 세습 김씨 왕조의 백두혈통에 당 간부 자녀 등 평양 특권층의 세상이다. 다만 친일(親日) 후손이 힘 쓰고 항일독립운동가 후손이 푸대접받는 남과 달리 북은 항일(抗日)투사 후손의 사람 대접은 대를 잇거나 각별하다.\

두 강산에 분명한 편가르기도 있다. 여러 연(緣)을 앞세운 탓에 능력과 사람은 뒷전이다. 이념, 사상, 진영 논리에 매몰된 '내 편'과 '네 편'에 치우친 인사 정책은 남북 모두 질긴 적폐이다. 이를 위한 수단이 청산이냐, 숙청이냐는 깃발만 다를 따름이다. 명분은 같지 않아도 '내 편 챙기기'의 속셈은 하나다.

국방의 근간인 군부 부패도 그렇다. 60만 병력의 남한은 방산비리 등으로 이미 알려진 터다. 120만 병력의 북쪽 역시 "장비는 낡고 노후했고 기름은 다 빼돌려 먹어 장부와 어긋났고, 병사들은 굶주리고 있었"(태영호, 앞의 책)을 정도니 남북 모두 부패의 깊이와 넓이를 알 만하다.

여기에 남북을 휘감은 우려스러운 최근 경제 흐름도 닮고 있다. 자본주의 외길이나 3대 세습의 외곬 사회주의 두 길 모두 지금 경제로 죽을 쑤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의 새로운 경제 틀을 제시한 출범 2년의 문 정부나, 개혁개방을 노리는 출범 10년의 김 정권 모두 위태롭다. 물론 북쪽이 더욱 심각하지만 노동신문의 22일 보도처럼 "경제위기가 심화되어 각계의 우려가 커가고 있"는 문 정부도 걱정은 다르지 않다.

남북 자료를 훑으며 만난 이런 닮은 꼴이 씁쓸하다. 하지만 어둠 뒤엔 빛이 기다리듯 남북을 아는 만큼 나아갈 길은 더욱 넓어지리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북한 소식을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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