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역 앞에서 남쪽으로 곧게 뻗은 거리. 오른 편으로는 화려한 술집과 고급식당들이 즐비한 향촌동, 왼편으로는 외국 상품이 가득한 양키시장과 양장점, 극장과 서점과 그리고 금은방들의 가계거리 중앙통이다.
조선시대에는 과거보러 한양 가던 영남선비들, 삼남(三南)에서 약령시장 찾아오는 상인들, 1945년 9월 29일 귀국열차가 대구역에 들어오다 충돌하여 73명 죽었을 때 가족들이 오열하던 길, 46년 10.1폭동 때는 공산주의자들이 총칼과 몽둥이를 들고 무고한 시민들을 살육하던 거리, 기미년에는 독립만세를 외치고 태평양 전쟁 후에는 해방만세를 부르던 거리, 중앙통은 사연도 많다.
한국전쟁 때는 출정하는 아들 따라 역으로 오던 모정의 길. 세계 기능올림픽에서 우승했다고, 전국대회 운동경기서 우승했다고, 미스코리아 진선미가 되었다고 선수들과 미녀들이 퍼레이드 하던 길이 중앙 통이다.
대구시 북구 고성동에 두 개의 큰 운동장이 있다. 현재는 시민운동장이라고 부르지만 전에는 종합운동장이라고 불렀다. 서쪽의 것은 야구장으로 계속 써왔지만 동쪽의 운동장은 일제 때 종합운동장으로 쓰다가 한국전쟁 중에는 U.N 군 막사로 썼다.
야구시합 전에 애국가 제창이 있으면 야구장 시민들은 돌아다니고 있는데 축구장 서양병사들은 모두 서서 차렷 자세로 우리 태극기를 보고 거수경례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요즘은 그 곳이 육상과 축구장 전용 운동장이 되었지만 그 전에는 온갖 행사를 다하던 그야말로 종합운동장이었다. 권투도 하고,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도 왔었고 미식축구 시범경기도 했다. 범시민적 행사가 자주 있었고 학생들이 자주 동원되었다. 행사가 끝나면 모든 학교들이 가다다 순으로 퇴장을 하면서 대구 시민 축제의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학교마다 브라스 밴드가 선두에 선다. 중앙통 길은 퍼레이드 행렬로 꽉 차고 인도와 상가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행렬이 종합운동장을 출발해 중앙 통에 들어서면 미리 온 시민들로 길을 꽉 차있다. 브라스 밴드가 원래 군악대에서 시작한 음악인만큼 이들이 행진 간에 하는 연주는 들어도 일단 신이 나고 봐도 멋있다. 악기 중에도 수자폰은 크고 기이한 느낌을 주어 사람들을 더욱 흥분시킨다. 밴드의 지휘자는 교복에 허리와 가슴에 흰 띠를 매고 어께에는 금색 수술을 꿰고 있을 뿐인데도 폼이 난다. 호각을 홱홱 불기도 하고 지휘봉을 흔드는 데 가끔은 하늘로 한 번씩 던졌다가 받는다.
이때마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간혹 이 지휘봉을 떨어뜨리는 악장이 있어 망신을 당한다. 이럴 때는 관중들이 즐거워 박장대소를 한다. 60년대 최고 인기 악장은 경북고등의 양재권이었다. 그의 주특기는 트럼펫인데도 훤칠한 키에 인물도 잘 생긴 덕에 악장이 되었다. 가나다순으로 행진을 하는 탓에 그의 학교가 가장 먼저 나타나므로 인기를 더했는지도 모르겠다. 양재권 일행이 중앙통으로 들어서면 여중고생들이 만세를 부르고 기성을 질러 난리가 난다.
구름처럼 모인 시민들도 이 만큼 신명나고 행복을 느끼는 축제는 없었다. 전쟁 중에도 음악회는 열린다. 인간은 슬퍼도 음악 기뻐도 음악이다. 나라가 삐거덕 거리는 요즘 모든 시민들이 모여 함성 지르고 박수치며 웃게 하던 그 브라스 밴드가 너무 그립다. '보기대령 행진곡', '사관학교 행진곡', '쌍두의 독수리 아래서'가 듣고 싶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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