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기초의회에 정치가 살아나고 있다. 6.13 지방선거를 계기로 일당 독점 구도가 깨졌고, 정치 지형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덕분이다. 이에 따라 일당 합의기구나 다름없던 대구 기초의회에서 경쟁과 협상, 대립과 협치 등 정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대구 기초의회들은 의장단 구성부터 법안 및 예산안 심사, 집행부 견제 등 각 분야에서 소통과 화합의 정치를 시도하는 중이다. 여기엔 생산적인 갈등과 균형있는 협치를 하지 않고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의장단 구성 균형있게, "불필요한 갈등 싫어요"
가장 뚜렷한 변화는 의장단 구성에서 나타났다. 양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의장단 구성부터 균형을 꾀했다.
수성구의회는 대구 기초의회 가운데 가장 균형을 이룬 사례로 꼽힌다. 제8대 수성구의회는 대구경북 기초의회 중 처음으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됐고, 의장도 민주당 김희섭(61) 구의원이 맡았다. 부의장은 한국당인 최진태(58) 구의원이 선출됐고, 상임위원장 4석도 한국당과 민주당이 공평하게 배분했다. 앞서 7대 의회에서 다수당이었던 새누리당(현 한국당)이 의장, 부의장을 독식해 갈등을 빚은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양새다.
동구의회는 지난 9일 만장일치로 재선 의원인 한국당 오세호(59) 구의원과 민주당 노남옥(56) 구의원을 각각 의장과 부의장으로 선출했다. 두 사람은 의장단 구성을 앞두고 각 당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며 갈등의 소지를 줄였다. 의장단을 구성할 때에도 경선이 아닌 추대 형식을 도입했고, 전반기 의장단에 참여한 의원은 후반기에는 자리를 양보하기로 합의했다.
4선으로 원내 최다선인 바른미래당 차수환 구의원도 의사 진행과정을 안내하고 양당의 소통을 돕는 중재자 역할을 했다. 차 의원은 "말뚝만 박으면 당선되는 시절은 끝났다. 구의원들이 스스로 긴장하고 주민을 위해 일하려는 공감대가 생겼고, 의회에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소규모 의회들 "우리는 가족, 언제나 화합할 것"
의석 수가 10석에 못미치는 중구의회와 남구의회는 가족같은 분위기 유지를 목표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전체 의원 수가 7명(한국당 4명, 민주당 3명)인 중구의회는 제8대 의회 키워드를 '소통과 협치'로 정했다. 이들은 지난 23일 열린 임시회 첫 안건으로 2006년부터 끌어 온 '대신동 중자03지구 주택재개발정비예정구역 해지' 문제를 상정해 양당이 함께 논의하는 등 집행부 견제에 뜻을 모았다. 이 지역은 재개발지구로 묶인 지 12년 동안 각종 개발행위가 금지돼 주민들의 원성이 높은 곳이다.
남구의회 구의원 8명(한국당 5명, 민주당 3명)은 행정복지센터 방문, 조례 심의 등 크고작은 일에도 항상 전원 참석이 원칙이다. 한국당 최영희(45·비례) 운영위원장은 "지금 남구의회는 평균 연령 45.1세로 대구 8개 구·군 가운데 가장 젊다. 딱 평균 나이인 내가 초선과 재선의원 사이에서 화합을 도울 것"이라고 했다.
서구의회는 오는 10월로 예정된 해외연수를 두고도 갈등의 조짐을 보였다. 출범 직후 민주당 소속 구의원은 "기초의회에서 외유성 해외연수가 잦아 구민들의 비판이 높았다. 원 구성한 지 3개월 만에 외국에 가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 소속 구의원은 "해외선진사례를 일찍 견학하면 향후 4년 간 의회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맞섰다. 서구의회는 논의 끝에 지난 19일 연수 계획을 늦추기로 합의했다.

◆의원 간 힘겨루기 하는 의회도, "주도권 내놔"
그러나 대구의 기초의회에 평화만 감도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초의회는 의회가 문을 열자마다 힘겨루기로 반목을 겪고 있다.
북구의회는 지난 5일 소집한 첫 임시회부터 6개 의장단 자리를 두고 다퉜다. 의장은 한국당 이정열(61·3선) 구의원을 선출하며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됐지만, 부의장과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민주당 의원들은 의회를 보이콧했고, 한국당 의원끼리 신경희(56·재선) 부의장과 4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했다.
민주당 김기조(61·초선) 사회복지위원장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6명 중 4명이 민주당 소속이어서 집행부를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고 했다.
서구의회는 의장에는 한국당 조영순(60·재선) 구의원을, 부의장은 민주당 오세광(44·재선) 구의원을 선출했다. 그러나 한국당 구의원들이 "조 의장이 당내 합의를 깨고 민주당과 물밑거래를 했다"고 의혹을 제기해 내홍을 겪고 있다. 한국당 구의원들은 한국당 대구시당에 조 의장의 탈당 권고 조치를 요청했다.
달서구의회는 8대 의회가 출범한지 한달여가 되도록 의장단조차 구성하지 못했다. 의장 후보로 나선 한국당 최상극(59·3선) 구의원과 김화덕(55·3선) 구의원은 1차 투표에서 24표 중 12표씩 나눠 가진 후부터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당초 민주당 의원에게 배분할 의장단 자릿수를 놓고 시작된 갈등은 김화덕 구의원이 민주당과 손잡았다는 비난이 나오면서 대구시당 차원의 징계 요구까지 확대됐다.
이에 대해 대구경실련은 성명을 내고 "구의원들은 조속히 의회를 구성하고, 7월분 의정활동비를 반납해 의회 파행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
한 민주당 소속 구의원은 "협치를 주장하던 한국당 구의원들이 사소한 이유로 협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하려는 꼼수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가재는 게 편?', 이젠 모두 옛말
든든했던 '내 편'이 약화되면서 집행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눈치다. 겉으로는 양당체제를 환영하지만 내심 행정에 어려움을 우려한다.
남구의회 의장 출신인 조재구 남구청장은 지난 6일 남구의회 본회의에서 "서로 견제할 것은 하고 협력할 것은 해가며 남구가 발전하도록 같이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이는 소모적인 갈등을 빚지 말고 협력체제를 이어가자는 것이다. 조 구청장은 "이번 선거에서 구의원들이 내놓은 공약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구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조례를 잘 정비하고 제‧개정해 구민 권익향상과 남구발전에 기여해 달라"고 밝혔다.
서구청 직원들은 의정질문에 대비해 업무 파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류한국 서구청장은 "의회 구성이 다양해지면서 구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어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벌써부터 구정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이 활발해지고 있다. 구청 직원들은 맡은 업무 파악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규하 중구청장도 "다년간 경험해본 의원 생활에 비춰보면 한국당 4명, 민주당 3명의 구조는 굉장히 좋다고 본다. 화합과 소통, 경쟁을 통해 실질적으로 구민 삶을 변화시키는 의회 활동을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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