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김영숙 '열망'

열망

1. 어린 시절

 교실복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위로 번쩍 들고 있는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급우들은 모두 중학교에 간다고 마음이 들떠 너도나도 얼굴을 마주보며 재잘거렸고 나와 가장 친한 성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또 월사금 못 냈어?

그래서 벌서는 거야?”

 내 곁을 스쳐 지나며 한마디씩 던지는 말들이 내 심장을 찔렀다. 돈이 없어 월사금을 못낸 건데 그게 무슨 죄가 된다고 벌을 서야하는가. 내 마음 안에서 알 수 없는 불만이 한없이 쏟아져 나왔다. 아직 어린 초등학교 6학년이었지만 묘한 자존심에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하교 길에 나는 졸졸 흘러내리는 개울물에 연신 두 손을 적셔 눈물을 닦아냈다. 마음한구석이 아릿하고 아파왔다. 우리 집은 왜 가난할까. 뭣 땜에 돈이 없는 걸까.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봐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긴 친구인 성자네도 잘 사는 건 아니다. 어느 때는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우는 때가 허다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헌데도 성자 아버지어머니는 죽을힘을 다해 자식들을 공부시키려 노력하는 거 같다.

 사람은 배워야해. 그렇지 않음 짐승과 다를 바 없지. 한 끼 굶어도 머릿속에 먹물을 넣어야지 어디 배만 부르면 되는감.”

늘 성자아버지는 이렇듯 말하곤 했다.

 암요. 배워야 사람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법이지요. 성자 너도 아버지 말씀 명심하고 새겨듣도록 해. 배움이 적으면 나중에 똥지게 꾼한테 시집가게 될 테니 그리 알고.”

 성자어머니도 한몫 거들며 힘을 보탰다. 나는 아침 등교 길에 성자와 나란히 길을 걸으며 마음속으로 성자가 무척 부러울 뿐이었다. 사실 성자는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어리숙한 편이었다. 하지만 부모를 잘 만나 얼마 후면 중학교에 입학한다. 이 생각에 머물자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길가의 돌멩이를 확 걷어찼다. 돌멩이는 저만큼 멀리 굴러갔지만 내 발가락은 몹시 아팠다.

 나도 중학교 보내줘!”

 집으로 들어서자 나는 대뜸 어머니 앞으로 달려가 목소리를 냈다. 어머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도 중학교에 가고 싶단 말이야!”

 연이어지는 내 목소리에 어머니가 그때야 반응을 보였다.

 이 가시나가 미쳤나?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겨? 먹고 살기도 바듯한데, 그딴 소리 하려거든 일이나 해!”

 내 등짝을 탁 소리가 나도록 때리며 어머니는 두 눈을 부라렸다.

 일만하면 장땡인감. 성자아버지는 사람은 모름지기 배워야 한다는데.”

 그럼 성자네로 가 살던지. 우린 가난해서 월사금 낼 돈 없으니까.”

 계속 두런거리는 내 등 뒤에서 어머니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책보자기를 마루에 휙 집어던지고 잽싸게 어머니의 눈앞을 벗어났다. 자칫 머뭇거렸단 또 어머니의 매서운 손길이 내 등을 때릴 게 빤하기 때문이었다. 뒤꼍에 앉아 하염없이 감나무를 바라보며 눈물지었다. 감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잎사귀만 새파랗게 매달려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반드시 배울 것이다. 그래서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는 뒷마당에 쌓여있는 모래를 한줌 집어 닭들을 향해 홱 뿌렸다. 닭들은 허겁지겁 달려들어 연신 부리로 쪼아 먹는다. 먹을 것밖에 모르는 짐승들이다. 머릿속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고 오로지 뱃속만 채우는 실속 없는 짐승들, 마땅히 사람과는 구별됨이 옳지 않겠는가. 나는 조금 배고프고 헐벗더라도 머릿속을 채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리라, 굳은 결심이 내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다.

들녘의 파릇한 풀밭에 앉아 영어 단어를 외우고 냇가에서 빨래를 하며 친구 성자가 알려준 한 글자 한 글자를 머릿속으로 더듬적거리며 읽어 내렸다. 성자는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로 우리 바로 옆집에 살았다. 성자네도 우리 집과 비슷한 처지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살았지만 아버지가 교육열이 남달랐던 탓에 늘 배움을 중요시하며 딸이지만 편견 없이 공부를 시켰다. 나는 성자가 너무도 부럽고 인간답게 사는 거 같아 가끔 비교해보며 눈물짓곤 했다.

 넌 좋겠다. 중학교에 다닐 수 있어.”

 너도 배워. 내가 가르쳐 줄게.”

 이렇게 시작된 내 공부는 식을 줄 모르고 끊임없이 계속됐다. 밤마다 몰래 집을 빠져나가 성자네 집 호롱불아래서 나는 성자로부터 영어와 수학공식을 깨우치기에 이르렀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때 내 선생님이었던 성자는 공부를 더 많이 하겠노라 도회지로 나갔고 결국 선생이 됐다는 후문을 들었다. 그러므로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남녀불문하고 사람은 배워야한다는 거, 배우지 않고는 가난도 결코 벗어날 수 없고 어두운 길을 끝없이 헤매며 걸어야한다는 사실, 나는 일찍이 깨닫고 그 길을 선택했던 사람 중 한명이 됐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매달렸다. 어느 때는 학교 교실 유리창 밖에서 또 어느 날은 개울을 건너며 중얼거렸던 글자들을 나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손가락으로 때로는 나무막대기나 돌멩이로 쓰고 지우고 또 쓰기를 번복하곤 했다. 반들반들 윤이나 보이던 모래사장이 그 어느 날부터 온통 글자로 뒤덮였다. 가끔 밀물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흔적도 없이 지워져버렸지만 그러기에 내 공책은 더욱 넓어졌고 맘껏 쓰고 또 써도 돈이 드는 공책 염려는 절대로 없었다.

 쓸데없는 짓 어지간히 하고 자빠졌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발견할 때면 혀를 차며 못마땅해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럴 시간 있으면 마루나 한 번 더 닦아!”

 호된 꾸지람에도 나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내 목적달성을 위해 전진만할 뿐이었다.

  2. 남의집살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13살 어린나이에 남의 집 식모로 팔려갔다. 생활고에 허덕이던 우리부모님은 많은 생각 끝에 결정을 내리고 쌀 두가마를 받고 나를 목포시내 당숙모네 집으로 가게 했던 것이다. 나는 울며 가지 않겠노라 떼를 썼지만 도저히 가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여건이 나를 등 떠밀어 가게 했다. 노망이 들어 벽에 똥칠을 하는 할머니와 어린 두 동생들의 배고픔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끝까지 우기며 내 자신만을 위해 고집부릴 수가 없었다. 사립문밖에 서서 치맛자락으로 눈시울을 닦아내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나는 내 뒷덜미를 무겁게 만들었지만 나는 이를 앙다물고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 시간에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미웠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나를 설득하는 부모님을 한편으로는 이해하고 싶었고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부잣집이라는 당숙모네 집으로 가서 사는 편이 훨씬 나을 거 같다는 얄팍한 내 마음속의 계산도 있었기에 그다지 서럽거나 애달프지는 않았다. 더욱이 그때 내 나이 13,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나로서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 줄만 알고 곧 순응하며 부모님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먼 친척인 당숙모네 라고는 하지만 남의집살이가 편할 리가 없었다. 낮 동안 고된 일에 지친 나는 밤이 되면 녹초가 돼 이불깃을 적시며 울어댔다. 부모님도 보고 싶고 동생들 그리고 할머니도 그리워 견딜 길이 없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으로 절절히 느꼈다. 일도 버거웠다. 하지만 일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보고픈 가족들과 헤어져 산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거기다 내 나이와 동갑내기인 당숙모의 딸이 매번 음으로 양으로 괴롭힐 때는 정말이지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더욱이 당숙모는 성격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는 터라 조금만 일이 더디다싶으면 곧잘 매질을 해댔다. 그것도 등허리든 머리든 아니면 종아리든 닥치는 대로 때리곤 했다. 물을 길어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든지 때로 힘에 부쳐 엎는 날은 영락없이 호된 꾸지람과 더불어 매질을 당했다. 나는 너무도 당숙모가 무서웠다. 그렇다고 도망도 갈수 없었고 또 갈 곳도 없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책을 펴들고 스스로 마음을 달랬고 더욱 어금니를 꽉 깨물며 후일을 위해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 때는 그것이 화근이 돼 더 심하게 매를 맞았다. 당숙모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눈꼬리를 올리고 내 손에 든 책을 빼앗아 아궁이에 집어던진 뒤 작대기로 실컷 두들겨 팼다. 나는 잘못했다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지만 당숙모는 조금도 인정을 두지 않았다.

 뱁새가 황새걸음 걷다간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거 몰라? 꼴값을 떨어도 분수가 있지, 어디 남의집살이 하는 년이 공부를 한답시고 책을 끼고 살아! 주제도 모르고.”

 매보다 더 아픈 당숙모의 이런 말들은 어린 내 가슴에 비수가 돼 꽂히곤 했다. 나는 서러움을 우물가로 달려가 씻어냈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며 입으로는 A B C D E F G! 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우물은 당숙모네 집과 상당히 먼 곳에 있었기에 들킬 염려는 거의 없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당숙모의 딸은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입술을 삐죽거리며 시기질투를 하는 듯싶었다. 얼굴도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는 입장이었기에 나와 늘 자신을 비교하며 더욱더 못살게 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당장 달려가 당숙모에게 고자질한다.

 어머니, 숙자 지금 책보고 있어. 못 믿겠으면 직접 가보셔.”

 정신 나간 년! 얼마나 맞아야 정신이 들 건감!”

 숨을 씨근덕거리며 곧바로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온 당숙모는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 저만큼 내동댕이쳤다.

 , 이년아! 널 얼마주고 데려온 줄 알아? 밥값도 제대로 못하면서 속이나 썩히지 말아야지! 네 팔자에 공부는 해서 뭐하게?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된다고 몇 번을 말했어. 맞아죽기 전에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 죽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버릴 거니까. 알아들었어!”

 머리를 쿡쿡 쥐어박으며 당숙모는 두 눈을 부라려보였다. 나는 너무도 무섭고 겁이나 온몸을 벌벌 떨었다. 그러나 내 공부에 대한 열망은 전혀 식을 줄 몰랐고 그러면 그럴수록 내 마음 안에 어떤 오기가 가득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해질 무렵 물을 길어오던 중 먼 곳 하늘을 바라봤다. 붉은 노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아름답게 펼쳐져있다. 그리움이 묻어난다. 노을 속 어딘가에 내 가족들이 살고 있는 모습이 내 시야를 얼핏얼핏 지난다. 밥상에 둘러앉아 꽁보리밥을 목구멍으로 삼키던 그때 그 시간, 입안에서 뱅뱅 도는 보리알이 지금 생각해보니 사뭇 그립다. 가을걷이가 끝난 뒤 어머니가 들판을 헤매며 주워온 잔치 레기 무를 소금간만 해 담가둔 다음 숭덩숭덩 썰어 밥상에 올려놓으면 유일한 반찬으로 그보다 별미는 없는 듯 여겨졌다. 동생들은 동치미국물을 조금이나마 더 먹겠다고 아우성이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숟가락 응징이 동생들의 머리위로 날아다니곤 했다. 어머니는 뜨는 둥 마는 둥 숟가락을 내려놓고 하염없이 눈물지으며 한탄의 목소리를 쏟아냈고 나는 슬며시 일어나 방밖으로 나오는 게 언제나처럼 일상이었다. 방안에서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가난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방밖으로 새어나온다. 나는 급히 몸을 움츠리고 가슴을 졸였다.

 에고, 가난한 집구석에서 뭐하려고 새끼들만 주렁주렁 낳아 이 고생이람. 더러운 내 팔자.”

 또 팔자타령이다. 나는 그 소리가 너무도 지긋지긋했다. 왜 가난하게 사는가는 깨우치지 못하고 늘 팔자라는 단어에 매달려 신세한탄만 한다. 가난이 어디서 오는가. 가진 거 없으면 가난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가져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가질 수가 없다. 부모 때부터 뼈 빠지게 농사짓고 허덕여보지만 물려받은 재산이 없으면 더욱 고달플 뿐이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물려줄 것도 없고 역시 가난은 대물림될 수밖에 없다. 시대가 변해간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 평생 농사일밖에 매달릴 곳이 없다. 그것은 육체의 고된 노동이다. 그렇다고 대가가 큰 것도 아니고 농사도 머리로 짓지 않으면 더욱 힘든 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난은 게으른데서 오기도 하지만 우리부모님은 남달리 부지런한데도 가난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아무리 돌려 생각해봐도 배우지 못한 탓인 것만 같다. 똑같은 연세에 성자아버지는 우리아버지와 달리 면사무소에 다니며 펜을 굴리고 있다. 그것하나만 보더라도 배움의 차이는 참으로 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하나 성자아버지는 배움의 중요성을 늘 강조한다. 반면에 우리아버지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핀잔만 늘어놓는다. 어머니도 똑같다. 하긴 그 아버지와 함께 사는 부부니 같을 수밖에. 사람은 끼리끼리 사는 법이니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허허로운 웃음을 날렸다. 하지만 진정 내 판단으로는 성자아버지의 생각과 말이 백번 옳다고 여겨졌다. 나는 머리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간절했으므로.

숙자야, 공부 열심히 해.”

 어느 날, 당숙모의 딸이 싱글벙글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온 다음 느닷없이 내뱉는 말이었다.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당숙모의 딸을 바라봤다. 뜻밖이었다. 아니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당숙모의 딸로부터 듣고 보니 나는 어안이 벙벙해 두렵기까지 했다. 농담이려니 여기며 숨을 거푸 몰아 내쉬는데 당숙모의 딸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너 곧 다른 곳으로 가거든. 그래서 내가 선심 쓰는 거야.”

 당숙모의 딸이 웃음을 멈추지 않고 또 말을 뱉는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때야 입을 열고 물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가긴 어디로 가?”

 그런 거 있어. 비밀.”

 당숙모의 딸이 또다시 헤헤거린다.

 말해봐, 궁금하잖아. 농담이지?”

 내가 눈망울을 굴렸다.

 아냐. 진짜야.”

 도무지 알 수 없는 당숙모 딸의 말, 나는 머리끝이 쭈뼛 가슴속이 떨려왔다. 하지만 당숙모의 딸을 믿지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입술을 삐죽한 다음 곧바로 내가 기거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왠지 어설픈 밤이었다.

 당숙모 딸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내내 마음에 걸리고 찝찔한 기분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싱숭생숭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다보니 자주 소변이 마렵다. 뒷간을 들락거렸다. 미적지근한 기분이 영 개운하지 않다. 소변을 몇 번이고 확 쏟아냈지만 꺼림칙한 기분이다. 나는 뒷간에서 나온 뒤 마당가를 서성거렸다. 밤하늘의 별빛이 유독 애처롭게 느껴졌다 유별스럽게 밝은 별 하나가 반짝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져간다. 나는 숨을 거푸 내쉬고 다시 내 방으로 가기위해 발길을 옮겼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귀를 쫑긋하고 가까이 다가가 봤다. 다름 아닌 당숙모의 방이었다. 숨을 죽였다. 당숙모의 목소리와 섞여 새어나오는 웃음소리는 당숙모의 딸이 분명했다. 나는 더욱 발자국을 죽이고 마루 끝에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헌데 좀 더 정확하게 들려오는 당숙모와 딸의 목소리가 나를 일순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는 사지를 벌벌 떨며 몸을 바짝 움츠렸다.

어머니, 그게 정말이야? 숙자를 그 병신한테 시집보낸 다는 게?”

 그렇다니까. 내가 숙자를 데려올 때 쌀 두가마를 줬잖아. 그러니 본전은 뽑아야 되지 않겠니. 곱에다 더 보태 다섯 가마를 준다는데 그런 횡재가 어디 있겠니. 빨리 서둘러 보내야지.”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발을 떼 옮기려 해도 당최 움직여주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본전생각에 이중으로 나를 팔아넘기려는 당숙모의 속심, 나는 더 이상 들을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뒤돌아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다. 어찌해야 좋을까. 내 머릿속은 그 순간 오로지 이 생각뿐이었다. 당장 갈 곳도 없는데 어디로 갈까. 오만가지 근심걱정이 한데 어우러져 나를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체할 수 없다. 머뭇거렸단 내 신세가 어찌될지 모르는 판국에 뭘 망설이고 뒷일을 염려해야한단 말인가. 나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겼다. 그리고 부리나케 뒷길을 향해 내달렸다. 밤은 더욱 깊어졌고 사방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들짐승도 귀신도 멀리서 짖어대는 사나운 개의 소리도 전혀 무섭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었다. 다만 사람을 만날까 그것이 겁나고 조바심쳐질 따름이었다.

 얼마나 달리고 거듭되는 발걸음을 뗐을까. 저 멀리 희미한 가운데 시내가 보인다. 드디어 목포역에 도착했다. 나는 거침없이 역 안으로 달려 들어가 마침 움직이는 기차를 탔다. 잠시 후, 기차는 머리 부분에서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우렁찬 기적소리와 함께 어딘가를 향해 마구 달려 나갔다. 아직도 가슴속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스르르 눈을 감았다. 당숙모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난다. 표독스런 모습이다. 이내 매를 든다. 그리고 사정없이 내 몸을 내리친다. 나는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고통을 안으로 삭이며 감내해야만 했다. 마음속으로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를 외우며.

3. 세상의 벽

 눈을 떴다. 들녘의 푸른색깔이 차창 밖으로 쉴 새 없이 스쳐간다. 얼마나 오랜만에 가슴으로 바라보는 자연의 경관인가. 저 멀리 하늘엔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 나는 숨을 훅 뿜었다. 내부에 쌓여있던 고통의 시간들을 전부 내뱉어버리고 싶었다. 당숙모의 집에서 2년을 살았으니 이제 내 나이 16살이다. 세상에 눈뜨기엔 아직 어린나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보다 강하게 맞서고 싶다. 짧은 삶에서 느꼈던 숱한 사연을 거울삼아 나는 반드시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련다. 나는 다시 한 번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굳은 의지를 마음에 다졌다. 차창 밖 하늘은 마치 구멍이 뻥 뚫린 거처럼 한껏 청아하고 맑아보였다.

무임승차를 한 탓에 나는 승무원에게 끌려 서울역에서 내리자마자 역무실로 직행했다.

 , 가출했지?”

 대뜸 나를 향해 내뱉는 역무실직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바짝 수그렸다.

 집이 어디야? 되돌려 보내줄 테니 말해봐. 이곳이 어딘 줄 알고 무작정 상경을 해. 눈뜨고 코 베어간다는 말 못 들어봤어? 부모님은 또 얼마나 속을 썩을 것이며. !...... 너희 같은 애들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다. 제발 주는 밥 먹고 공부나 열심히 하면 될 걸, 왜 가출은 하는지 모르겠구나.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뛰어들면 누가 밥 주고 재워준대? 하긴 착각은 자유지만. 집 생각 부모생각 간절하게 될 건데 뭣 땜에 그러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너무 호강스러워 탈 난 거 아냐? 집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다고. 쯧쯧.”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역무실직원은 나를 겁 반 설득 반 그리고 타이름 반 등을 몇 번이고 했다. 나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막무가내 떼를 썼다. 역무실직원은 나를 마치 말릴 수 없는 문제아로 보는듯했다. 비웃음 섞인 어투로 계속 비아냥거리며 콧노래마저 부르고 있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 울었다. 도무지 내 진심이 통하지 않는다. 어떤 말을 해도 믿어주지도 않는다. 그것은 내가 맨 처음 자의로 인해 부딪친 세상의 커다란 벽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도저히 그곳을 빠져나올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심란하고 두려움이 쌓여갔다. 만약 이대로 돌려보내진다면 나는 아마도 당숙모의 손에 맞아죽거나 반병신이 될지도 모른다. 아님 병신한테 시집을 가야할 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일순 정신이 아득해왔다. 하행기차시간을 알아본다며 잠시 역무실직원이 자리를 비운사이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움직여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됐다. 나는 정신없이 넓은 거리를 지나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하늘이 노랗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맑고 아름다워 보이던 하늘빛이 갑자기 엉뚱한 색깔로 변해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무작정 어딘가를 향해 발길을 옮겨 놨다.

내가 처음 접한 세상엔 좋은 사람만 있는 것도 나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섭고 두렵기 한량없는 세상이긴 했지만 그런 대로 어우러져 돌아가는 양이 한번쯤 용기를 안고 살아볼만하다고 생각됐다. 어디쯤일까.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온다. 중년의 남자였다. 나는 움찔 몸을 사렸다. 곧바로 남자의 목소리가 내 두 귀로 흘러들었다.

 학생이니?”

 나는 대답대신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남자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보였다.

 갈 곳은 있어?”

 또다시 묻는 남자를 향해 나는 웬 간섭이냐는 투로 그건 왜 물어요!” 하고 짜증 섞인 대꾸를 했다. 남자가 내 말 끝에 호탕하게 웃어재꼈다. 나는 잠시 황당해졌다.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 갈 곳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도움 받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손 내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큰 숨을 뱉어내는 내 손목을 덥석 잡아 쥔 남자가 이내

따라와.”

하고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점점 날은 어두워지고 갈 곳은 없고 어쩔 수 없이 나는 생전처음 보는 남자의 손에 끌려 자포하는 심정으로 발길을 뗐다. 다행히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내 어려운 처지를 자세히 들어주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주는 듯싶었다.

 듣고 보니 참 딱하구나. 얼마나 어려웠으면 야밤에 도망을 쳤을까. 이제 아무걱정 말아라. 내가 내일 날이 밝으면 네 취직자리를 알아봐줄 테니.”

  감사합니다, 아저씨.”

 나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거푸 고개를 수그려 보이며 눈물을 글썽였다. 함께 마주앉은 초라한 식당 한곳에서 퉁퉁 불어있는 국수를 목구멍으로 넘기며 나는 가슴속에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을 야무지게 꾸고 있었다.

 중년남자의 덕분으로 나는 그 며칠 후 가발공장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었다. 그는 계속 월급 때만 되면 찾아와 내 월급의 절반이상을 갈취해갔다.

 그것도 주기 싫은 거야? 은혜를 알아야지. 창녀촌에 팔아넘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알아. 똥누러갈 때와 누고 난 다음이 다르다더니 아까운 모양이지. !”

 선뜻 주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나를 못마땅해 하며 그는 항상 상을 찌푸리고 돈을 받아 쥔 다음 등을 돌리곤 했다. 나는 아까운 생각에 한숨이 저절로 쏟아져 나왔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한 달 내내 밤잠을 설치며 일해 번 돈이다. 하지만 나는 당연하다고 여기고 매월 그에게 월급의 상당부분을 상납하곤 했다. 처음 그토록 온화하고 따뜻해보이던 그가 어느 순간 돌변해 이중인격을 드러내 보일 때 나는 황당한 생각에 할 말을 잃었다. 물질 앞에서는 인간성도 도덕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 나는 그때부터 마음 안에 사람에 대한 묘한 불신이 자리하게 됐던 거 같다. 누구도 선뜻 믿지 않고 먼저 다가가지 않는 내 행동을 동료들은 뒤에서 수근덕대며 흉보곤 했지만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저 묵묵히 내 갈 길을 갈 따름이었다. 때로는 삶이 뭔지 괴롭고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 가슴 안엔 아직도 식지 않은 평생소원인 배움의 열망이 꿈틀거리고 있었기에 결코 쉽게 포기하고 좌절할 수만은 없었던 까닭이다.

  4. 희망의 터널

공장의 밤은 깊어갔다. 열악한 환경의 조건 속에서도 아직 어린 일명 공순이들은 가슴속에 각자의 꿈을 품고 희망을 노래하며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일부 집이 가까운 여공들은 출퇴근을 했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여공들은 거의 모두 비좁은 공간의 기숙사에서 몸을 사리고 잠들기 일쑤였다. 어쨌든 여공들은 이처럼 제대로 된 처우조차 받지 못한 채 그래도 어떻게든 견뎌보려 노력하는 듯 보였다. 나도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피곤한 몸을 눕혔다. 물이 줄줄 샌 벽지가 온통 곰팡이로 뒤덮여 까맣다. 금방이라도 벽 사이사이에서 벌레가 기어 나올 듯싶은 불안함 때문에 눈은 감았지만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잠자리도 눅눅하다. 더욱이 한여름인 탓에 시큰한 땀 냄새가 유독 풍겨왔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공순이들의 얼굴은 부석부석 고달픈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1평 남짓한 협소한 공간, 그곳에 10명도 넘는 여공들은 몸을 사리고 꿈의 세계를 떠돌며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일에 대한 희망 오늘보다 나은 생활여건과 자신의 미래, 아마도 이런 소망들을 가졌기에 가끔은 평온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단잠의 나라에 가있는지도 모른다. 숨소리가 쌔근쌔근 들려온다. 작은 창문이라도 있다면 고운 달빛이나마 새어들어 아직 어린 여공들의 몸 위에 흩뿌리련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은 여건이었기에 높은 천정에 매달려있는 희미한 백열등에 모든 걸 내맡긴 채 그렇게 밤은 어둠을 뚫고 새벽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른 새벽, 기지개를 켰지만 영 몸이 개운하지 않다. 아직 잠이 덜 깬 어느 여공은 하품을 간간이 하며 방을 빠져나갔고 그 뒤를 이어 줄줄이 각자의 소지품에서 수건 하나씩을 꺼내든 채 내 시야에서 모습을 감춰갔다. 나도 얼른 밖으로 나가 고양이세수를 한 다음 식당을 향했다. 식당이라고 해봤자 역시 좁은 공간에 나무로 된 밥상이 길게 놓여있는 정도였지만. 그러나 여공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보였다.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 그녀들에게 또 다른 꿈을 안겨주며 희망의 터널 속으로 몰아넣었는지도 정녕 알 수 없다. 그리고 모두들 바쁘게 식사를 마친다. 늘 그렇듯 머리카락이 섞인 밥그릇을 비우며 그녀들은 단 한마디 말이 없었다. 어젯밤 꿈 얘기, 오늘의 일 얘기, 아님 가정사 등등 하고 싶은 얘기도 많을 법한데 그녀들은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는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들을 바라보며 가슴한편이 또다시 먹먹해왔다 누군가의 말대로 시절을 잘못 만났는지도 모르는 일이겠고 부모 복이 없는 건지도 알 수 없는 문제겠지만 다만 분명한 것은 자신의 운명, 태어남 그자체가 모순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밥 대신 물 한 사발을 마시고 일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마음속이 여전히 찝찝했

가발공장에는 야학교를 다니는 몇몇 학생들이 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정규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불우한 환경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밤잠을 설쳐야만 하는 야간작업도 전혀 싫은 기색 없이 한달 내내 하는 학생도 있었고 조금이라도 수당을 더 받기위해 잔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학비를 벌기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내가 본 견지에서는 마치 불타오르는 듯했다. 가끔 정규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찾아오곤 했는데 그들은 중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들인 거 같았다. 비록 생활여건이 달라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수시로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아마도 꿈은 같은 걸로 여겨졌다. 어느 때는 사회문제 또 그 어느 날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각자 가정에 대한 얘기 그리고 언제나 매듭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기도 하는 모양이었는데 결론은 너무 불공평한 빈부의 격차 학업을 계속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들을 비관하고 속상해하는 정도였다. 누가 나무랄까. 배우고 싶다는데 더 많이 알고 지식을 쌓아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고 싶다는데. 사회를 원망하면 무슨 소용이며 가진 거 없는 부모를 탓하면 그렇다고 되돌릴 수 있는 문제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쓰는 듯 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강우라는 야학생은 늘 배움을 강조하며 공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여러분, 배워야합니다. 배우지 않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어려운 여건 환경이라지만 틈을 내십시오. 그것만이 살길이라 여기고 용기와 힘을 내셔야합니다. 비록 가진 거 없어 정규학교엔 다닐 수 없지만 야학이 있잖습니까. 그곳은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친구들과 함께 힘껏 돕겠습니다.”

힘주어 말하는 서강우의 의지에 공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손해 볼 거 없잖아? 공장일 끝나고 자유 시간에 다니는 건데.”

 울 엄마 알면 혼쭐날 텐데......”

 ?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그럼 얘기하지 마.”

그럼 되겠다, 비밀.”

걱정근심이 앞섰던 공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꼴값들 하고 자빠졌네.”

 그러나 걸림돌이 생겼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감독이 한껏 비아냥거리며 반대하고 나섰다. 문제는 야학에서 밤새 공부를 하면 다음날 피곤이 겹쳐 일에 지장이 생긴다는 거였다. 물론 시간은 자유였다. 일을 마치고 잔업이 없는 날은 저녁 8시 퇴근했기에 집으로 가는 공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씻은 다음 공장을 벗어나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길을 거닐며 잡담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무려 4일 정도는 잔업이 있는 관계로 피곤이 누적될까 모든 걸 포기하고 자리에 눕기 일쑤였다. 다음날 새벽 거뜬한 정신과 육을 지탱하려면 오직 그 방법밖엔 도리가 없는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부 학업에 뜻을 두고 늘 가슴한편에 소망으로 여겼던 공원들은 어려운 여건 감독의 들볶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야학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감독의 매서운 눈초리와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못살게 구는 역할은 날이 갈수록 극심해졌다.

 졸다 또 실수한 거잖아!”

 멀쩡한 가발을 내던지기 부지기수였고 날카로운 음성으로 어느 때는 머리를 쿡쿡 쥐어박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원들의 의식수준은 높아졌고 이젠 좀 더 당당히 자신의 의사를 표출할 수도 있게 됐다. 서강우는 그것이 교육의 힘이라고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공원들의 세상이 열리고 있다. 억울해도 참아야했고 분해도 알지 못해 따지고 덤빌 수 없었던 그들의 삶, 배움은 그만큼 소중한 그 무엇이었으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힘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열심히 야학교에 드나들었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려 몸이 천근만근 버거웠지만 배움의 시간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교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가르치는 대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보다 먼저 배운 사람이 다음 사람을 가르치는 릴레이식 교육방법, 나도 언젠가 저 교단에서 목청을 돋우는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나는 자꾸만 감기는 눈꺼

풀을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제자리에 돌려놓곤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라는 말을 나는 머릿속에 다시 한 번 새기며 이를 몇 번이고 앙다물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눈보라가 휘날리고 봄꽃이 피고 가을엔 사방이 곱게 물든 단풍으로 세상을 뒤덮을 즈음 나는 드디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기쁨이 나를 휘감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가난하기에 할 수 없었던 공부, 돈이 없기에 남의 집 식모로 팔려가야만 했던 서글픈 지난날, 나는 합격자 발표 날 가슴을 터놓고 엄청 울었다. 야학교의 선생님들이 내 등을 다독이며 격려해줬다. 공원들도 다 함께 축하해 줬고 나도 스스로를 자축하며 들뜬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에 몰두했다.

 5. 비정한 사랑

 공원 일명 공돌이 안재민공장 내 변소에서 목매달아 죽은 것은 큰 충격이었다. 평소 사랑하던 여대생 지화영의 결혼소식에 좌절한 나머지 그는 단 하나뿐인 목숨을 거침없이 버린 것이다. 처음 지화영은 가난한 집 딸로 국교를 졸업한 뒤 가발공장에 취직했으나 공장장이었던 안재민은 무려 10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그녀를 알뜰살뜰 보살폈다. 그리고 학교를 보내 학업을 계속하도록 도와줬던 것이다. 안재민역시 가진 거라곤 불알 두 쪽밖에 없는 형편이었지만 매달 월급을 그녀의 학비에 보탰고 중 고등학교를 마치자 공장부근에 방을 얻어 동거에 들어갔다. 다행히 고아였던 안재민은 가족이라는 부담감은 없었던 터라 오로지 그녀에게 전부를 쏟았다. 그러나 지화영은 안재민과 동거생활을 하면서도 늘 가슴속에 다른 남자를 품고 좀 더 나은 사람 많이 배우고 물질적으로 풍족한 배우자를 원하며 끝없는 갈망의 늪을 헤맸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자 안재민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대학선배인 남자친구와 과감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말았다. 안재민은 소식을 듣자마자 기겁을 하고 달려가 울며 자신에게 돌아와 줄 것을 호소하고 매달렸지만 지화영은 냉정하게 그를 뿌리쳤다.

 왜 이래! 우리인연은 여기까지야. 난 가난도 싫고 비전 없는 당신도 싫어. 머릿속이 텅 빈 사람 평생 뭘 보고 따라 살아? 지긋지긋해. 먹고 자고 싸고 오직 동물적 본능만 충족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비정하고 매정한 그녀의 독언에 안재민은 당장의 감정대로라면 비수를 뽑아들어 목을 찔러버리고 싶었지만 너무도 사랑했던 그녀였기에 찢어지는 가슴을 끌어안고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서러움과 배반감에 치를 떨던 그가 겨우 선택한 마지막 방법은 목을 매달아 죽는 길 뿐이었던 거 같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을 결심한 그날 밤 그는 먼 하늘을 우러러 마치 황소 같은 울음을 토해냈다. 7, 적잖은 세월을 오로지 한 여자를 향한 일편단심으로 더위와 추위를 잊고 살아왔던 그, 서글픔의 끝은 참으로 비참한 것이었다. 이승을 하직하지 않고는 도저히 지울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순정의 사나이 안재민, 그는 이 세상의 모든 나머지 희망과 꿈을 접은 채 그렇듯 세상을 떠나고만 것이다. 도대체 그의 마음속에 그 여자는 무슨 존재였을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보다 더 휘황찬란한 빛이라고 그는 가끔 말하곤 했다.

 

그러므로 키워서 잡아먹는다?”

 

누군가 동료공원이 비아냥거릴 때면 그는 만면에 웃음기를 머금고

 

벌써 먹힌걸, .”

 

하며 수줍은 낯빛을 드러내 보이곤 했던 것이다.

 

좋겠다, 영계하고 살아.”

 

동료공원들의 장난기는 계속됐고 안재민은 그럴 때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히죽히죽 웃으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고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며 만족한 표정을 남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여자 지화영은 자신의 남자 안재민의 죽음에도 눈썹하나 까딱 않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또 다른 남자에게로 날아가 버렸다.

 

나쁜 년, 지극정성 뒷바라지했건만 개죽 쒀서 남 준 꼴이지 뭐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배신을 해. 에이, 벼락 맞을 년.”

 

그러게.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하긴 착한 게 탈이지. 적당하게 가르쳐놨으면 그럴 리 있어. 말이 있잖아. 끼리끼리 산다고. 분수

 

17

에 넘치면 화를 부르는 거야. 무슨 득을 보겠다고 먹을 거 못 먹고 입을 거 입지 않고 그리도 열심히 뒷바라지하더니만 결국 낙동강 오리알 되고 말았네. 어디 그뿐이야? 하나밖에 없는 목숨 끊어버리면 자기만 손해지 뭐겠어. 그 여자는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살게 됐으니 좀 좋겠어, .”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그 여자 지화영에 대한 욕지거리가 여러 사람의 입줄에 오르내리며 공장안은 한동안 술렁거렸다. 안재민은 오랫동안 공장에 근무하면서도 돈벌이에만 열중했지 공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까막눈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그는 글에 대한 열망이 전혀 없었다. 언제나 상대가 자신보다 많이 배우면 된다는 소박한 심성으로 그녀 지화영을 위해 불철주야 야근을 해가며 돈을 버는 일에만 열중했다. 돈은 남의 손에 있으면 소용없다. 배움도 남의 머릿속에 든 건 무용지물인 셈이다. 내 손에 내 머리에 있는 것만이 결국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보다 소중한 그 여자 지화영에게 모든 걸 다 바쳐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 모든 게 어느 날인가는 자신의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착각의 기대 속에서.

 

그의 시신이 수습되고 뒷동네 야산에 묻어졌다. 슬퍼해줄 가족도 친구들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가까이 지내던 동료 몇 명과 야학생들이 그의 상여를 따랐을 뿐이다. 상여라기보다 손수레에 불과한 초라한 행렬, 곡소리도 묘한 분위기의 서글픈 그의 마지막 길, 하늘은 높은 곳에서 음울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학 교사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집안이 가난해 배움의 시기를 놓치고 어렵고 힘든 공장생활을 하며 돈벌이에 나선 어린 공원들의 머리를 깨우쳐주기 위해 그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앞장섰다. 배움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먹고 자고 싸는 행위만을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무지한 공원들이 부지기수인 공장 내 분위기는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배고픈 게 우선이지 배워서 뭘 해. 공부가 밥 먹여줘? 배부르니 다 하는 짓이야. 난 돈 많이 벌어 반드시 성공하고 말거야.”

 

맞아. 배고픈데 공부가 머리에 들어와? 나도 열심히 일하고 돈이나 벌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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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많음 뭘 해. 머릿속이 텅 빈 상태에서 배만 부르면 장땡인감. 난 늦었지만 배우고 싶어. 머리에 든 게 있어야 어디서든 큰소리칠 수 있을 거라 여기니까. 그리고 친구들 모두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얼마나 가슴 치며 가난을 원망했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 왜 우리 집은 가난할까, 돈이 없는 걸까, 울기도 많이 울었지. 헌데 이런 좋은 기회가 왔는데 배우지 않겠다고? 돈만 많이 벌어 부자로 살겠다고? 그런 생각 사고가 바로 배워야하는 이유야. 배우지 않으면 평생 판단능력이 부족해 짐승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래도 그 중 머리에 조금 먹물이 든 공원 한명이 앞장서 공원들을 설득하는데 힘을 보탰다. 서강우는 거기에 힘입어 더욱 목소리를 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반드시 배워야합니다. 배우지 않으면 짐승이나 다를 바 없게 됩니다. 아는 것은 힘입니다. 돈이 제아무리 많아도 머리가 비어있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겁니다. 여러분, 조금 힘들고 고달파도 시간을 쪼개 배움의 터전으로 나오십시오. 그 길만이 살길이라고 여긴다면 여러분은 후일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배를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머리를 채우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깊이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서강우는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원들을 설득하기에 있는 힘을 다 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너무도 배가 고파 고통 받았다는 일부 공원들은 듣는 둥 마는 둥 관심도 두지 않고 등을 돌렸고 그 외의 또 다른 일부 공원들은 배움의 중요성 보다는 남들이 하니까, 라는 식으로 야학교를 들락거렸으며 또 어느 공원은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목말랐던 그동안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적극 야학을 지지하기도 했다. 나도 그 중 한사람으로 때로는 감독으로부터 야단도 맞고 주제파악을 못한다는 소리도 들으면서도 단 하루 빠지지 않고 야학교를 드나들었다. 오직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여겼기에.

 

 

6. 가난은 죄

 

내가 들풀이라는 야학교에 다니며 공부에 열중할 때 나를 눈여겨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아직까지 마치 송충이처럼 들러붙어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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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뜯어가는 아저씨라는 사람, 바로 내가 맨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우연히 도움을 받았던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걸 목격한 서강우가 앞장서 떼어내 줌으로서 나는 그때부터 서강우를 조금 색다른 눈으로 봤고 시간이 흐르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법은 당신 같은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인간벌레들 말입니다. 더 이상 숙자씨를 괴롭히면 제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하세요. 이제까지면 됐지 계속 돈을 뜯어 가면 되겠습니까. 은혜를 입었다니 도리 상 그동안은 어쩔 수 없다지만 이제부터 또다시 그런 행위를 계속한다면 법으로 대응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당장 돌아가세요. 그리고 다시는 오지마세요.”

 

처음엔 건방진 자식 네가 뭔데, 하고 대들던 아저씨라는 사람은 서강우의 단호한 태도와 법적대응이라는 말에 움찔 몸을 사리더니 이내 돌아서 가버린 뒤 전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배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무슨 말로도 무시하고 들으려고 조차 하지 않던 내 경우와 사뭇 다른 대처방법, 그렇다! 그래서 사람은 배워야한다! 말이 있지 않은가,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그동안 알지 못했기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살았던 모든 점이 새삼 내 가슴을 두드리고 강한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고마워요.”

 

나는 부끄러운 내 일면이 드러났으나 어려운 입장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서강우를 향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서강우는 당연하다는 듯 별로 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더욱 좋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여러 사람과 비교해 보며 역시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더욱 배움에 대한 열망이 내 가슴 안에 꿈틀거렸다. 나는 잠시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 잠을 잘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여전히 내 머릿속엔 영어단어와 국어책속 글자들이 아른거렸고 입으로도 연신 외우며 공부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야학교를 가기위해 거리로 나오니 미군

 

20

지프차가 달린다. 아이들이 그 뒤를 쫓아간다. 미군들이 기묘한 웃음을 얼굴에 담고 가끔 초콜릿을 던져준다. 아이들은 환호하며 줍기 바쁘다. 배고픈 시절, 미군들의 존재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비렁뱅이, 구두닦이, 양아치들이 득시글거리는 거리의 풍경, 코를 질질 흘리며 머리엔 기계독이 올라 마치 버짐 꽃처럼 군데군데 벗겨진 허연 상태에서 그래도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미군지프차를 뒤쫓는 많은 아이들이 내 눈 속에 담겼다. 거기에 장터 비슷한 골목길에는 하얀 국수를 나무채반에 받쳐두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멸치육수를 끓이느라 분주하다. 가장 인기가 좋은 부대찌개도 한 몫을 하며 잘 팔려나간다. 일명 부대찌개는 미군식당에서 음식물쓰레기를 거둬 모아 소독 차 팔팔 끓이면 그게 바로 부대찌개였다. 개나 돼지 같은 짐승한테는 그냥 주고 그나마 사람들이 먹는 것은 열을 가해 살균했던 것이다. 그것도 없어 못 먹는다. 가끔 생산지를 떠나 어딘가 시장을 향해 이동하는 말 수레에서 고구마 말린 걸 던져줄 때는 아이들이 우르르 한데 몰려 우왕좌왕 난리법석을 부리고 장난기가 발동한 어느 인부가 커다란 생고구마를 힘껏 아이들을 향해 던지는 경우 느닷없이 이마에 맞고 나뒹구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눈을 한쪽 손으로 가리고 다른 한손으로 더듬거리며 고구마를 찾는 아이, 나는 이런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다. 오늘도 여전히 아이들이 몰려다닌다. 나는 한숨을 푹 쏟아냈다. 가슴한편이 아릿하고 아팠다.

 

넓은 길을 벗어나자 좁은 골목사이로 연한 불빛이 새어나온다. 여자의 목소리도 들린다. 깔깔대며 웃는 소리 뭐라고 연신 재잘거리는 소리, 거기에 남자의 목소리도 가끔 섞여있다. 무척 즐거운 듯하다. 나는 귀를 쫑긋했지만 무슨 얘긴지 내용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공장에서 야학교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었는데 신작로로 가는 거보단 골목길로 가는 게 훨씬 가까웠다. 그런고로 나는 매번 좁은 길을 택해 야학교를 향하곤 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보자기를 싸들고 야학교를 향하는 중이다. 그때였다. 골목길로 막 접어드는데 간드러진 여자의 음성이 들려온다. 나는 순간 멈칫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왜이래, 간지럽게. 하지 말라니까.”

 

가만있어, 튕기긴. 돈이 적어서 그래? 더 줄게. 얼마주면 돼? 달라는 대로 줄

 

21

테니 고분고분 말 들어.”

 

남자의 목소리가 음흉하게 뒤섞인다.

 

아이, 정말 왜이래. 술집여자는 자존심도 없는 줄 아는 감. 창녀하곤 급이 다르다고 몇 번을 얘기해야 알까나.”

 

알지. 그러니까 내가 자주 찾는 거 아냐. 요즘은 창녀보다 더 더러운 게 양색시지만.”

 

남자의 음성이 사뭇 진지하게 들려왔다.

 

어디 비교할 때가 없어 양갈보람. !”

 

고럼, 고럼.”

 

엄연히 차원이 다르다고 했을 텐데. 그보다 난 학벌 미모 어디한곳 나무랄 데 없는 귀재라는 거 몰라? 그리고 무엇보다 순정파라고 얘기했는데 잊어버렸남?”

 

여자가 눈을 흘기는 모양 같다.

 

잊긴. 머릿속에 입력된 지 언젠데. 흐흐.”

 

남자가 웃음을 흘렸다.

 

일편단심 민들레, 맞지?”

 

기억력 하나는 알아줘야해.”

까르르 소리를 내며 여자가 곧 숨이 넘어갈 듯 웃어재낀다.

 

 

22

이젠 그만 애태우고 빨리 불 꺼. 내 사랑 그대여.”

 

, 고양반 보채긴. 알았으니 옷이나 벗어. 술상은 치워야할 거 아냐.”

 

치우긴 뭘 치워. 막걸리냄새가 더욱 성욕을 돋워준다는 거 잘 알면서.”

 

남자가 확 덮치는지 요란한 쟁반소리와 막걸리사발 뒤집어지는 소리가 함께 들려온다.

 

까르르, 깔깔!”

 

그러고 보니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다. 누구지? 나는 자못 긴장된 눈초리로 그곳을 연신 주시하며 숨을 죽이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기억날 듯 말 듯 한 어지러움이 연속해 이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확실하게 연결돼 떠오르는 얼굴, 그리고 목소리! 나는 한손을 들어 이마를 탁, 하고 때렸다. 분명하다. 그 언젠가 변소에서 목매달아 죽은 안재민의 여자 지화영, 바로 그 여자인 것이다. 나는 어질어질한 정신을 바로 할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어찌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번연히 시집가 잘 사는 줄만 알았는데 겨우 인생의 막다른 길, 니나노 집에서 몸을 파는 여자가 돼 있다니. 나는 나도 모르는 순간 악! 하고 비명을 지를 만큼 마음속이 들끓고 분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듯했다. 갑자기 눈앞에 안재민이 떠오른다. 죽은 그의 환영이 어른어른 계속해 얼비친다. 숨이 막혀 도저히 제대로 쉴 수가 없다. 나는 멈춰 세운 발을 단 한걸음도 더 이상 떼지 못하고 마치 석고대상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 늦은 밤 찬이슬에 몸을 맡겼다.

 

새벽녘, 남자가 허름한 문을 밀치고 나왔다. 그리고 어디론가 쏜살같이 몸을 감췄다. 덩치가 크고 우람한 체구의 남자였다. 지화영은 여린 몸매에 얼굴이 참 예뻤던 걸로 기억됐다. 마치 계란처럼 타원형에 매끈한 결이 유독 흰 피부와 함께 어우러져 우리 모두는 늘 감탄하며 부러움의 눈초리로 바라보곤 했었다. 안재민이 반할만도 했던 지화영, 그녀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이어지는 궁금증을 견딜 길 없어 무작정 그녀가 몸담고 있는 술집 안으로 쑥 몸을 들이밀었다. 조용했다. 인기척이 들렸을 텐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

 

23

. 나는 좀 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안쪽에 있는 허술한 방문을 살며시 열어봤다. 널브러진 옷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화영의 흐트러진 머릿결도 눈 속에 빨려 흡수됐다. 나는 심호흡을 거듭했다. 아직 세상만사 모르고 잠에 취해있는 지화영, 그녀의 꼴이 정말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살며시 방안으로 들어가 그녀 곁에 섰다. 그런 다음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이불도 덮지 않고 완전 나체로 뒤엎어져 자고 있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웠다. 부스스 눈을 뜨고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누구? 하는 눈초리다. 나는 또 한 번 숨을 내뿜었다. 그때야 그녀가 눈을 부비고 나를 찬찬히 쳐다본다. 순간 눈이 마주치자 지화영의 표정이 일순 바뀌었다. 자못 놀란 모양이다. 화들짝 몸을 일으켜 이불을 끌어당겨 덮는다. 알몸을 가리고자함인 거 같다. 그렇다고 더러운 사생활이 감춰지겠는가. 곳곳에 속옷이 나뒹군다. 유독 역한 화장품냄새와 술 냄새가 뒤섞여 후각을 파고든다. 나는 일순 상을 찌푸렸다. 그때 지화영이 입을 열고 나를 향해 말을 던졌다. 뜻밖이었다.

 

, 뭐야?”

 

눈초리가 매섭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뭐냐고!”

 

갑자기 지화영이 목소리 톤을 높여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는 머뭇거림 없이 대뜸 반문했다.

 

, 모르겠어?”

 

지화영이 눈망울을 굴렸다. 아무래도 기억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안재민 공장장이 다니던 가발공장, 그래도 모르겠어? 그렇담 김숙자 하면 생각날까?”

 

내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순간 지화영의 얼굴색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그녀

 

24

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지금 이 순간 뭐라 할 말이 없는 듯 보였다. 입술이 새파랗다. 나는 큰 숨을 다시 한 번 들이 내쉬고 그녀 앞에 몸을 턱 앉혔다. 그녀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몹시 아팠다. 동정과 연민이 함께 믹서 돼 내 가슴 한곳을 마구 흔들어댔다. 나도 따라 울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지화영이 입을 열고 말하기 시작했다. 변명인지 억울함인지 모를 애매한 하소연인 듯싶었다.

 

내가 무조건 배반했을까? 남녀 간의 일은 누구도 모르는 법이지. 물론 난 재민오빠의 덕으로 공부했고 잠시 행복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내 꿈은 어쩌라고. 처음엔 소박했지만 머릿속에 먹물이 들어가고 좀 더 넓은 세상을 접하다보니 난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걸 깨닫게 됐지. 그때부터 벗어나고 싶은 소망이 내 마음 안에 자리하게 됐던 거야. 이보다 더 크고 환한 세상 그걸 꿈꾸며 숨죽이고 살았는지도 몰라.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나도 피해자야. 모두가 돌멩이를 던졌지만 난 묵묵히 참아냈어. 그동안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코자 견뎌낸 거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상대하면 뭘 할까싶어 그랬던 거지. 지금 생각하면 확 쏟아내고 말걸 그게 악영향이 돼 결국 요 모양이 되고 말았지만.”

 

그녀는 계속 울며 말을 멈추지 않고 이었다.

지금은 팔자려니 해. 아님 업보겠지. 다른 사람들은 인과응보라고 할 테고. 하지만 억울해.”

 

지화영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뭐가?”

 

일방적으로 나한테만 욕하잖아. 진짜 내막은 알지 못하면서.”

 

내 물음에 지화영은 코를 씰룩거리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진짜 내막? 그게 뭔데?”

 

25

나도 콧바람을 날리며 물었다.

 

열네 살에 재민오빠 만나 내 사춘기를 잃었어. 뭐가 억울하고 손해 봤는데? 내 몸 망가진 건 생각 안 해? 그것 땜에 결국 남자로부터 버림받았어. 그 알량한 과거 땜에.”

 

그녀가 또다시 흐느꼈다. 자신의 말끝에 감정이 복받친 모양 같았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망연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까지 한쪽 편에서 일방적으로 욕하고 탓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가해자로 알고 있던 지화영이 지금 이 순간 자신도 피해자라고 서러움을 토해내며 말하고 있다. 재삼자인 내 입장에서 어찌 생각해야할까. 망자는 말이 없다. 오직 살아있는 자만이 변명이나마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렇게 오랫동안 멍을 때리고 있었다. 한참 뒤, 다시금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귓전으로 흘러들었다.

 

물론 내 잘못이 더 크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땐 너무 어렸고 삶이 힘들었고 배가 고팠어. 그리고 배우고도 싶었고. 그렇지만 절대로 재민오빠를 이용할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어. 진심이야. 은혜를 저버리면 안 된다는 거쯤 나도 알고 있어. 헌데 많이 배우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보니 정말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 보이지 뭐겠어. 우물 안의 개구리가 그곳이 온 우주고 전 세계인줄 알고 살아가듯 난 그 당시만 해도 재민오빠가 내 전부라고 여겼거든. 그래서 무작정 뛰어들고 품에 안겼는데 후일 되돌아보니 그게 아니었어. 억울한 생각도 들고 이용당했다는 기분도 떨쳐버릴 수가 없더라고. 한창 사춘기 그 시절을 몽땅 재민오빠한테 바쳤다고 생각하니 분하기 그지없었으니까. 밤마다 맘껏 주무르고 핥고 난 마치 노예처럼 아니 받아먹는 돈만큼 대가를 치러야만 했던 거 같아. 나는 뒤늦게 깨달았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거.”

 

나는 지화영의 긴 말이 끝나자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일으켜 세우고 문지방을 넘어 방 밖으로 나왔다.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미 신경세포가 모두 죽어버린 느낌뿐이다. 내 등 뒤에서 지화영의 슬픈 목소리가 또다시 귓전을 때린다.

 

 

26

하지만 진짜 미안해. 그때 그 순간은 정말로 사랑했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휘청거리는 두 다리를 옮기며 술집 밖으로 나오자 먼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그때야 내 얼굴이 온통 눈물로 젖어있다는 걸 알았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이 사건, 과연 누구의 죄일까. 사랑보다 진실보다 가난이 죄인 거 같다. 나는 이렇듯 결론짓고 하늘에서 눈을 뗀 다음 천천히 공장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야학교엔 갈 수 없다. 곧 작업이 시작될 시간이므로. 새벽이 걷혀가는 하늘은 동이 트는지 먼 곳에서부터 밝아오는 거 같았다.

 

 

7. 이별

 

그해 가을도 다 지나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한겨울 밤, 나는 야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공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눈은 엄청 쏟아져 내렸다. 나는 목도리를 코 위까지 올려 두르고 옷에 묻은 눈을 수시로 털어내며 간신히 공장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공장 문 앞에서 신발을 툭툭 턴 다음 머리에 쌓인 눈을 고개를 세차게 몇 번 흔들어 흩날려버렸다. 그 시간에도 계속 눈은 멈추지 않고 내리는 중이었다. 하얀 눈발 때문인지 주변이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다. 나는 무심코 막 공장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려다 묘한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홱 돌렸다. 누군가 서있다. 덩치가 약간 큰 남자로 보였다.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 눈꼬리를 올리고 자세히 살펴봤다. 남자가 분명했다.

 

누구?”

 

나는 그때야 목소리를 냈다. 엉거주춤 다가오는 남자, 뜻밖에 서강우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밤 야학교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었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여러 사람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 그가 지금 이곳에 우두커니 서있다.

 

웬일?”

 

내 물음은 왜 이 시간에 공장 앞에 서있느냐는 뜻이었다. 대답이 없다. 서강우

 

27

는 한참동안 내 앞에서 말없이 나를 주시하더니 이내 내 손목을 잡아끌고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뭐야? 왜 이래?”

 

나는 엉겁결에 서강우에게 끌려 발을 내디디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음을 던졌다.

 

잠깐이면 돼. 할 얘기가 있어.”

 

그는 숨을 헐떡이며 애원하는 어조로 말했다. 순간 의외로 그의 손길이 따사로웠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괜스레 마음도 후들후들 떨렸다. 생각지도 않던 감정이 내 가슴 끝에서 해일처럼 일어났다. 순간, 그가 나를 확 잡아당겨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얼떨결에 나는 아얏,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의 가슴에 안겨 거친 숨을 내뿜었다. 그의 뺨이 내 입술언저리를 스쳐 지났다. 연이어 뜨거운 호흡이 내 전신을 마비시켰다. 이미 조금은 예감했던 서로의 시작이었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서강우의 눈빛을 읽고 있었다. 나도 별로 거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 탓에 묘한 자존심을 앞세우며 차일피일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거뿐이었는데 다행히 그가 먼저 다가와 줘 나는 못이기는 척 안겼는지도 모른다. 가슴을 짓눌러오는 격한 감정은 온 누리를 평화롭고 아늑하게 느끼게 했다. 하얀 눈 더미가 싸늘함을 뒤로하고 훈훈하게 적셔온다. 백색의 고운 눈발이 끝없이 휘날리며 코언저리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잠시 후,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를 내 몸에서 떼어냈다. 서강우는 말없이 나를 뒤로했다. 서운한 생각이 잠깐 내 가슴을 휩쓸고 지났다. 저만큼 멀어져가는 서강우의 등 뒤에서 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비밀 지켜줘.”

 나는 뜨끔 뒷일이 걱정됐다. 서강우가 슬쩍 뒤돌아보고 다시 앞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평소 말수가 적은 서강우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밤이었고 더욱이 눈보라치는 날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발길을 돌렸다. 서강우, 그의 모습은 서서히 사라져버린 후였다. 또다시 전신이 후끈 달아올랐다. 내 귓불에 대고 서강우가 속삭이던 사랑해.”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까닭이다. 유독 밤하늘이 맑고 곱게 보였다.

 꿈과 희망에 벅차있던 내 마음은 이제 사랑까지 얻어 세상을 전부 독차지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람에겐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인 거 같았다. 코피를 쏟으면서까지 열심히 했던 내 공부는 빛을 봤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지 않았다. 결혼을 약속했던 서강우가 군에 입대한 뒤 나는 사뭇 들뜬 마음으로 이제 학생을 뛰어넘어 야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한몫 거들고 나섰다. 드디어 중학교조차 가지 못했던 내가 선생이 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거듭되는 검정고시 합격을 거쳐 나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정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의 가시밭길이 있었던가. 눈치를 보며 유독 눈엣가시로 여기던 공장의 감독과 여러 시선들, 나는 한껏 주눅이 들어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늘 기죽어 살아왔다. 거기에 시기질투는 또 어떠했는가. 어느 때는 책이 찢겨져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고 모두들 쑥덕거리며 손가락질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는 의식하지 않고 꿋꿋한 심정으로 오직 한길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현재는 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 어느 날인가는 정규학교에서 제대로 된 모습으로 교단에 설 날이 반드시 있으리라 여기며 나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더욱 열심히 공부에 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처럼 첫 번째 휴가를 나왔다는 서강우 그의 연락을 받고 나는 부리나케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이 자못 들떠 몸은 이미 붕붕 떠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약속한 지하다방으로 들어서자 벌써부터 애절한 음색의 팝송이 내 귓전을 파고들었다. 평소 라디오에서 많이 들었던 탐 존스딜라일라였다. 서강우는 언제 왔는지 먼저 한곳에 자리를 하고 앉아있었다. 나는 얼른 그 앞으로 다가가 맞은편의자에 몸을 앉혔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커피 잔이 서강우와 내 앞에 각자 한잔씩 놓였다. 나는 무심코 내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홀짝 마신다음 다시 접시위에 내려놨다. 서강우는 전혀 마실 생각이 없는 듯 계속 커피 잔을 만지작거렸다.

 무슨 일 있어요? 심각해 보이는데.”

“......”

  서강우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답답한 심정에 재차 다그쳤다.

 말해 봐요, 무슨 일인데?”

 며칠 후에 나 월남으로 떠나.”

  그때야 서강우가 입을 열었다.

  네에?”

  나는 화들짝 놀라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갑자기 왜?”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다시금 확인 차 물음을 던졌다.

  어쩔 수 없이 다녀와야만 될 거 같아. 결혼식은 다녀온 다음 하기로 해. 지금으로선 형편이 안 되잖아.”

  침울한 목소리로 이렇듯 말하는 서강우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보였다.

  형편이 무슨 필요예요. 있는 그대로 하면 되는 거지.”

  내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래도 난 앞으로 태어날 내 자식한테만은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버둥거려봤지만 벗어날 수 없었던 가난, 그 중에도 제일 하고 싶던 공부를 맘껏 하지 못해 마음에 한이 됐어. 때론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왜 내가 태어났는지 불만스럽기 그지없던 때도 있었어. 그래서 맘 독하게 먹고 우리자식한테는 대물려 주지 말자, 하고 생각한 끝에 선택한 길이야.”

 나는 마음과는 달리 그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머나먼 월남의 전쟁터로 떠난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나는 잠시 억장이 무너져 입을 딱 벌린 채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진정 내 마음속엔 어디든 가서 돈만 많이 벌어온다면 하는 얄팍한 계산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용병, 그는 드디어 나라를 위해서도 떠나야했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돈을 벌기위해 그 길을 순순히 택했는지도 차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8. 세월은 흐르고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에 있는 육군 제3사관학교에서 초대장을 보내왔다. 생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취지에서 치러지는 행사였다. 들뜬 마음으로 향했다. 아련한 기억이 머릿속을 채워온다. 언제였던가. 벌써 44년이 흐른 세월이다. 뱃고동소리가 멀어지는 부둣가, 많은 군인들이 몸을 싣고 향하는 곳은 월남의 전쟁터였다. 못내 아쉬운 가족을 뒤로하고 이별의 순간 어금니를 깨물던 당신과 나의 모습,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내 가슴에 머문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임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 같은 겨레마음 임의 뒤를 따르리라/ 한결 같은 겨레마음 임의 뒤를 따르리라

 귓속을 파고들며 쟁쟁하게 울려오던 서글픈 시간, 나는 몸을 움츠리고 가슴을 떨었다. 과연 살아 돌아올 것인가, 하는 불안함이 엄습해오고 제발 무사귀환을 빌었던 내 작은 소망이 무너지는 그날이 또다시 스멀스멀 내 머릿속을 채워온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그는 지키고 싶었겠지만 상황이 여건이 안 됐을 것이다. 나는 그 점을 이해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가끔 눈물짓곤 한다.

꼭 살아 돌아오세요.”

알았어. 반드시 다시 올게.”

 그는 떠났고 나는 홀로 남았다. 하지만 그는 살아만 빼고 약속을 지켰다. 돌아오긴 했으니까. 한줌 재로 그는 국립묘지에 묻혔다. 2개월 만에...... 졸지에 유복자가 된 내 아들은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육군 제3사관학교에 입학한 뒤 평생 군인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사관생도들이 씩씩한 걸음걸이로 앞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행진을 한다. 하얀색 상하의에 군모만이 색깔을 달리한 모습들이다. 나는 그 옛날이 자꾸만 떠올라 눈물을 내비쳤다. 어머니는 강하다. 군인의 아내나 어머니는 더더욱 강하다. 그러므로 결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내비쳐서는 안 된다. 이런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결국 소리 내 울고 말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오른 탓이었다. 주변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나는 의식하지 않고 연신 훌쩍였다. 늠름하고 장한 내 아들보다 먼 날 나를 홀로 두고 떠나버린 남편이 사무치게 떠올라서였다. 그는 왜 꼭 월남으로 떠나야만 했던가. 물론 나라의 부름도 있었겠지만 가난이 그를 용병으로 등 떠밀었는지도 모른다. 1960년대 지긋지긋한 가난이 삶도 뒤죽박죽 만들어버렸고 사랑도 결코 온전히 지켜낼 수 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배고픔이 우선이었기에 피폐된 정신은 여러 가지 행태로 나타나곤 했다. 단 돈 몇 푼에 여자는 술집으로 식모로 팔려가기도 했고 남자는 일자리를 찾아 먼 외국으로 즉 사우디 같은 중동으로 노가다현장을 뛰기도 했던 것이다. 이제 정녕 먼 얘기다. 먹을 것이 넘쳐흘러 먹기 싫어 안 먹는다. 부지런한 자에게는 언제나 풍족한 삶이 보장되는 세상, 배우고 싶으면 아무 때고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의 시대가 나는 너무도 좋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그가 내 곁을 떠나고 난 다음 나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마냥 그럴 수만은 없었다. 어느 때는 목숨을 끊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엔 이미 내 뱃속에 죄 없는 한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그래, 한번 살아보자. 이보다 더한 삶도 살아왔는데 못살게 뭐 있겠는가. 모든 거 훌훌 털고 새롭게 일어서보자. 굳은 각오가 내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언젠가 태어날 자식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한 번 용기를 가졌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는 날도 나는 모진 맘으로 세상과 부딪쳤다. 그러다보니 세월은 흐르고 어느새 세상 밖으로 나온 내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나 성장하고 있었다.

모든 근심걱정을 접은 뒤 어느 정도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이 평온해지자 나는 다시금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되살아났다. 아들이 군에 입대한 다음이었다. 망설임 없이 학원 문을 두드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전념했다. 그 결과 드디어 나는 정규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모두들 환호를 하면서도 의아한 눈빛을 날렸다. 나이 50이 넘어 대학생이라니, 손자 벌 되는 학생들과 어찌 함께 공부를 한단 말인가. 등록금으로 맛있는 거 사먹고 여행이나 다닐 일이지, 하고 만류하는 친구 이웃 그리고 여러 지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당당하게 강의를 듣고 책을 옆구리에 낀 채 교정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모 대학 강사로 강단에 섰다. 상담학을 전공한 나는 항상 많은 사람들을 접하며 색다르고 즐거운 인생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난날의 서글픈 과거는 잊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내가 한없이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나이가 무슨 문제이겠는가. 배움의 문턱이 조금 높기는 하지만 열심히만 한다면 아무런 걸림이 없다. 그러므로 내 현재의 삶은 평화롭고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이승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만큼 남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남은 생 더욱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죽는 그 순간까지 나는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련다. 100세 시대, 그 절반이상을 살아버린 내가 이제 무엇을 더 바라고 욕심을 부리겠는가. 지금의 나는 진정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 다만 남은 꿈과 희망이 있다면 자식 건강하고 내 생애 최고인 공부만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행복한 시간들이다.

 

당선소감

김영숙
김영숙

가슴이 뜁니다. 먼저 살아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세월 무던히도 아팠던 기억들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70을 바라보며 이제야 가슴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눈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속울음을 삼키며 국립묘지를 몇 번이고 다녀왔지만 풀길 없던 가슴속의 한이 일순간 전부 해소되는 거 같습니다.

뜻밖의 당선소식을 접하고 보니 모든 게 꿈만 같고 지나온 시간이 아련히 머릿속을 헤집고 다시금 스쳐 지납니다. 삶은 힘들고 고달팠지만 어려운 시련을 뚫고 단 하나 소망이었던 공부에 대한 열망은 아직도 식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슬픔도 이미 지난 과거가 됐고 이젠 오직 현재만이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 저는 여전히 행복한 미래를 바라봅니다. 비록 나이는 거부할 수 없어 한해 두해 더해가지만 이토록 좋은 세상 정녕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손가락에 못이 박히도록 쓰고 또 쓰며 저는 지금도 변함없이 컴퓨터자판을 두드립니다.

 길을 걷던 중 핸드폰에 생소한 번호가 뜨기에 무심코 거절을 눌러버렸습니다. 헌데 마음에 걸리는 053이라는 지역번호가 한번 확인하고픈 생각을 번뜩 들게 했습니다. 대구, 그래서 다시 전화를 했는데 기쁜 소식이 전해져왔습니다.

 논픽션 부문에 열망이라는 작품이 당선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이보다 더 가슴 뛰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갑자기 석고대상처럼 우두커니 서 쓴웃음을 머금었습니다. 늘그막에 문학소녀가 된 기분, 정말로 좋았습니다. 더불어 숨 쉬는 그날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 더욱 노력하고 보답하는 심정으로 매일매일 펜을 놓지 않겠습니다. 끝으로 영광스런 오늘의 발판을 놓아주신 매일신문과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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