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김현숙 '내 영혼의 까치발'

내 영혼의 까치발 / 김현숙

쉰의 중반을 넘던 때는 꽁꽁 동여맸던 허리띠를 잠시 풀어놓고 싶었다. 여유와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지만 그마저도 사치였을까.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내 목숨은 갑자기 벼랑으로 추락했다. 나는 호소할 틈도 없이 뉘누리는 큰 입을 벌리고 날 향해 달려들었다.

"대장암입니다. 위치도 몹시 나쁜, 횡행 결장암입니다."

눈을 감았다. 그때 바람이 불었던가. 눈앞에 있던 창이 흔들리고 나무가 흔들리고 사람들 옷자락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긴장으로 손에 땀이 흥건했다. 눈을 떴을 때 컴퓨터 화면에는 내 몸의 일부인 내장 부위가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둥근 통로를 막고 있는 대롱들, 피고름이 엉겨 붙은 붉은 형체를 나는 무심히 바라보았다.

"영상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3기로 추정되는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됐다면 수술도 불가능합니다."

그 순간, 날 붙잡고 있던 어떤 끈이 툭,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편치 않았던 지난날 삶의 조각들이 물거품처럼 바위에 산산이 부서졌다.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은 수시로 날 향해 날아들었다. 어느 날, 남편의 폭력과 인권유린에 길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내 존재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자유를 찾게 했다. 하지만 자유에 대한 대가는 처절했다. 거기엔 절망이란 단어가 찍혀 있었다.

대장 내시경 검사 전날, 무엇에 이끌리듯 나는 도깨비 시장으로 향했다. 깊은 어둠 속을 몇 시간째 정신없이 헤맸는지 모른다. 걸음을 멈추고 보니 내 손에는 겨우 몇 가지 찬거리가 들려 있었다.

오래 살았던 만큼 많은 추억이 스며있는 동네였다. 낡은 집들이 사라진 곳에 새로운 빌라가 들어서고 있었다. 골목을 돌아 나오다 폐가를 만났다. 불에 탄 듯 폐가는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다. 텃밭에 타다 남은 개나리 가지 앞에서 나는 서성였다. 손을 뻗어 개나리 가지를 쓸어내리는데 가지가 내 손을 꼭 붙들었다. 어차피 폐가와 함께 사라질 생명에 대한 애착이었을까. 난 무작정 개나리 몇 뿌리를 파헤쳐 까만 봉지에 주섬주섬 담았다. 검게 그을렸지만 가지 끝은 마치 사위어가는 내 모습 같아 신들린 듯 창가 화분에 심었다.

대장암 선고를 받던 날은 한숨도 못 자고 뜬눈으로 뒤척였다. 겨우 새벽녘에 잠이 들 무렵, 독서실에서 돌아온 아들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요즘 암은 웬만하면 다 치료가 된대요. 아무도 엄마를 못 데려가게 수술실 밖에서 내가 지킬게요.

그렇게 큰소리치던 아들은 겨우 대학생일 뿐이었다. 수술 전날 아들은 쪽 침대에서 노트북에 코를 박고 졸고 있었다. 검색창에는'대장암'이란 글씨가 떠올라 있었다.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신에게 매달렸던 순간에 아들은 훌쩍 커버린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아들은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병은 그렇게 우리에게 각자의 길을 알려주었다.

"지금부터 마취제가 들어갑니다. 천천히 하나, , 셋을 세어보세요."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내 의식은 서서히 무의식으로 이동했다. 그때 온몸을 파고드는 경쾌한 리듬이 있었다. 급박한 수술실 안에 울려 퍼지는 요한슈트라우스의'봄의 소리 왈츠'는 무엇을 의미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그건 내가 꼭 붙잡아야 할 삶의 끈이었던 것도 같다. 얼마쯤 지났을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온몸에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지독한 한기와 함께 통증이 몰려왔다. 아들이 덮어준 푸른 담요 한 장의 온기로 나는 죽음과 싸웠다. 아들은 내게 온기였고, 아들에게 난 울타리였다.

수술 후 회복 기간은 죽음과 맞닥뜨린 후 찾은 또 다른 평안이었다. 비로소 영혼의 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창가에 심어 둔 개나리도 겨울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얼굴을 가까이 대자 파릇한 숨이 느껴졌다.

"~!!"

한밤중 어디선가 새털같이 가냘픈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난 무심코 창문을 열어보았다. 어둠 속에서 노랗게 반짝이는 등불을, 부러질 듯 깡마른 시커먼 나뭇가지 끝에 생명의 환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생사를 넘나들던 시간이 그 작은 꽃잎에 맺혀 있음을 알았다.

십 년이 지났다. 해마다 개나리를 보면, 아니 봄기운이 느껴지면 가슴이 뛴다. 마취 직전, 수술실 안에 흐르던 요한 슈트라우스의'봄의 소리 왈츠' 그것은 죽음의 문턱에서 서성이던 내 영혼의 까치발이었다.

<끝>

◆당선 소감

김현숙 씨
김현숙 씨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둡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비틀대다 상처입고 주저앉기도 했습니다. 빛이라곤 없는 어둠속은 깊은 수렁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을 때 어떤 외로움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만 멈춰서도 난 혼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한 발짝 한 발짝, 어둠의 속살을 밟고 가느다란 빛을 찾아 손을 내밀었습니다. 빛은 조금씩 환하게 바뀌었고 어둠은 어느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메말라 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 지금 우리 조선은 이렇게 어두컴컴한 삶 속에 놓여 있습니다. 제발 저에게 밝은 학문의 길을 열어 주셔서 이 나라를 학문의 등불로 밝히게 해주세요."

문득 하란사가 이화학당에 입학할 때 프라이 교장에게 간곡히 부르짖었던 절규가 생각났습니다. 살아있다는 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을 가졌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수필 <내 영혼의 까치발>은 대장암 선고를 받았을 때의 절망을 그렸습니다. 그때 제게 세상은 온통 암흑이었습니다. 외로움이 오히려 친구였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졌던 이들도 죽음을 예측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습니다. 세상 눈빛이 모두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오직 아들만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함께 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형식적인 위로를 앞세우는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홀로 방황하던 약한 영혼은 죽음의 문턱에서 필사적으로 까치발을 들고 세상과 맞섰습니다.

아무도 제게 문학이 천명(天命)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고독한 글쓰기였지만 손에서 놓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매달렸습니다. 우연히 방송대 선배인 장미숙 작가와의 만남에서 저는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웅크리고 있던 제 의식이 졸탁(啐啄)으로 깨어지던 날. 저를 가두었던 두려움도 깨졌습니다. 인간에 대한 진실한 사랑만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당선작으로 올려주신 매일신문 관계자분들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고개 숙입니다. 예순이 훨씬 넘은 나이는 글쓰기에 장애가 될 줄 알았는데 그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껍질을 벗고 나온 애벌레의 마음으로 묵묵히 수필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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