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진상용 '그 사막의 비망록'

나는 1984년 당시 이라크에 있었다. 건설회사의 해외취업 근로자로 나간 것인데 인접국 이란과의 전쟁으로 언론의 중심에 있었고 치안상황도 좋지 않아 중동 지역 중,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였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땀 흘리던 동료들, 귀국 후 풍토병에 시달리는 거나 더러 가정이 해체되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당시 중동건설 특수는 국가적으로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개인적 생활 수준향상에 기여한 바 크다.

7,000여 년의 역사와 찬란한 전통문화를 계승하면서도 끝없는 외세의 유린이 거듭된 그 땅엔 지금도 완전한 평화가 오질 않았고, 34년 전에 우리가 신변위험을 감수하면서 건설해놓은 시설물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지곤 한다. 지금도 유용하게 잘 쓰이고 있는가. 아니면 파괴당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을까.

이 글은 출국부터 귀국하는 날까지 1년 동안의 기록이다. 말단 근로자 신분이었고 사정상 일부만을 공개하자니 내용이 미흡할 수도 있지만 겪고 본대로, 들은 만큼을 사실적으로 적었으며, 결혼 3개월 만에 생이별한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를 비롯해 일기와 노트에서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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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7.7

이제까지의 모든 상념을 털어 버리고 11시 김포 발 KAL 857편을 탔다. 마지막 순간 얼굴 마주하기가 곤혹스러울 것만 같은 예감에 집에 그냥 있으라고 당부했는데도 고집스럽게 공항까지 따라온 아내.

오래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외면하게 되는 건 내가 미욱한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돌아선 것이 후회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활주로를 이륙한 보잉 DC-10기는 다섯 시간을 날아 태국 방콕공항에 우릴 내려놓았다. 비행기 창밖으로 빗줄기가 날리고 있다. 환승구역에서 한 시간을 대기하고 다시 바레인으로 향한다. 6시간 후에야 바레인 공항에 내렸다. 아직도 해는 저물지 않는다. 고국은 이미 새벽 두시경이다.

한 시간 머문 뒤 바그다드로 날아가는 데는 1시간 40분이 걸렸다.

무려 열일곱 시간의 비행, 보안상 등화관제를 한 채 착륙한 국적항공기에서 내려 까다로운 입국수속을 마친 다음 공항 밖으로 나와서야 말로만 듣던 중동의 기후가 실감난다. 10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온몸을 휘감는 열기에 숨이 막힌다.

버스로 30분 달려 '하이파' 숙소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내일 아침에 목적지인 '키르쿠크'로 출발할 예정이다. 좀처럼 잠이 들질 않는다. 피로와 노독과 심리적 불안정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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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보구려.

어제 이곳에 도착했소. 지금 여기 시각은 저녁 7시 반, 한국보다 6시간 늦으니까 새벽 1시일 테니 당신은 깊은 꿈속에 있을 시간이오.

이곳은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키르쿠크'란 곳인데 생각보다 기후가 좋고, 숙소 시설도 괜찮은 편이라 불편이 없을 것 같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나라가 전시(戰時)이고 여러 사정상 우편물 송달이 원활치 못한 것 같소. 그러니 편지 자주 못하더라도 너무 걱정 말아요.

참 순서가 바뀌었는데 부모님들께도 잘 지낸다고 안부 전해드리고 나 없는 동안 부족한 내 몫까지 효도하면서 수고 좀 해야겠소. 나 같은 사람 만나 고생하는 당신에게 어떤 위로나 변명보다는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나을 듯하오.

무엇보다 당신 건강이 무척 염려되오. 맘 편하게 먹고 매사에 무리하지 말고 다시 글 띄울 때까지 잘 지내요.

추신: 이곳 사정은 현지 우체국을 이용하는 것보다 귀국자나 기타 인편이 훨씬 빠르니까 답신할 때 70원짜리 국내 일반우표를 넉넉히 넣어 주시오. 그리고 그쪽에서 편지할 때도 항공우편으로 하면 늦은데다 요금도 비싸니까 본사 사무실로 보내요. 그곳에서 모아 인편에 여기로 보내줄 거요.

198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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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사람아.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더니 초복인데 햇볕이 좀 납니다. 당신이 떠난 순간부터 온 세상이 암흑처럼 느껴졌고 하루를 눈물로 보내버렸습니다.

당신이 기내에서 쓴 엽서는 볼수록 눈물이 나서 서랍 깊이 넣어둡니다.

어제 토요일,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머니께서 편지 왔다고 주시길래 너무나 반가워 뜯어보지도 않고 방에 가서 실컷 울었습니다. 이제 겨우 8일째인데 8년은 된 것 같아요. 아마 내 눈에서 눈물이 마를 때쯤 당신이 돌아오시겠지요.

이제 1122일이 남았군요. 빨리 계절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하루에 한번쯤은 마누라 생각 잊지 마시고 편지 쓸 시간 부족하거나 일이 힘들면 안 써도 돼요. 당신 맘 다 아니까요. 식구들 걱정 안 될 만큼만 소식 전하세요. 국내의 중요한 소식 자주 알려 드릴게요.

1984.7.15

수원에서 정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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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도착한 뒤 두 번째 글을 쓰고 있소. 그동안 집에 별일은 없는지 부모님과 당신 건강은 괜찮은지 두루 궁금하오. 여기 온지 열하루가 됐으니 생각보다는 날짜가 잘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이곳은 아침 6시에 근무를 시작해서 저녁 7시 반에 끝나는데 정오부터 3시까지는 오침(午寢) 시간이오. 그리고 여러 정황 상, 다른 중동국보다 보수가 약한 모양인데 큰 걱정은 하지 마시오.

이 나라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하자면 한반도 두 배 가량의 국토에 2,500만의 인구가 살아요. 기원전 5,000년경부터 유프라테스 강, 티그리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인류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이며 동시에 바빌로니아, 수메르, 앗시리아 같은 찬란한 고대 문명국가를 세웠던 곳이래요. 이 황폐한 땅에서 문명이 발달해왔다는 사실이 역설적이긴 하네요.

국토의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물을 먼 사막에 끌어들여 농토로 개간하려는 관개수로공사를 우리 회사 500여명이 맡아 하고 있어요. 인공 강이 완공되면 이 불모의 사막이 푸른 낙원으로 변하겠지. 아마도 조상들의 찬란한 고대국가가 무너진 이후 이들에겐 가장 대역사일 것이오. 작업 진도로 보아 내가 귀국할 때쯤이면 완공이 될 것 같아요.

알다시피 이곳은 사회주의 국가인데다 전쟁 중이라 모든 물자가 부족하여 가격도 비쌀 뿐 아니라 생활필수품 수급이 통제되고, 그래서 쇼핑센터 앞에는 할당 물품을 사기 위해 긴 줄이 생깁니다.

회교국가라 금요일이 휴무인데 원래는 한 주 오전근무, 한 주 휴무하기로 정했다고 하나 매주 쉬고 있소. 안전 상 가급적이면 야간엔 작업을 안 해요. 일과 후엔 비디오가 방영되고 도서실에 책도 많아 지루한 건 없는데, 방송은 물론 신문 한 장 볼 수 없으니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겠소. 형편 되면 묵은 신문이나 잡지라도 좀 모아 보내주세요.

본사 해외인력부 주위엔 브로커나 사기꾼이 많고 또 여기에서 근무해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가 사기사건을 벌인다는 말이 있으니 주의해요.

요즘 이곳 기후는 40~50사이요. 하지만 건조한 덕에 못 견딜 정도는 아니오. 많은 얘기 전하고 싶으나 다음으로 미루고 이만 쓰려오. 건강하게 더위 잘 넘기길.

1984.7.17. 멀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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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듯한 더위가 내 몸을 땀으로 적셔놓네요. 겨우 30도 좀 웃도는 날씨에 이토록 한심한 내가 당신에게 죄스럽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시다니 무척이나 다행입니다. 지난번에 보낸 편지 속의 우표는 받으셨는지요. 갑자기 고립된 세상에서 지내기가 여러 가지로 불편하시죠?

급한 마음에 마구 나가다보니 두서가 없는데 부모님, 아가씨, 그리고 저, 당신 염려덕분에 편히 지냅니다.

거기 기후도 그렇지만 음식이 잘 나오는지 궁금해요. 필요한 물품은 바로 연락 주세요. 구해서 보내드릴게요.

지금도 세계에선 시시각각 별별 사건이 다 일어나요.

21개 종목에 216명의 LA 올림픽선수단이 5개의 금메달을 목표로 현지로 떠났습니다.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정문 앞엔 인종차별을 없앤다는 상징으로 얼굴 없는 나체 조각상이 세워졌고 LA의 폭염과 스모그로 기록이 저조할 거라는 전문가들 예상이네요. 미국은 레이건 재선 도전에 맞설 '먼데일'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구요.

참 동생이 왔다갔어요. 자형이 안 계시니까 좀 그렇다고 바로 가버리더군요. 얼마 뒤면 엄마 생신인데 나 혼자 가려니 속상해. 어떡하지?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

돈 문제에 신경 쓰지 말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잘 지내다가 우리 다시 만나는 날 정말 뜨거운 마음으로 남들보다 몇 배 행복하게 살자.

밤이 깊었어요. 내일을 위해 오지 않는 잠을 들어야겠어요. 며칠 동안 눈물로 밤을 밝혔어요. 당신도 잘 자요.

1984.7.21. 수원에서 당신의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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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이 보낸 첫 편지가 왔습니다. 꼭 보름 만인데 몇 달이 지난 듯 느껴집니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봉투를 뜯어서 네 번 반복해서 읽고 이 글을 씁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받아본 많은 것 중 가장 반가운 글. 지구상의 어떤 명작 구절이 이토록 속속들이 가슴에 박힐 수가 있을까.

당신 편지엔 믿음직스러운 내용도 있지만 가슴 뭉클한 내용 또한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 아픈 건, 밤마다 눈물로 밤을 밝힌다는 내용이었어요. 왜 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 깊이 못을 박는 모진 인간이어야 하는가의 자책에 시달려서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지만, 그러나 냉철한 마음으로 처신하는 게 최선의 방법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음 같아서야 매일 편지를 쓰면 좋겠는데 그런다고 매일 가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한두 번만 인편이 있으니 어쩔 수가 없소.

우리가 선택한 길, 조금 더 고생을 감수하면서 살아갑시다. 지금의 고통을 잘 받아들이면 가까운 날에 그 이상의 보답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집시다.

비록 세상에서 가장 못나빠지고 재주 없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당신을 위해서 늘 고뇌하고 있음을 알았으면 합니다.

1884. 7.22. 멀리 키르쿠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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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7.25

숙소 통로 한 복판에 붙은 벨이 악령의 고함처럼 450분을 알린다. 기지개 켜는 소리, 짜증 섞인 푸념, 억지로 눈을 비비며 옷을 입는 소리들로 잠시 어수선한 사이, 잠귀신 쫓지 못한 게으름뱅이들 깨우려고 볼륨 올린 확성기의 앰프에선 경음악이 흐른다.

아직도 검은 어둠 속에서 밤새 식지 않고 우리가 나오길 기다린 듯한 열기.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대기가 떠밀려간다는 표현이 옳다.

식당 앞에 기다란 줄이 늘어서고 몇 술 뜨는 둥, 마는 둥 한 채 숟가락을 놓았다. 아직 모든 환경에 익숙지 않은데다 불면증으로 밥맛이 없다.

다섯 시 반에 각 공구로 출발하는 버스를 탄다. 못타면 하루 결근이다. 캠프에서 20분 달리면 공구 사무실. 공구장과 담당기사들로부터 작업지시를 받고 현장에 배치되면 6.

이제야 동쪽 지평선으로 태양이 솟는다. 커다란 불덩이가 대지를 누르며 불끈 솟아오르는 걸 보노라면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몸서리나도록 붉은 덩어리는 고통스런 또 하루의 시작이다. 마치 거대한 용광로에 불을 붙이듯, 저 태양은 이제부터 지상의 모든 것을 펄펄 녹여댈 것이다.

신은 지구 한쪽에 불모의 사막을 만들어 놓고, 그 밑에 검은 보물을 숨겨두었다. 이제껏 그런 게 있는 줄도, 용도도 몰랐다. 근래에야 버려진 땅 밑 '검은 물'의 진가를 알았고 그 땅의 주인들은 지하보물을 파낸 돈으로 지상낙원을 짓는다. 앞으로 5,60년 뒤면 땅속 가득한 석유가 바닥난다니 대신 땅 위에 투자를 하는데 자신들은 손대지 않고, 또 손댈 기술도 없어 남의 나라 사람들을 불러다 시킨다. 큰 권리는 선진국 사람들이 주무르고 가난한 나라사람들이 와서 품을 파는 셈이다.

마치 거대한 공룡의 뼈대처럼 엮어져 올라가는 구조물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하루 일을 시작한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폭염에 땀으로 적셔진 작업복은 바로 소금자루가 되고 가져온 물통은 두 시간도 못돼 바닥을 드러낸다. 얼음채운 물

, '물 뼉다귀' 란 은어의 얼음은 금세 다 녹아버리고 만다. 간식과 점심은 차량으로 현장에 배달된다.

사정상 고용하게 된 현지인들은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그들끼리 따로 모여 먹는다. 우리가 농담으로 개밥이라 부르는 '케밥'인데 밀가루 반죽을 전병처럼 납작하게 구워와 안에 양파나 토마토조각 등을 싸서 맨손으로 먹는다.

기나긴 일과가 끝나고 7시 반에 버스가 온다. 지평선 끝으론 하루 종일 폭력을 가한 태양이 거만하게 침잠해 들어간다. 그 하늘 위에 수백 마리의 까마귀 떼가 무리를 지어 나른다. 복제인간인 듯 나와 똑같은 모양을 하고 비슷한 표정을 지은 채 버스에 탄 군상들은 모두 녹초가 되어있다.

앰프의 대중가요가 멀리서부터 반기는 캠프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샤워와 세탁을 한 다음 휴게실을 가거나 숙소에서 쉰다.

휴게실에선 열시부터 포르노 테이프를 틀어준다. 음란이니, 퇴폐니를 떠나 성()과 단절된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다. 이렇게 사막 끝의 또 하루는 어제와 다름없이 마무리되었다.

1984.7.31

제구실하는 식물 하나 없고 선인장 비슷한 가시 풀이 드문드문 자랄 뿐인 넓은 사막에서 도대체 저토록 많은 양들이 무얼 먹고사는지 궁금하다.

수십, 수백 마리의 양떼를 몰고 사막을 지나가는 목동들은 권총과 기관총을 함께 소지하고 다닌다. 우리한테야 생소하지만 여기서는 총기휴대가 허용되므로 일상사인 광경이다.

사람들은 아주 순박하고 친절하다. 사막 중간 중간에 부락을 이루었는데 진흙벽돌로 허술하게 지은 집에서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살고 있다. 매사에 바쁠 것도, 서두는 것도, 집념도, 악착스러움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인샤알라' '알라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대낮에도 느긋하게 모여 앉아 홍차를 마시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물 담배 피우는 모습이 이들의 민족성을 잘 보여준다. 숯불을 피운 다음 여러 기구를 설치하는 과정을 거쳐 담배를 다 피우기까지 두어 시간은 걸리는 듯싶다.

여자들은 대개 검은 차도르를 입고 남성은 흰옷에 머리엔 터번을 두른다. 아무리 깨끗이 차려입고 나선다 해도 황사바람 한번 지나가면 흙투성이가 되고 만다.

여자들이 힘든 일을 거의 도맡아 한다. 밭일은 물론, 짐승을 돌보고 작은 망태기를 멘 채, 연료로 쓸 양의 배설물을 주우러 다니거나 따가운 가시풀을 거두는 것이 여자들 몫이다.

일부다처제라 남자는 부인을 네 명까지 둘 수가 있단다. 아내 숫자는 부와 능력의 상징이다. 남자가 여자 부모한테 지참금을 줘야 하는데 신부가 갖춘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요즘 보통 2,000~6,000 디나르의 금액이다. 때문에 재력 있는 사람은 여러 아내를 거느리지만, 반대로 서민들은 평생토록 결혼을 못한다. 그럴 경우 유일한 수단은 남매들을 바꿔 서로 겹사돈을 맺으면 된다고 한다. 우리의 윤리관과 달리 어느 수준의 근친혼은 허용이 되는 모양이다.

이곳의 더위는 오후 세시가 돼야 제대로 실감된다. 참깨를 볶듯 모래알이 톡톡 튀어 오를 것 같은 열사의 땅, 온몸을 덮치는 열 폭풍, 숨을 드내쉬기 힘들만큼 뜨거운 대기, 대체 덥다는 말의 표현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 지독하게 강한 토네이도. 땅의 모든 것들을 말아 올리며 미루나무 숲처럼 곳곳에 치솟는 회오리기둥은 쉴 새 없이 달려오고 또 사라진다. 그 속에서 이곳 사람들은 숙명처럼 살아간다.

현장엔 탱크와 대공포 진지를 갖춘 150여명의 군 병력이 24시간 삼엄한 경비를 해주고 중요 공사 현장에도 군인들이 상주한다. 상황이 아주 나쁘면 중무장한 장갑차들이 출퇴근 대열 앞뒤에서 호위를 한다.

전쟁국가라 외환 사정이 어렵고, 그러다 보니 화폐가치가 떨어져 이 나라 돈은 가치가 없다. 원래 공식 환율은 우리 원화와 2,500:1인데 달러와는 1:1로 바꿀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곳에서 20디나르를 가불할 경우 원화는 5만원이나 달러는(1:800원대) 16,000원이기 때문에 실제 차액이 세배나 되니 국내에서 달러를 밀반출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며칠 전에도 식당 앞 게시판엔 귀국을 얼마 안 남긴 사람이 국제소포 속에 숨긴 미화270불이 이라크 세관당국에 적발되어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공고가 붙었다. 외화 밀반출은 대개 소포를 통해 이뤄진다. 공항 x-ray 검색에 걸리지 않게 은박지로 싼 돈을 옷 솔기, 두꺼운 책표지나 갈피, 신발 속, 모자 챙 등에 숨겨 보내온다.

국내법에도 물론 저촉되지만 이라크 당국도 불을 켜고 단속하는데, 이렇게 유입되는 불법외화 때문에 이라크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고 한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 은닉하려고 달러를 사들이거나 외국으로 도피자금을 쓰려하여 암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액권일수록 프리미엄이 더 붙는다.

많은 근로자들이 이런 불법에 쉽게 흔들리는 원인은 금전적 이익도 있지만, 현지 가불을 하든, 국내 달러를 유입하든, 어차피 자신이 번 돈의 일부라는 인식에서다. 한 푼의 돈을 벌려고 고생하는 사람들 입장을 아주 나쁘게만 몰아갈 일이 아닌 이유다. 출국시 해외근로자의 외화소지 한도액이 40불인데 그걸로 얼마나 버티겠는가.

문 열기 전부터 매점 앞엔 긴 줄이 생긴다. 국산 상품을 사기 위해서다. 물류사정이 좋지 않으니 하루에 선착순으로 칠성사이다 열 병-스무 병을 일인당 한 병씩만 판다. 그 다음은 델몬트주스나 복숭아넥타 한 박스, 그 나머지는 현지생산품 사과주스인데 250(1,000필이 1디나르)로 가격이 비싼데다가 입에 맞지도 않는다. 그러니 가급적 앞에 서야 국산품 맛이나마 본다. 가격과 질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고국의 향수와 접해보려는 것이다.

* *

이곳에 온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오.

오늘 7월분 급료에 대한 sign을 했는데 달을 안 채워서 액수가 적지만 급한 데부터 우선 쓰도록 해봐요. 그리고 거래은행이 바뀌어 통장을 갱신해야 된다니 통보되었으면 당신이 잘 처리했으리라 믿어요.

요즘 이곳에는 콜레라가 돌고 있어서 휴일이 돼도 외출을 하지 못하고 캠프 안에 갇혀있어야 해요. 모두 예방주사를 맞았고 회사 측에서도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좀 멋쩍은 고백이지만 요즘은 거의 매일 당신 꿈을 꾸곤 하오. 꿈속에서 당신은 생시처럼 내 팔짱을 껴주고,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쉬지 않고 도란거리오.

나란히 저수지에 나가 우렁이를 잡으면, 당신이 받아 바구니에 담기도 하고, 비가 오는 논두렁길을 함께 우산을 받고 걸어가는 꿈도 있어요. 옛날 우리 고향 같기도 하고, 당신 시골마을인지 확실치가 않더군.

단꿈이 깨진 새벽은 그렇게도 허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온종일 당신 생각하오. 맨 처음 만났던 기억, 처음 살을 맞대고 자던 밤, 아니면 귀국해서 처음 만났을 때 당신 표정을 미리 상상해 보든가... 진실로 보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만져보고 싶은 사람이오. 그러면서 무능한 나 때문에 고통 겪는 당신이 가슴 아프오.

이제서야 난 3개월이란 짧은 신혼(新婚)동안 얼마나 당신한테 무관심했었나 후회를 하오. 잘 대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누가 먼저 흙이 되어 되돌아가든 그 순간까지 후회 없이 사랑했고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드오.

오늘도 편히 잠드는 당신을 상상하며 나도 누워야겠소.

1984.8.7 이라크 달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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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편지를 받는 날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으니 참 철부지입니다.

두서없더라도 이해하고 읽으세요.

어제가 엄마 생신이라 장수에 내려갔습니다. 속상해 하실까 봐 할머니께 말씀을 안 드렸다가 이번에 아시고는 걱정을 하시더군요. 당신만 빼고 모두 모였는데 차려진 음식이 목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습니다. 어른들 흔히 하는 말씀들이 이래서 생겨났을까요.

시골집에 당신이 편지를 했더라며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는 돋보기 꺼내서 답장을 쓰시는 아버지가 그렇게 측은해 보일 수가 없더군요. 항공 봉투를 사러 가신다기에 내 가방에 가지고 있던 걸 모두 드리고 왔습니다.

짐이 많아 고생하며 집에 돌아오니 역시 기다리던 당신 편지.

난 토요일이 가장 좋고 또 기다려집니다. 읽고 읽어 편지내용을 달달 외워 버립니다. 그리고 답장을 쓰는 시간은 최상의 기분이 되지요.

오늘은 LA올림픽 폐막식이 있었고 우리나라는 금6, 6, 7개를 따서 세계 10위를 했는데 16일 귀국을 한다네요. 1위 미국, 2위 루마니아, 3위 서독, 4위 중공, 일본이 7위를 했어요.

그리고 지난 편지에 급료 얘기를 하셨는데 그런 말은 쓰지 마세요. 액수가 많으면 그만큼 고생을 했다는 얘기니까 마음 아파요. 돈 좀 없으면 불편은 하겠지만 분수에 맞게 살면 되지요. 우리 생애에 다시는 이런 고통이 없도록 하려는 시험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꿋꿋이 당신 품에 안길 날까지 열심히 살려고 해요.

처음엔 아주 할 얘기가 많을 것 같더니, 쑥스럽고 우습네요.

1984.8.11. 당신의 아내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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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8.13

오늘 된장들이 왔다. 국내에서 갓 온 사람들은 얼굴이 희멀겋고 된장기가 풀풀 난대서 그런 은어로 불린다. 우리 A16호실에도 두 사람이 새로 들어왔는데 여섯 명이 쓰던 방이 꽉 찬 느낌이다. 한 달 남짓밖에 안됐는데 난 내가 처음 왔을 때 선임자들한테서 듣던 질문을 저들에게 똑같이 한다. 그만큼 국내 소식이 궁금하고 정보와 단절돼있는 탓이다.

말을 들어보니 한 사람은 된장이 아니란다. 지난번엔 쿠웨이트에서 일했었다고 한다. 귀국하여 한 달 가량 쉬었다가 다시 여섯 탕 째 중동 땅을 밟았다고 한다. 중동 중독증, 막상 귀국할 때는 '이놈의 중동 땅 이게 마지막이다' 하고 침을 퉤 뱉지만 들어가면 일주일이 안 돼 좀이 쑤시고 마음이 돌아선다는 것이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아마 국내에서 적응을 못했으리라. 한동안 이렇게 있다가 들어가면 남들한테 뒤쳐지고 말겠지. 이곳에서 몸에 붙은 타성을 가지고는 국내에서 버텨나기 힘들 것이다. 여기의 근무강도가 그만큼 약하다는 뜻이다.

마흔 아홉이라는 나이, 나이보다 훨씬 늙어버린 얼굴엔 자기 말마따나 중동 중독증이 완연하다. 절반은 중동 현지인이 된 그도 이번으로 한 많은 중동살이가 마지막일 듯싶다.

여섯 번 나왔으면 돈을 웬만큼 벌었을 것이고, 국내에서 기반 잡아 살 수 있을 텐데, 가족들이 돈 관리를 못했단 얘긴지. 하여간 알 수 없는 이곳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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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8.14

버스를 타고 30분쯤 가야 닿는 이 나라 4대도시 키르쿠크(kirkuk)를 이곳 원주민들은 '껄꾹'이라 발음한다. 말이 대도시지 우리의 시골 면소재지보다도 작은 규모다. 가는 중간에 있는 소읍 지명은 다르쿠크(darkuk), 원주민어로 '딸꾹'이다. 처음엔 나도 장난으로 지어낸 말인 줄 알았는데 실제다. 하긴 현지인들은 이라크를 이라키로, 터키를 투르키로 발음한다.

팔고 있는 상품도 우리나라 20년 전 수준이고 비싸기는 세계 제일이다.

허술한 도시구조, 느림 속의 시민들, 질 낮은 상품, 도로에 횡단보도란 없다. 술집을 찾아갔지만 영업시간이 되질 않으면 사람을 밖에 세워두고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두 홉짜리 맥주가 1디나르인데 우리 돈으로 2,500원 가량, 여기 수준으로 싼 가격이 아니다. 하지만 더 문제는 내용물인 술보다 병에 있다. 여기선 빈병을 무척 소중하게 취급한다. 맥주를 사오려면 다른 용기에 따라 붓고 빈 병은 주고 와야 한다. 콜라도 마찬가지. 코카콜라가 없고 모두 펩시뿐이다. 코카의 소유주가 유태인이어서 그렇다는 소문인데 확실히는 모른다.

이곳에서 가장 큰 '알 타밈' 쇼핑센터엔 출구에서 구매물품과 영수증을 대조하고 몸을 수색한다. 제한된 구매수량을 확인하는 것이다.

고객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여성의 외부활동이 제한되어서라기보다 경제권을 남자가 갖고 있기 때문인데 남편 뒤에 나란히 따라가며 서로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아내들 모습은 이방인 눈에 좀 생경하게 보인다.

얼굴에다 여러 가지 흉한 문신을 한 종족, 거기에 코고리까지 꿴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은 개방추세를 타고 양장 차림도 흔한데 우리나라에서 300원 한다는 여자 스타킹이 여기선 무려 2디나르, 5,000원이다.

뒷골목 길바닥엔 벼룩시장이 선다. 집에서 쓰던 중고나 폐품을 하나씩 들고 나와 흥정을 하는 것이다. 우리 작업복, 작업화가 5디나르이니 12,500원인 셈이다. 물자가 부족해서 그런지 모자를 달라고 매달리거나 우리들 작업복과 속옷을 팔라며 따라붙는 통에 걷는 게 고역일 지경이다. 다른 중동지역에선 외국 가전제품을 사서 귀국하는데 여기는 오히려 여분의 물품조차 비싼 값에 도깨비 시장에 내다 판다.

거리든 상가든 빈틈 벽이든 군복 입은 지도자 '사담 후세인' 초상화와 선전 구호 프래카드에, 사회주의 상징처럼 동상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아무데나 카메라를 들이댔다가는 허리에 권총을 차고 눈 번득이는 비밀경찰과 민병대의 강한 제지를 받는다.

모처럼의 쇼핑에서 돌아와 맞는 느긋한 밤, 온종일 열을 쏟아 붙던 하늘에 드문드문 별이 보인다. 별답지 않은 별이지만 고국에서 보던 것이라 그래도 정감이 느껴진다. 보름달도 휘영청 올라왔다. 사람 빼고 낯익은 건 저런 것뿐이다.

어디선가 이국의 귀뚜라미도 운다. 밤이 지나고 다시 아침이 돼도 이 열기는 다 식질 않고 있다가 다시 불판처럼 달구어질 것이다.

오늘은 내가 축복된 나라에서 태어났으며, 엄청나게 행복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됐고 그래서 더욱 나의 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이다. 축복 받은 나라의 행복한 사람들 곁으로 가기 위하여 진지한 희망사항을 노트에 담고 있다.

* *

1984.8.15

어제 아침, 일을 시작하자마자 사고가 터졌다. 크레인 기사 한 사람이 운전 중에 사망한 것이다. 심장마비라고도 하고 전기누전이나 기계 이상이라고도 하는데 감전 쇼크사일 가능성이 많단다. 온지 두 달 밖에 안 되는 허** 씨로 서른 둘, 나와 동갑이다. 임신 중인 아내와 세 살 먹은 딸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공식발표는 아니다.

여기선 '이라크 방송'이란 은어가 있다. 진원지를 알 수 없는 유언비어가 생겨 삽시간에 현장을 돌아다닌다. 멀쩡하던 사람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회사 측 일방적 주장에 의해 처리될 뿐이다. 죽은 사람은 입을 열지 않는다.

모두 무심한 듯 보이나 내심은 숙연할 것이다. 인간은 무엇이며 왜 사는가. 이역만리 낯선 사막에 와서 온갖 고난을 이겨내며 귀국할 날만을 기다리다 한순간에 지고만 어느 생명.

강당에 빈소가 마련되고 검은 리본을 단 채, 분향 후 2디나르의 조위금을 냈다.

낮엔 전 사원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있었다. 소장님이 읽는 조사가 뜨거운 이라크 하늘에 퍼져나갈 때 단 한 사람도 같이 울먹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고인의 불행이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영정 앞세운 시신을 실은 앰블런스가 전 근로자가 양쪽으로 도열한 사이를 지나 캠프를 한 바퀴 돌고 한 많은 현장을 떠난다. 멀리 지평선 끝으로 사라지는 흙먼지 뒤를 바라보며 우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는 그리던 고국으로 먼저 갔다. 앉은 채 왔다가 누워서 갔고, 객석에 앉아 왔다가 화물칸에 실려 갔고, 얇은 옷을 입고 왔다가 두터운 알루미늄 관을 입고 갔다. 어떤 희망과 포부를 품고 떠나왔을지 본인 외엔 알 수 없는 그 길을 따라 내일 오후쯤, 서럽게 목울음하는 가족들 곁으로 말없이 돌아갈 것이다.

* *

서방님 보십시오.

후두둑거리던 소나기가 조금 그쳤다가 다시 요란합니다. 이 시원한 빗줄기를 무더운 나라의 당신에게 보내드리고 싶어요. 빨래를 걷어들이고 공허한 내 마음을 당신한테 기대보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말도 별로 없고 이제껏 귀에 대고 '사랑해'란 표현조차 하지 않는 당신이지만 오늘은 당신이 곁에 없다는 게 그렇게 허전할 수 없습니다. 난 당신이 떠난 뒤로 비행기 소리를 무척 싫어하게 되었답니다.

며칠 뒤면 한가위인데 객지도 아닌 타국에서 고생하는 당신.

그것도 불볕더위와 모래폭풍뿐인 사막이란 생각을 하면 가슴이 터질듯해요.

문득 당신이 가엾군요. 한 가정 가장으로서의 책임, 지어미를 거느린 지아비, 한쪽 날개를 잃어버린 나나 당신모두 억지로 떨어져서 이렇게...

하지만 난 자신 있어요.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목숨 걸고라도 다하렵니다. 고개 들어 당신 사진을 바라봅니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군요. 미운 사람, 보고 싶은 사람.

비가 그치고 창 밖에선 벌레들이 웁니다. 창문을 항상 열어놓을 테니까 내가 보고 싶음 언제든지 오세요. 딱 한번이라도 좋아요. 당신의 거친 손을 잡아보고 싶고, 검게 태운 얼굴을 매만지며 가슴에 대보고 싶습니다. 다시는 이런 이별이 없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 겁니다.

그 하늘아래 함께 계신 모든 분들 건강을 빌게요.

당신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내년 이맘때를 생각하며,

1984.8.24. 당신의 사람.

* *

1984.8.29

하루 거르지 않고 아내 꿈을 꾼다. 꿈속엔 파란 하늘이 있고 파란 산들이 있고, 푸른 들판과 강이 있다.

늘 그랬듯 바람은 상쾌한 감촉으로 불고 아내의 품인 것도 같은 향내가 온 땅 가득 채워진다. 우거진 솔숲 사이로 자그마한 체구의 여인이 함박웃음을 지은 채 노랠 부르며 걸어간다.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하여 다가가는 나의 손에 그 여인의 따뜻한 손이 잡힌다. 그리고 풀밭 위에 우린 나란히 눕는다. 난 아내의 큼직하고 해맑은 눈을 들여다본다. 그의 눈 속엔 하늘이 있고 구름이 있고 한 멍충이 같은 사내가 있다. 난 온 천하가 그의 눈 속에 있음을 느낀다.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안다. 보고 보아도 눈웃음 고운 여자.

짜증스런 기상 벨이 꿈을 끊는 새벽. 그 순간 느껴지는 허무의 무게를 난 한참은 감당하기 어렵다. 이 현실 속엔 파란 하늘도 없고 산도 없고 푸른 들판이나 강도 없다. 시원한 감촉의 바람도 불지 않고 그 여인 품에서의 향내도 없다.

오로지 거대하고 모진 환경과의 투쟁, 내 자신 안의 고독, 내일도 어제의 반복인 일과(日課). 여전히 이곳에도 해가 뜨고 지고, 북극성과 오리온 좌가 영롱하고 귀뚜라미도 운다. 하루는 스물네 시간이고.

지금 그녀의 땅에선 가을 곡식과 온갖 열매들이 익어갈 것이다. 이제 얼마간 더 해가 뜨고 별이 지고 난 그 땅으로 돌아가리. 좀 더 푸른 하늘, 푸른 들판에서 숨쉬기 위하여. 좀 더 어른이다운 꿈을 꾸기 위하여. 푸른 행복이 나에게도 있었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리고 한번쯤 넉넉 유쾌한 웃음을 터뜨려 보기 위하여. 더 간절한 진심은 밤새 넉넉껏 내 여인을 안아보기 위하여.

1984.8.31

풀 한 포기 살지 않는 사막. 살아있는 거라곤 억센 가시투성이 식물만 드문드문 섰을 뿐인 들판에 수백 마리 양떼가 나타난다. 당나귀를 탄 목동이 긴 장대로 양을 몰고 있다. 몸집 작은 개 두어 마리가 주인을 도와서, 저보다 몇 배 덩치 큰 양들을 능숙하게 다룬다.

가까이서 보면 양들은 무언가 열심히 주워 먹고 있는데 놀랍게도 비닐이나 종이, 나무 가지까지 닥치는 대로 입에 넣고 씹는다. 더욱 의외인 것은 맨 앞 놈이 가는데 뒤엣 놈 역시 무언가 먹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 같으면 더 나은 걸 먼저 먹으려 뛰고, 밀고하련만 마치 군대 제식 훈련에 정해진 위치인 듯 앞선 놈은 앞선 대로 뒤쳐진 놈은 뒤쳐진 대로 열심히 먹이를 찾으며 무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선 놈만 피둥피둥 살쪘다거나, 뒷놈이 뼈만 앙상하지도 않다. 앞놈이 뒷놈을 위해 먹이를 남겨두는가. 손질하지 않은 게으름뱅이의 곱슬머리처럼 양털은 흙과 오물이 엉켜붙어 본래의 포근하고 윤기 있고 탐스러운 흰색을 잃은 채 몸을 감싸고 있다.

양은 순한 짐승이다. 너무 융통성 없어서 탈이다. 가다말고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며 박치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다. 어찌나 세게 부딪치는지 뇌진탕 걱정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그렇게 뒤쳐졌다가 사냥개의 제지를 받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무리를 향해 달려간다.

대부분의 생물이 막다른 생존법칙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곳. 수분이 없다보니 파리도 벌처럼 살갗을 뚫고 피를 빤다. 작은 그늘이라도 반가워 그냥 주저앉았다가는 꽁지를 치켜세운 전갈 독침에 찔리기 십상이다.

들판에 구멍을 뚫고 사는 도마뱀은 크기가 20~50cm. 마치 악어처럼 기묘하게 생겨 귀국자들이 박제로 만들어 많이 가져간다. 뱀이나 여우도 흔하다.

사방 백 리쯤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언덕에서 세상은 참 넓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내가 참 멀리 왔다는 생각도 든다.

툭하면 내려지는 비상대기, 작업 중지, 외출 및 통행금지, 여러 통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이렇게 몰래라도 밖에 나왔다 돌아가면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 *

마지막 가는 여름이 발악이라도 하듯 늦은 장마가 계속됩니다. 너무 많은 비가 와서 서울, 수원은 물론 전국적으로 철도, 지하철은 물론, 대부분의 교통망이 불통되고 있습니다.

서울은 한강 인도교가 넘치고 홍수로 인명피해와 이재민이 엄청나게 늘어갑니다. 370mm13년 만에 큰비라는 군요. 다행히 우린 피해가 없는데 시골에 많이 왔다하여 걱정입니다. 작년 오늘은 소련영공에서 KAL기 피격사건이 있었고 올해는 수해 때문에 난리니 91일은 불운의 날이지 모르겠습니다.

억수같은 빗속에도 아랑곳없이 집배원 아저씨는 당신 편지를 내 손에 쥐어주고 쏜살같이 빗속으로 사라집니다. 아무리 직업이고 책임감이라지만 너무 고마워요. 명절에 작은 선물이라도 드려야겠어요.

그곳 날씨는 요즘 어때요? 건강은요? 영양제 약을 보내려고 회사 사무실에 가져갔더니 약품종류는 접수 안 된대서 그냥 가져왔어요. 다음엔 몰래라도 넣어볼까 해요.

베란다 화분에 맨드라미와 국화가 곱게 피었어요. 아름다운 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내년 이맘때는 화초를 당신과 함께 보기 위해 씨앗을 받아놓고 꽃도 키워 놓을게요. 현실이 힘들고 짜증날 땐 꽃과 저를 생각하세요. 지금은 고생스러워도 내일을 향한 보람으로 삼읍시다.

198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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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9.6

온종일 모두 일을 않고 노닥거린다. 태업인 셈인데 원인은 사람들이 지난 달치 급료 책정에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월 도급제'란 이상야릇한 방법으로 각 공구(工區)별 임금산정을 하는데 우리 16공구는 다른 공구에 비해 40~50시간씩 적게 할당된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공구가 다른 공구보다 적게 일한 건 아니다. 국내에서 계약한 시급(時給)에 그 달 작업시간을 곱해 급여 총액을 결정하는데 여긴 특수 지역이라는 이유로 작업시간과 함께, 그 달 올린 실적 기성고까지 환산하는 것이다.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임금산출 방법에 모순과 맹점이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조건에서 일하는데 공구별로 그런 임금 차이가 난다면 반발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각 공구마다 작업 내용이 다르니 어떤 공구는 기성고가 많이 오르지만 우리의 경우, 일감 자체가 자질구레한 편이고 그것도 여기저기 수십km를 흩어져 하려니 오가는 시간 낭비에 실적이 나올 리가 없다. 이역만리까지 와서 고생하는 건 나남없이 한 푼이라도 더 벌자는 목적이 아닌가.

물론 회사내부의 자세한 내막은 알 수가 없다. 다른 지역보다 상황이 안 좋다보니 작업이 원활치 않고 능률이 들쭉날쭉하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런 문제가 시정되지 않으면 매달 작업시간 통보 받을 때마다 싸인을 거부하고 태업에 이르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

매달 관례인양 되풀이하는 터라 여러 날이 지나면 다시 죽 떠먹은 자리처럼 정상으로 돌아오지만 아마 회사는 적게 실적 배정한 금액 이상으로 손해가 날 것이다.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인력 손실이다.

사실 여기에선 국내만큼 많은 작업능률을 올리지 못한다. 기후라든가 여타 여건상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 감리기관의 감독이 워낙 까다로워 국내처럼 대충대충 넘어가질 않기 때문에 철저히 공기(工期)를 지킨다. 공정마다 정해진 규격과 기간을 정확히 맞추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임금을 줄이기 위해 제3국 고용인인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상당수 데려왔다. 우리의 1/3 수준 보수를 받는 그들한테 화풀이하듯 노예처럼 혹독하게 다루는 사람들이 많다. 곁에서 보기 딱할 정도다. 그들 외에 사정상 현지인을 일부 채용해 쓴다. 우리와는 인식 자체가 달라서 일을 하는 건지 노는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해외로 송출되는 사람은 대충 온 게 아니다. 해당 모집직종에 숙련돼야 하는 건 기본이고 최악의 경우에서도 버틸 수 있는 체력 측정을 통과해야 한다. 평균 5:1의 경쟁 끝에 선발되어도 신원조회 등에 결격사유가 있으면 바로 취소다. 그러나보니 브로커가 끼거나 검은 뒷돈이 오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 한 가지 방법은 각 건설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사내직업훈련소 6개월 과정을 수료하여 선발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렇기까지는 많은 기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힘들게 와도 행복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지독한 기후환경, 풍토병, 신변위험, 그럼에도 국내보다 두세 배의 임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에 감수하고 나온다.

할라스가 시작되었다. 하늬바람이 아니고, 산들바람도 아니다. 꽃샘바람은 더욱 아니다. 한 점의 가을 냄새도 묻어있지 않은 메마르고 거친 바람이 땅의 모든 것을 삼킬 듯이 휘감아 올리며 대지 가득 달려온다. 아마 이틀은 저렇게 계속 불어대리라. 저 바람 물러갈 때까지 숙소에 대기한 채 국내에서 녹화해 보내진 방송프로를 보거나 포르노 비디오를 보며 시간을 보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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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9월도 훌쩍 넘어갔어. 이곳에 온지 석 달째 접어드니 기후에도 좀 적응되고 사람들과도 정이 들어 지낼만 해요. 원래는 10일이 한가위인데 현지 사정으로 6일날 대치해서 쉬고 7일은 정기휴일이라 황금연휴요.

중추절 행사로 캠프파이어, 양고기에 막걸리파티, 장기자랑, 체육행사 등이 벌어졌으나 나하고는 별로 취향이 안 맞는 일들이라서...

약품 부치려고 하지 말아요. 비상약이나 영양제종류는 회사 의무실에서 얼마든지 줍니다. 시중 약국에선 모든 수입약품을 아주 싸게 구입할 수가 있어요. 일부 품목은 처방전을 요구하지만... 그런 복지정책은 잘돼 있는 것 같아요.

풍문에 의하면 회사 사정이 어려워 제 날짜에 임금지급이 안 된다는 말이 도는데 사실인지 알려주었으면 해요.

문득 가끔씩 내가 너무 먼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방으로 돌아가서 누워있는 착각에 빠질 때가 많아요. 세월이 흐르는 것이 결코 기다려지거나 기뻐할 일이 아닌데 자꾸만 시간이 지나 당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우리들의 신혼 소꿉살림을 홀로 챙기고 있는지.

198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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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9.30

아침 일찍 철근 가공장에 나가다보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여러 마리의 개들이 어둠 속에서 달려온다. 임자 없는 들개들이다. 이 허허벌판에서 저것들한테 먹을 걸 한 조각 던져주는 건 사람뿐인 듯, 우리 숙소근처에서 자다가 사람을 보면 반갑게 달려드는 것이다.

그 개들 중 다리를 저는 것들이 꽤 많다. 그런 놈들일수록 사람에게 더 의지하려든다. 다른 개보다 먹이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리라.

하긴 그렇다. 멀쩡한 개들도 동물 시체 하나놓고 죽기살기로 대드는데 절름거리며 경쟁이 되겠는가.

요즘에 와서 난 불구인 개들이 많은 이유를 알았다. 사람들 탓이었다. 사람들은 개를 보면 장난삼아 돌을 주워 던진다. 심심풀이다. 불러놓고 가까이 오면 사정없이 패기도 한다. 기후만큼 사람들 감성이 메말라서일까.

오늘도 누군가의 행패에 다리를 몹시 다친 개 한 마리가 신음하며 누워있었다. 한 목공이 안됐는지 손수건을 상처에 감아주려 다가가 만지는데, 개는 자신을 해치려는 걸로 알고 그의 팔뚝을 물어버렸다. 남자는 허리에 차고 있던 망치로 사정없이 머리를 내리갈겼다.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며 코피를 쏟는 개.

서서히 내리 감기는 눈동자를 직접 볼 수밖에 없었던 건 비극이었다. 아주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일진 나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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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시민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전국체전 함성소리가 TV에서 흘러나옵니다.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된 기념으로 더욱 성대하게 치른다네요.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편지를 쓴다는 편인데 왜 그렇게 배달이 안 되는지 모르겠군요. 오늘도 회사 사무실에 갔다 왔습니다. 이라크엔 13일 날짜로 출국자가 있다니까 14일에 소포랑 편지 받아볼 수 있을 거예요.

우스운 얘기 하나 전할까요? 지난번에 IMF 세계챔피언인 권순천 선수가 콜롬비아의 카스트로 선수랑 3차 타이틀 방어전을 해서 KO로 이겼는데 도전자가 가짜로 밝혀졌다네요. 모르고 그랬느니 사기를 당했다느니... 그 사건으로 여러 사람 구속되고... 참 한심한 세상이지요.

또 한 가지는 지난 수해 이후 북한에서 쌀, 시멘트, 의약품같은 많은 구호물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어요. 뭔가 좀 변하려나요. 지난 96일엔 전두환 대통령도 일본을 방문해서 나카소네 수상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고 천황도 만나 비슷한 얘기 오가고 그랬대요.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7시간 정도 빼곤 늘 당신 생각합니다. 당신과의 사이에 일어났던 지난 일들, 그냥 스쳐가듯 던지는 말 한마디, 사소하게나마 나한테 신경 써줬을 때의 고마움,

이런 게 여자이기에 더욱 가슴에 남는지도 모릅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건데도 조금만 생각해줘도 그렇게 기쁠 수가 없고 지금 생각하니까 더욱 당신이 밉고, 그립고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달려가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의좋은 부부가 되고 싶어요. 아니, 부부란 단어는 너무 멀어요. 부부보다 더 가까운 사이라야 해요. 더 가까운 말이 무엇일까요. 우습죠? 부부보다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기분. 당신 마음도 꼭 그럴 거란 마음입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당신이 더 생각나겠지요. 건강 유의하시고 항상 식사 잘 드세요.

198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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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열사의 나라로 표현되는 이곳 날씨가 많이 시원해졌습니다. 늘 황사에 뒤덮여 뿌옇던 하늘도 누가 지난밤에 닦아놓은 것처럼 깨끗하기 그지없습니다. 캠프 앞 습지엔 지금 갈대꽃이 한창이고 시장엔 대추야자와 석류가 나왔더군.

모든 사물이 움직임을 멈춘 것처럼 적막 가득한 오후, 새로운 것, 기쁜 것, 싱싱한 것, 그런 것들과 무관하게 죽어있는 슬픔의 땅. 까마귀 떼가 멀리 유전지대의 가스 태우는 불기둥 사이로 날아갑니다.

당신에게서는 여러 주 째 편지가 오질 아니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알아야 할텐데.

며칠 뒤면 어머니 생신인데 잘 할 줄 믿지마는 국 한 그릇이라도 따뜻이 끓여드리세요. 못난 자식놈이나마 곁에 없으니 속으로 마음이 안 좋을지도 몰라요. 그 날 만이라도 내대신 좋은 말벗도 해드리고 가까운 데라도 한 바퀴 돌아오기 바랍니다.

이라크 수박씨들을 동봉합니다. 작은 씨앗은 화초수박이라 못 먹고, 큰 것은 어디에 잘 심어보시오. 워낙 크고 당도가 높아서 중동지역의 명물입니다.

일주일 후에 귀국인편이 있으니 그때 또 쓰리다.

1984.10.26

* *

당신 편지가 한꺼번에 두통이나 왔어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기에 난 겉봉만 보아도 좋습니다. 편지를 받는 날은 온종일 날아다니지요.

어제는 잠이 안 와서 그동안 받은 편지를 모두 내놓고 다시 읽었답니다. 쭈그리고 잠이 들었는지 어깨가 쑤시고 시계를 보니 55. 바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였어요.

고백할 게 있습니다. 나 회사에 나가고 있어요. 당신은 나 직장생활 하는 것 안 좋아하니까 말을 안 했는데 어차피 알아야 하잖아요.

두 달이 돼 가는데 3,000명의 사원이 있지만 거의 여자들이고 아줌마들도 많아요. 3교대를 하기 때문에 당신 일로 여의도 본사에 오가기도 쉽고.

당신 혼자만 고생시키는 게 너무 죄스러워요. 같이 힘쓰면 우리 집이 더 빨리 일어서겠지요. 이상하게 일이 힘들다가도 당신 생각하면 마음이 밝아져요.

10월분 봉급 명세서가 왔는데 밀린 9월분과 합쳐서 1120일날 지급한다네요. 수고 하셨어요.

지금 우리 동네는 대학생 시위가 점점 격해져서 난리입니다. 거의 매일 길을 막고 경찰과 학생들이 대치하고 돌, 벽돌, 깡통, 닥치는 대로 날아다니니 겁이 나서 죽겠어요. 여기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다 그래요. 최루탄 냄새가 너무 매워서 밖에도 나가질 못해요.

며칠 있다 김장을 해야겠어요. 당신이 못 드실 김장이지만.

지금 라디오에선 '임수정'...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이대로 곁에 있어 주세요.... 이별은 이별은 싫어요. 그런 노래가 흘러나와요.

지금의 내 맘을 아나봐요.

1984.11.15

* *

1984.11.18

이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가 지루하다. 지루하기 때문에 모두들 날짜를 센다. 금방 온 사람들은 그들대로, 얼마 안 남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귀국의 날을 기다린다. 고향의 산천이 그립고, 가족과 아내가 보고 싶고, 자식들의 재롱이 눈에 선하고, 소주한잔 나눠 마시던 포장마차 친구들과의 추억이 더욱 못 견디게 한다.

이렇게 지루할 줄 알았으면 안 나왔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는 중동 땅에 발 들여놓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난 안다. 이들 중 상당수가 갔다간 머잖아 다시 이 지루한 중동으로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중동을 그리워하리라는 것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는 아예 매사를 잊고 사는 게 상책이라 말한다. 그것은 위장이고 발악이며 자기 체념이다. 실낱처럼 유일한 통신수단인 편지조차 맘대로 오가지 못하는 단절의 땅. 악화된 사정상 현지우체국의 사서함에 와서 묵고 있을 편지도 수령하러 갈 수 없다니 큰일이다.

땅거미가 가라앉는 구릉 쪽으로 위장망 덮인 군 경비포대가 보인다. 그 앞 깃발에 걸린 이라크 국기. 모진 시련과 거친 바람 앞에 뜯겨나간 채 남은 반 조각이 휘둘리며 운다. 상실한 절반에의 애처로움같이.

* *

참 쾌청한 날씨입니다. 어제 저녁엔 비가 내리더니 지금은 뭉게구름 뜬 하늘이 보입니다. 사막의 빗소리는 보슬보슬이니, 조록조록이란 표현이 안 어울려요. 여름 내내 이슬 한 방울 볼 수 없었는데 비 한번 오고 나서 기온이 곤두박질하고 우기로 접어들었어요.

요즘 현지인들은 농사준비에 바쁩니다. 농사라야 거의 밀을 심어요. 여름엔 강우량이 없어 농사를 못 지으니 요즘이 농번기인 셈이지요. 우리들이 하고 있는 수로공사가 끝나면 좀 달라지겠지만.

이 편지가 도착하는 날이 당신 생일일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멀리서 마음으로나마 스물여덟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엊그제는 고국의 연예인 공연단이 왔었습니다. 정윤선, 김세화, 권은경, 최병걸, 서영환, 방일수, 박경원 씨 등이었어요. 중동지역을 순회하다 여기도 들른 모양인데 두 시간 가량 공연을 했어요, 그래서인지 마음이 좀 심란하고 집 생각도 나네.

조용히 지평선 끝으로 가라앉는 석양을 보면서 또 하루를 내 나이테 속에 아로새겨 남깁니다. 그리고 나와 똑같은 부피로 그리움의 한을 지닌 채 넘겼을 또 하루가 당신에게서도 떠났습니다.

아스라니 멀어져만 가는 세월. 그 긴 세월동안 당신의 어깨 위에 한줌 무게의 짐도 지워주지 않아야 함을 알면서도 그럴 수 없는 내 현실이 자꾸만 내게서 떨어져 가는 날들을 부담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우리가 짊어지지 않을 수 없는 짐을 감당해낼 힘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짐을 불평 없이 너그러이 지기로 합시다. 한번인들 미워하지 맙시다. 재가 될지언정.

최근 모습 사진을 보내달라고 여러 번 부탁해도 무소식이라 내 사진을 보냅니다. 당신 알다시피 난 천성적으로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얼마 전 몇 사람이 외출 나갔다가 함께 찍은 사진이오.

1984.11.30

서방님께

지금 밖엔 겨울비가 추적거리며 내리고 있어요.

점심 먹고 집을 나설 때는 눈이라도 올 것 같은 날씨였는데 퇴근 무렵부터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직장인들을 난감하게 만들었습니다.

빗속을 걸어오고 있는데 어머님께서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나와 계시더군요. 별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고 하루 피로가 싹 가셔지는 것 같습니다.

왠지 오늘 같은 날은 당신한테 하소연이라도 해야 잠들 것 같습니다. 결혼한 여자가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게 자그마한 행복마저 잃어버린 거 같아 때론 당신을 많이도 원망합니다.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는 옆집 새댁과 눈이 마주칠 땐, 글쎄요. 당신은 정녕 모르실 겁니다.

지금은 자정이 넘었어요.

결혼하고 세 번째로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첫 번은 언젠가 당신이 의자를 내팽개쳤을 때 어떻게 해야 되나, 무조건 엄마가 보고 싶었고, 두 번째는 당신한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입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는 옛날 중학교쯤 다닐 때가 생각납니다.

당신 알다시피 월곡에서 장수까지는 꽤 먼 거리지만 버스가 하루 한 대밖에 없어서 꼭 걸어서 다녀야 했습니다. 내 딴에는 그게 무척이나 피곤했는지 저녁에 자다가 거꾸로 눕기 일쑤고, 변소에 갔다 들어와선 엄마 아버지 가운데로 파고 들어가곤 했지요.

엄마 팔을 베고, 젖을 만지고, 막둥이와 서로 만지려고 싸움도 하고, 막둥이가 잠들기 기다렸다가 나 혼자 만지다 잠이 들었고, 엄마는 그런 나를 참으로 많이 예뻐했었어요.

중학생이 되었어도 나이에 비해 체구가 작아서 책가방을 들지 못해 어깨에 메고 다니라고 끈을 달아주던 아버지. 중학생이 나 혼자뿐이라 거의 매일 엄마는 멀리까지 마중 나와 계시곤 했습니다.

나는 식구들 중에서도 어릴 때부터 엄마와 아버지, 아무튼 식구들을 얼마나 생각했는지 먹을 게 있어도 절대로 안 먹고 집에 가져오고, 뭐든지 나눠먹기 좋아하는 나한테 엄마는 먹을 걸 숨겨뒀다가 동생 몰래 줄 때도 나는 먹지 않고 동생들에게 나눠주곤 했었는데.

나이 먹어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그 착한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옛날 생각을 하다 보니 행복했던 일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옛날 엄마한테 느꼈던 그런 사랑 감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당신에게서 받아보고, 엄마보다 더. 세상에서 최고의 사랑을 당신께만 드리고 싶습니다.

쓰다 보니 횡설수설인데 지금은 눈이 거의 감긴 상태니 이만 끝맺으리다.

1984.12.10 새벽 125분에. 당신의 아내

* *

당신을 그리며.

어젯밤 꿈에 당신을 보고 좋아서 펄쩍 펄쩍 뛰었는데 지금은 맹숭맹숭합니다.

내 꿈에 자기 귀국했드라. 그래서 울산 오라버니도 오시고 그랬는데...

꿈속에서도 책 좀 부치려고 했는데 이젠 소용없게 되었다는 말까지 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는 없고 따르릉 시계는 출근시간 늦는다고 야단이고 눈은 하얗게 오고 싱숭생숭했었오.

서울 사무실에 책 부치러 갔더니 소포꾸러미를 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왔더군요. 너무 밀려서 한 달은 걸린대요. 직원들이 하나하나 모두 검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신발 속에다 넣은 약 같아 보이는데, 그것도 다 뜯어서 찾아내더군요.

그 약을 보내고자 신발 속에까지 넣어서 몰래라도 보내려했던 그 가족들 마음을 저는 누구보다도 백 번 이해를 합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냥 보내줄 수 없느냐고 사정도 아닌 사정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내가 더 가슴이 아프고 지금도 그 가족들께선 잘 갖다 주겠지, 믿고 있을 텐데.

우리 회사에 대한 불만이 다들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기혼자와 미혼자의 차별에 오늘도 화가 목까지 차올랐습니다.

세 번째 봉급을 받았는데 쥐꼬리만 한 액수, 정말 웃기지도 않아요. 아줌마라고 해서 일만 죽도록 시키지 대우는 안 해주니 얄미워 죽겠어요. 한 부서의 중간관리자이고 밤엔 공장 기숙사 사감을 겸하던 사람 값어치가 불과 몇 달 만에 이렇게 떨어지다니요.

받은 돈으로 아버님 좋아하시는 술과 담배부터 샀습니다. 어머니 속옷은 첫 달 사다 드렸으니 그냥 용돈으로 드려야겠어요.

이제까진 집 살림에 보태 썼는데 흐지부지해져서 주택은행에 선매청약예금을 가입했어요. 결혼 후 처음 내 손으로 번 돈으로 예금이란 걸 하니 기분이 전과 다릅니다. 너무 일찍 철이 들었나(?). 역시 여자는 자기 살림을 해봐야 아까운 줄 안다던 엄마 말씀이 사실인가 봐요.

TV에선 송년특집이라고 매일 야단입니다. 연말까진 아버님 조끼를 다 떠서 입혀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안나요. 내년에 입을 당신 것도 멋있게 짜놓을게요.

1984.12.23

* *

한동안 편지를 쓰지 못했습니다. 귀국하는 인편이 없었기 때문이올시다. 그리고 오는 사람도 없는 관계로 당신 글도 보름 넘게 오질 않았습니다. 다음 주에 사람이 온다니까 그 때는 밀렸던 것 한꺼번에 받겠지요. 공사가 마무리단계로 가기 때문에 점점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귀국자가 가져가더라도 워낙 통제가 심하기 때문에 바그다드 공항에서 보안상 개인이 휴대한 우편물들은 압수해 소각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점 충분히 감안해서 편지 자주 못 쓰더라도 안심해요.

앞으로는 편지 자주 안 써도 괜찮습니다. 중요하고 급한 사항은 국제항공우편으로 하던가, 아주 긴급한 일은 본사에 연락을 취하세요.

갑자년이 가고 을축년, 드디어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또 한 살을 먹었어요. 당신도 마찬가지로.

신년도 달력을 보니까 여기서 출발일자가 628일과 73일에 있는데 아마 73일이 될 확률이 많아요.

이제 절반이 지나 내리막길이니 남은 기간은 좀 나을 것이오. 여긴 우기(雨期)라서 비가 자주 오니까 여름내 메말랐던 대지가 촉촉해지고 그 덕분에 새싹이 돋은 넓은 벌판이 마치 우리나라 봄 같아요. 기온도 그렇고.

사막에서 물난리를 겪는다면 좀 의아하겠지만 어제도 많은 비로 여러 현장이 수해를 입었는데 천둥과 번개를 이 한겨울에 사막에서 만나는 느낌은 좀 색다르네요. 일을 못하는 날이 많아 회사도 우리도 손해가 심해요. 3월까지는 이렇다는군. 공사기일 때문에 그 대신 기상 좋은날 연장을 하고 있어요.

추운 밤, 춥지 않은 봄이 되길 빕니다.

1985.1.4

하루하루가 너무나 빨리 지나갑니다. 새해 들어 벌써 6일째.

지난 31,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지난날들이 무던히도 시원섭섭했습니다. 우리에겐 잊을 수 없는 한해였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즐거웠던 일도 많았고, 전 행복했었고, 생애 지울 수 없는 의미 있는 날들이었습니다.

당신 없는 밤이 싫어서 자청해 야간근무를 할 때, 일에 시달려 사정없이 잠이 쏟아질 때, 하지만 그런 3교대 야근이 내 건강을 해치는 것 같아 오래 고민하다 다른 직장으로 옮겼습니다. 여긴 주간근무만 하니까 한결 일할 맛이 나요.

바깥에 바람이 심한지 창문이 몹시 덜컹거리네요.

자기야 나 오늘 좀 섭섭했다. 말할까 말까.

외숙모님이랑, 이모님이랑 오셔서 어머니와 얘기 나누시는데, 자기 언제 오느냐고 이모가 물으셨고 어머닌 7월에 온다고 하니까, 그럼 그때 애기 만들어놓고 또 가면 되겠네, 하니까 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모르지 뭐. 바로 또 갈는지. 그러시는데 괜히 서운하고 미치겠더라. 말이라도 고생했으니 이제 오면 그만 가야지. 하면 안 되나.

울컥하는데 밖에 나가서 한참 서있다 들어왔어요. 어머님 자식이기에 앞서 나한테도 남편 아닙니까? 조금만 색다른 음식이 생겨도 솔직히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목에 못 넘기는 내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시면 좋을텐데.

신경 쓰지 마세요. 이런 얘기 당신 말고 누구한테 풀고 살겠어요.

올해도 건강하시고, 잘 하실 줄 믿지만 그곳 동료 분들하고 잘 지내다가 귀국 후에도 좋은 관계 유지하시길 바래요.

1985.1.6

* *

올해부터 구정을 '민속의 날'로 정해서 우리식구도 즐거운 명절 보냈어요, 당신은 떡국이라도 드셨는지요? 물어보는 제가 바보이지만.

일찍 일어나서 어제 밤늦도록 빚어둔 만두국을 끓이는 사이에 한복 갈아입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는데 혼자라서 무척 떨리더군요.

가까운 일가친척 모두 세배 와서 재미있게 놀아서 보기 좋아도...난 기분이 안 나지만 어른들 속상해 하실까 봐 내색 않고 싹싹하게 대하고 어울렸습니다.

오후엔 당신 회사 홍보실에 계신다는 두 분이 찾아오셨더군요. 다음 달 사보에 당신 기사를 실으려나 봐요. 명절날 쉬지도 못하고들 고생하며 오셨는데 갑자기 방문하셔서 대접을 못했으니 흉을 많이 보았을 것 같아요. 그게 모두 당신 얼굴 깎는 일인데 어쩌지?

아참, 그리고 최종학력을 묻길래 엉겁결에 고졸이라고 대답했는데 혹시 나중에라도 괜찮을까 모르겠어요.

이런 말 꺼내기 좀 그렇지만 현실이니 받아들이세요. 다름 아니라 귀국하면 무엇보다 우선 고졸 검정고시 과정부터라도 밟는 게 좋겠군요. 아무리 능력위주 사회라고 말들이야 하지만 학벌의 프리미엄이 왜 있질 않겠어요.

명절날부터 이상한 얘기만 하니 난 참 나쁜 마누라다. 그죠?

아마 새해엔 좋은 일만 있으리라 믿어요. 우리 힘냅시다.

1985.2.22

* *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쿵쿵 울리는 포성. 또 한바탕 전투가 벌어지려는지 2번국도 위로는 수백 대의 군 차량들이 각종 무기를 견인한 채 남쪽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고 있다. 굉음을 울리며 머리 위를 바짝 훑고 지나가는 소련제 전투기 편대. 전사자 관()을 실은 채 후방으로 돌아가는 트럭들.

이들의 마을 한가운데 있는 공동묘지에 새로 만든 무덤이 늘어난다. 봉분도 없이 작은 시멘트 비석 하나 차지한 주검들이 널려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그 비석들 사이를 쏘다니며 논다.

들판 한쪽에 원형의 흙집이 있길래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는데 긴 나무상자가 놓여 있었다. 직사각형이 아니라 한쪽이 조금 넓은데 뚜껑을 열어보니 다듬지 않은 나무결에 머리카락이 많이 붙어있다.

추측컨대 마을공동으로 쓰는 관인 것 같다. 나무가 귀한 곳이니 아마 시신을 담아 장례를 치르고 널은 다시 가져다 보관하는 모양이다.

진흙의 문명, 여름이야 그렇다 해도 우기에 많은 비가 내리는데도 지붕이 따로 없는 진흙집이 허물어지지 않는 것은 불가사의다. 그것도 수십, 수백, 혹은 수천 년 세월을. 시내에서 바라보이는 산 절벽엔 아주 오래되었을 토굴 주거지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곳곳에 서 있는 회교 사원이 이들 문화의 결정체이다. 오랜 연륜도 그렇거니와 둥근 지붕과 그 위의 첨탑, 아주 정교한 문양이 신비스럽다. 같은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하루 다섯 번씩 만사 제쳐놓고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 신앙심의 근원을 알 것 같다. 중동이 늘 더울 것으로 알지만 요즘은 매일 얼음이 언다. 기온은 불과 영하 몇 도지만 강풍 때문에 그 체감 추위가 사람을 얼어붙게 한다. 오늘은 눈도 왔었다. 한 시간 가량 내렸는데 발목이 푹푹 빠지더니 한 시간도 못돼 금방 다 녹아버렸다.

넓은 들판에 가득한 하얀 들꽃들. 양떼가 햇닢 뜯으며 한가로이 몰려다니는 요즘 이곳 풍광을 보자면 과연 여기가 사막인가 의아할 때가 많다.

전쟁만 아니라면 이즈음의 여긴 에덴동산일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도 이 땅을 에덴이라 적어놓았을 것이다.

* *

당신 편지를 받으면 반가운데, TV는 나를 무척 불안하게 합니다. 뉴스시간마다 비쳐지는 전쟁 소식들. 바그다드의 주요 고속도로와 비행장이 모두 폭파됐고 당신은 모를 테지만 이미 여러 나라에서 그곳의 여객기 운행을 중단시켰습니다.

제발 그냥 귀국하세요.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철수하자면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니 빨리 돌아오시길 빌어요. 불과 몇 달 남은 만기를 채운다고 해서 무슨 큰 보람이 되겠어요.

온 가족들 마음 졸이며 사는 게 정말 불안하고 미칠 지경입니다. 내 생각일 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랑 가족 모두의 의견이 그러하니 꼭 그렇게 결정하시리라 믿어요. 국내에서 뭘 한들, 설마 우리 여섯 식구 못살겠어요.

사는 집 계약기간이 돼서 4월 안으로 이사를 해야 되는데 그 문제는 제가 어른들과 잘 상의해서 처리할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길게 적을 수도 없이 불안한 이 마음을 진정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198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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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마누라에게

기다리던 편지 세 통이 한꺼번에 도착했어요. 그 편지를 쓸 당시는 아마 국내 언론에서 현지 상황을 잘 모르니 과장 보도한 듯합니다. 사실 이곳에선 전시(戰時)란 사실을 잘 못 느낍니다. 전쟁이라 해서 우리나라 6.25 당시처럼 전면전이 아니고 일부 국경지역에서만 가끔씩 충돌이 벌어지는 정도지요.

전쟁이란 항상 상대 국가를 제압하기 위해 전황을 부풀리게 마련이고 그런 보도에 너무 민감하지 않아도 돼요. 바그다드 공항이 폐쇄된 건 사실이나 비상시 육로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 있으니까 걱정 없어요.

얼마 남지 않은 계약기간을 안 지키면 항공료 배상문제도 있거니와 노사 양쪽 다 손실입니다. 또 무엇보다 사람사이의 약속은 어떤 조건에서든 서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내 소신입니다.

미리 말 안 해야 하는데, 지난달엔 여러 사정으로 송금될 돈이 35만 원 정도 밖에 안돼요. 그리고 이 달 형편도 마찬가지야. 어쩔 수 없는 실정이라 나도 답답하지만 생활에 타격이 있더라도 그깟 놈의 돈, 다른데다 썼다 치고 쪼들리는 대로 버텨봐요.

당신에게만은 늘 좋은 일만 있길 기원하며.

1985.3.29 이라크의 봄.

* *

1985.4.24

긴 겨울동안 그렇게도 뿌려대던 빗방울이 이제 완전히 그치고 드디어 원래 사막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누런 벌판, 어느새 가뭄 타기 시작한 끝 모를 들판엔 호밀이삭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억세고 생명력 강한 가시식물만 드문드문 남아 버티어나갈 너른 들판이 이역만리까지 날아와 삶의 희망을 가꾸는 사람들 땀으로 젖어간다.

아직 바닥이 마르지 않은 웅덩이에서 개구리들이 수천 마린지 수만 마린지 한꺼번에 땅을 차며 운다. 마치 우리 시골 논에서 울던 봄 개구리들과 어찌 그리도 같은지 신기한 생각이 든다.

새 꽃의 새 향기로움. 꽃송이들은 홀홀 날아 떨어지는데 갑자기 나비들이 들판 가득 떠다니기 시작한다. 꽃잎들보다 고운 빛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는 그 한가지만으로도 나와 함께 있는 우주의 동반 생물임이 감격스럽다.

어디에선가 더러운 허울을 뒤집어쓰고 긴 날들 동안 참고 기다렸을 저 나비들, 그 긴 고통의 세월을 이곳 아무도 알려하진 않을 것이다.

꽃이 지고, 이윽고 나비들도 꽃잎처럼 날개 홀홀 떼어버리고 나면, 너무 멀어서 때론 공간에 대한 멀미조차 느끼게 하는 저 너른 벌판 끝까지 죽음 같은 적막만 남게 된다. 푸른 숲과 맑은 물, 꽃과 새의 사랑 나눔이 있던 낙원은 곧 끝나는 것이다. 그걸 알기에 이맘때 모든 생명들은 남은 일정을 더 서두르는 것일 게다.

무심한 열풍이 재촉처럼 또 대지를 쓸어가고 있다.

* *

1985.5.10

철부지처럼 지난밤에는 가장 보고 싶은 내 여자를 몰래 껴안은 꿈을 꿨다. 그리고 꿈을 깨고 나서는 정녕 그것이 꿈이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가 끝까지 지켜가야 할 태초의 낙원이나 이상향이란 어떤 모습일까.

캠프 앞에 숲이 있다. 숲이랄 것도 없지만 캠프의 생활하수 등이 모여 생긴 습지에 갈대나 버드나무 등이 자생하여 생긴 늪이다.

심심하고 무료한 이곳 사람들이 덫을 만들어 빵가루를 뿌려놓고 여러 마리의 들새를 잡아 길렀다. 철창에 갇힌 새들은 며칠 동안 안달을 하다가는 끝내 좌절하는지, 적응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순해져서는 넣어주는 것들을 주워 먹으며 저들끼리 어울려 살았다.

몇 달이 지나고 날짜를 정해 그 새들한테 자유를 주어 방생하였다. - 새들은 안타깝게도 저들 본래의 본능을 상실한 채 날기를 포기하였다. 날지 않는 새를 우린 바보 새라 하였다.

그러나 나는 빈다. 그들이 정녕 바보 새가 아니기를. 날개 힘을 되찾아 먼 창공에 다다르기를. 그리고 되풀이하여 바보 새가 되지 않기를.

작은 새, 그러나 결코 작다고 생각할 수 없는 새의 가슴 속, 그 새가 품고 있을 많은 생각들. 마음대로 날 수 없는 넓은 창공에로의 꿈, 날고 싶은 새, 가고 싶은 새, 보고 싶은 새, 그 새가 대신 꾸는 꿈, 몸을 비비고 싶어서 더 지저귀는 새.

작은 바보 새가 날개 짓을 다시 배우기 시작한다. 이 작은 숲이나 푸른 빈 하늘까지 그의 비상을 기다리기에...

* *

방금 전에 당신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낸 건 못 받았다니 이상하군요. 항공우편으로 두통, 회사 통해서 일곱 통을 보냈거든요. 편지 속엔 우표도 30장 동봉했고 편지마다 제비꽃, 개나리 꽃잎이랑 여러 가지 넣었었는데.

제발 이 편지라도 무사히 잘 가주기를 바랄 뿐이에요. 이제 귀국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당신 덕분에 이곳 식구들은 잘 지냈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건강하고 일생에 가장 깊이 남을 수 있는 여행이었기를 바래요.

세월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다더니, 인간은 주어진 본능에 의해서 절반은 쉽게 사나봅니다. 이제야 차츰 적응이 돼가네요. 만날 날이 가까워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걸까요. 그래도 빨리 보고 싶어요.

여담으로, 당신 귀국해서 너무 세상물정 어두우면 소외되니 최근 정치뉴스 좀 알려줄게요.

지난 212, 12대 국회의원 총선이 있었어요. 당시 민정당 87, 신민당 50, 민한당, 26, 국민당 15명 등이 당선됐는데 그동안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이 싸우다가 결국 신민당과 민한당은 통합을 했어요. 그 와중에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3김씨는 44개월만에 해금이 됐구요. 국회 개원일을 한 달 이상 넘기고서야 13일에 국회 문을 열었는데 보스를 따라 이리 붙고 저리 옮겨 다녀서 지금은 의석이 민정당 148. 신민당 103. 국민당 20석 민한당 3석으로 바뀌었어요. 참 우스운 정치판이지요.

지금 나오는 뉴스에선 상임위인가 하는 자리싸움 하느라 또 시끌벅적해서 TV도 꺼버렸어요. 이 편지 끝내고 잠이나 잘래요.

당신도 푹 자요.

1985.5.18

아쉬운 5월이 가고 있습니다. 푸르름이 있고, 갖가지 꽃향기 그윽한 날들 5월이었습니다. 오직 당신만 함께 있다면 가까운 곳으로라도 훌쩍 떠나보고 싶었던 계절이었고, 지나간 날들보다 더욱 당신이 보고 싶어 괴로워야 했었던 아름답고 허전한 5월이 지금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겠지요?

이제 서너 시간이 지나면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바다가 부르는 6월이 옵니다. 이제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더욱 즐거울 것이고 당신을 기다리는 기분만으로도 나름대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위로를 받고 싶어요.

전에 보다 훨씬 당신을 사랑해 줄 수 있기에, 더 존경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당신의 근면과 인내를 나 혼자만이라도 진정 알아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오늘 무척 바빴어요. 모레가 아버님 생신이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반찬을 장만하느라 계속 일을 했더니 좀 피곤하고 허리가 뻐근합니다.

내일은 당신 편지라도 왔으면 좋으련만. 그러면 아버님께 생신 잘해드리라는 편지가 왔다고 하면 좋아하실 텐데.

오늘이 가고 나면 꼭 한 달입니다. 저는 솔직히 당신 볼 용기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차라리 그 날 아파서 마중을 못나갔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바보처럼. 진짜 부끄럽고 얼굴이 뜨거워진다구요.

못 받을 지도 몰라 5월말까지만 보내라 하셨으니 이것이 마지막 편지인가 봅니다.

남은 한 달 건강히 계세요.

1985,5.31

* *

1985.6.4

긴 겨울동안 황토 물을 굽이굽이 받아 내리던 강, '와디'가 이젠 허옇게 바닥을 드러낸 채 동글동글한 강돌만 남겨놓고 있다. 물 없는 강은 흉측하다. 마치 가을 빈들에 남아있는 뱀의 허물처럼 그런 몰골로 기다란 자취만이 있다.

그러나 난 믿는다. 지난해에 그랬듯 아니, 몇 천, 몇 만 년 동안 꾸준히 그래왔듯 가을이 오고 우기에 닥치면 저 메마른 강바닥 가득히 누런 흙물이 넘실거리며 흘러가리라는 걸. 그래서 원래 이름대로 하나의 강 구실을 해내리라는 것을. 잉어 서껀, 자라들을 마음껏 품으며.

머지않아 내가 돌아가고, 수백 명이 여러 해 걸려 만든 수로엔 봄여름 가을겨울 가림 없이 젖줄 같은 강물이 출렁출렁 흐르게 될 것이다. 늘 풍년일 것이다.

아마도 내가 추측컨대는 이곳이 고대에 큰 강이었거나 바다였을 듯싶다. 수십, 수백 km에 걸쳐 넓은 지역이 물의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바다생물이었을 것 같은 조개껍질이 보이고, 이 지역 어디든 큰 지각 변동에 의한 반들반들한 돌이 널려있다. 모양도 기묘하여 우리나라 수석애호가들이 욕심낼만한 것들도 많다.

이곳의 작은 콩돌이 매우 인상적이다. 수십 종류의 석질과 독특한 무늬가 아름다워서 귀국 앞둔 사람들은 그걸 주워 접착제로 붙여 꽃병이나 모자이크 액자 등 공예품을 만든다. 나도 몇 개 주워 잘 다듬어 목걸이를 만드는 중인데 그리 만만한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 *

곧 만날 사람에게

하루가 다르게 열기가 더하는 초여름 날씨요. 별일이 없을 줄 알지마는 또다시 가족들과 당신 안부를 묻습니다.

지금 쓰는 것이 내가 이곳에서 쓰는 마지막 편지라는 생각을 하니까 참으로 기분 묘하오. 지나간 1년 세월. 되돌아보면 참으로 말로 다 못할 수만 가지 느낌으로 뒤엉켜진 날들이었소.

우선 무엇보다 날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한 사랑하는 당신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오. 만약 내가 당신을 집에 두고 오질 않았다면 내가 무사히 1년을 버텨냈을 지가 의문이오.

그동안 당신에게 직접 말은 안 했지만 시시때때 엄습해오던 끝없는 절망감. 혹독한 기후. 이따금씩 내 육신을 괴롭히던 여러 건강증세들.

그 모든 고통을 난 당신생각하면서 이겨내었소. 당신 얼굴만 생각하면 난 다시 힘을 끌어 모으게 되고 희망인지 신념인지 모를 신기루를 잡을 수가 있었지. 사내인줄 뻔히 알면서도 또한 내가 누구 못잖게 강한 인간이라 이를 악물면서도 부끄럽게도 눈앞이 흐려지기는 몇 번이던가.

오랫동안 바래지고 퇴색돼 희뿌연 모래 위에 눈물을 뚝뚝 떨구어낸 것은 내가 못나서가 아니고 사내답지 못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나 때문에 고통당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죄스러움이 내 의지력과 상관없이 그렇게 하였던 거지요.

적어도 내게 있어선 예사로이 지나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이 땅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가려니까 이상하구려.

그래도 이 사막에 와서 얻은 것, 느낀 것, 그리고 나름대로의 보람과 온갖 아름답던 순간의 기억들, 손때 묻은 많은 것들, 소금으로 결정을 이루었을 내 땀방울들을 생각하니까 아쉬움과 허전함에 겹겹으로 되돌아보게 하오.

회사에서 연락해주겠지만 630일 밤 9시경에 시간 내어 공항에 좀 나와 주시오. 비행기가 늦게 도착되고 또 입국수속을 하게 되면 시간이 늦어 집에 못 내려갈지도 모르니 여러 사람 고생시키지 말고 당신이나 와요. 난 주머니에 차비 한 푼 없는 알거지니까 알아서.

이제 지난날의 일들은 죄다 허공에 내다버리고 잠시 미루었던 신접살림을 다시 이어가야지요.

참으로 그동안 당신 고생 많았소. 그 날 밝은 얼굴로 반갑게 만납시다.

당신을 고생시킨 미운 사람이.

1985.6.7.

* *

1985.6.29

이 땅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는다. 혼돈스러운 심정만큼이나 어수선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착잡한 마음으로 귀국 짐을 챙겼다. 짐이라고 해야 별다른 게 없다. 남은 작업복과 그동안 쓰던 일상용품들은 제3국고용인 친구들한테 나눠주고 낡은 노트 두 권, 그동안 받아둔 편지뭉치들, 석별을 아쉬워하며 그동안 인연 맺었던 사람들이 챙겨준 선물커피 몇 통. 때때로 따분한 시간 줄이려고 사막을 돌아다니다 눈에 들어 모은 돌 몇 개, 그것이 전부다.

아니다. 현지에 더 남아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피보다 진한 사연을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써서 맡긴 한 아름의 편지들을 받아 담았지만 가방은 절반도 채워지질 않는다. 온갖 전자제품으로 휴대한도를 초과해서 말썽이라는 다른 지역 취업자들에 비교되지 않을 초라한 가방.

귀국하여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제껏 앞서 간 사람들이 내 편지를 그렇게 해줬듯, 이 간절한 사연들을 한 시간이라도 빨리 우체통에 넣어주는 것이다.

과연 내가 여기까지 와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각각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을 따져보는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다. 지닐 것은 지니고 떨어낼 일은 죄다 털고 가자. 결코 후회 없는 귀국 길은 되지 않도록.

사막에서 살아가는 끈질긴 풀뿌리. 그런 것들을 보며 내가 얼마나 약한가를 잘 알았다. 그렇기에 근심 걱정, 다툼도 없이, 포기하거나 눕지도 않으며, 오직 살아남는 것에 충실한 풀 한 포기를 캐내 가슴속에 심고서 내일은 내 땅으로 돌아간다. ()

<당선소감>

진상용 씨
진상용 씨

청자바탕 하늘에 구름무늬 놓인 오후.

얼굴의 땀 씻어주는 바람결인 듯한 당선소식을 받았습니다.

누굴 탓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저는 6.25전쟁 와중에 최전방지역에서 태어나 원하는 만큼의 교육기회를 갖지 못한 전형적 '산업역군 세대'입니다. 연배들 대부분이 생업현장에서 물러난 시기이다 보니 성공한 사람과, 나를 비롯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길 나눠지고 각각의 미래를 꾸려가야 되는 현실, 어느덧 인생 반환점을 돌아 삶의 완성을 향해가지만 내가 살아온 만큼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요, 또 그만큼 밖엔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문학 역시 의욕만 앞섰을 뿐 그동안 창작수업은 커녕, 글 쓰는 어떤 이와도 친분관계나 인연을 갖지 못했으며, 문학관련 동호회, 강좌 등에 참가해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 나라 글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쓰려하였고, 사는 것에 관한 기록을 남기려 나름 노력은 했지요.

이룬 것도 없이 어느덧 60여 줄의 나이테가 육신에 새겨진 지금. 인생의 완숙기에 이르러서야 지난 시절의 열정적이지 못했던 삶이 더욱 아쉬워지고, 그 사막의 혹독한 땡볕이 지금의 나에게 고통이기보다 성숙의 근원이었음을 다시 배웁니다.

어느덧 시니어세대에 발을 들여놓았고 문학 잔치마당 귀퉁이에나마 동참하기 위해 쓴 이 글은 일개미처럼 부단히 살았기에 아직 희망과 꿈을 놓지 말자는 '인생 비망록' 이라 생각해주십시오. 아울러 남아있는 앞날을 위하여서도 나의 기록본능을 멈추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감기한 압박에 짓눌려 다듬지 못한 채 염치없이 올려놓았음에도 작은 이름이나마 걸어놓을 수 있도록 눈여겨 보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며, 이 상을 디딤판 삼아 위쪽을 향한 사다리 한 칸 더 오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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