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우옥자 '천(千)의 손'

천(千)의 손

장갑만 파는 가게가 있다면 저마다 다른 설명서가 붙어있을까
뒤처리가 버거워질 땐 빨간 고무장갑을 낀다 기름 때 비린내 그의 타액 까지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쿨한 이별이라고 가끔 빼내기 어렵고 잘 찢긴다는 걸 주의하라고,

사각의 갑에 천 개의 손을 상비한 보살의 손, 크리넥스 뽑아 쓰듯 톡! 하고 비닐 손을 꺼내 나물을 조물거리다 홀랑 뒤집어 버린다 손가락 끝에 코팅된 눈이 반짝! 장미를 꺾을 땐 바닥이 단풍든 목장갑을, 달아오른 손을 잡을 땐 누군가는 가죽장갑을 추천한다

손뜨개 벙어리장갑이 눈덩이를 굴린다 아기를 안아 올린 산파의 피 묻은 장갑, 죽음을 닦는 장의사의 장갑, 추운 장날 마디 잘린 장갑을 끼고 지폐를 세던 장꾼들, 장갑만 끼면 알통과 근육이 솟는 공사판 남정네들, 삶아 빨아 걸어놓은 푸줏간의 목장갑들…그들은 모두 손의 전신

가장 오래된 戰士는
저기 바닥에 굳은 살 박히고 물때 낀,
슬픔조차 맛깔스런
맨손이라는 장갑을 낀 어머니 손
뜨거운 것 번쩍 들었다 귓불에 대고 호 불던

마지막까지도 벗지 못한 저승꽃 흐드러진 저 장갑이다

수상소감

우옥자 씨
우옥자 씨

제4회 시니어문학상에 당선된 것이 기쁘다. 내가 시니어라는 현재를 확인시켜주고, 그리고 응원해 주고, 나아가야 할 길을 확인해 주었다. 이제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詩를 쓰는 것뿐이라는 것을 다시 마음에 새기게 해주었다. 상을 만들어 주신 매일신문의 혜안과 깊은 뜻에 거듭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지난날들을 이끌고 막 도착한 지금을 사는 것이 아닐까. 현재는 지난날의 끝에 매달린 나뭇잎이라는 생각이 든다. 싹을 내밀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리고 넉넉하게 그늘을 드리운 나무를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시니어'는 슬프고 주눅이 드는 이름이 아니다. 뭔가 어수룩하거나 부족한, 나약한 것이 아니다. 빛나는 젊음이 숙성시킨 넉넉함과 그윽함과 신산함과 그 속에 담긴 맛깔스런 관조의 세계를 지니고 있다. 어느 시기나 나름의 특성이 있겠지만, 어느 시기도 갖지 못한 그 나이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것이 삶으로서의 文學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문학소년 문학소녀 이었던 그 젊음이 숙성되어 晩年의 문학으로 피어날 것이기에

반려문학으로서, 그리고 삶의 진솔한 땀이 담긴 만년의 문학을 꽃 피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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