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골목뒷담(後談)19] 사라진 상표와 상호

롯데필름. 황희진 기자
롯데필름. 황희진 기자

세상에서 사라진 상표와 상호가 골목엔 있습니다. 세상은 급히 변해도 골목길은 멈춰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느린 곳이기 때문입니다.

골목엔 철거되지 않은 간판이 꽤 있습니다. 사라진 가게 간판 앞에(위에) 새로 들어선 가게 간판을 덧대는 경우가 적잖습니다. 간판 설치 업소는 단단히 걸려 있는 옛 간판을 굳이 떼어내지 않고 새 간판을 다시 단단히 고정하는 용도로 씁니다. 그 자세한 기술 원리는 여쭤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도, 방치된 옛 간판이 꽤 있습니다. 건물에 칠해진 간판은 그 건물 칠을 새로하지 않는 이상 없애기 어렵습니다. 대구 중앙로 '본영당서점'(1945~2008) 간판이 대표적입니다. 그 덕분에 대구 향토서점의 중요한 역사 한 구절이 대구 중앙통 골목에 새겨졌습니다. 무궁화백화점의 랜드마크 가게였던 '삼보조명랜드'는 건물 바깥에 칠해진 간판은 지워졌지만, 건물 내부 간판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본영당서점. 황희진 기자
본영당서점. 황희진 기자
삼보조명랜드. 황희진 기자
삼보조명랜드. 황희진 기자

이런 것들 가운데서 사라졌거나 바뀐 상표·상호도 찾을 수 있습니다. ▷쌍용제지가 1995년 시장 점유율 1위로 키우기도 했던 화장지 브랜드 '비바' ▷후지필름과 제휴해 이름을 알렸던 '롯데필름' ▷서일공업사로 시작해 지금은 에넥스가 된 '오리표씽크' 등입니다. 또 LG텔레콤의 PCS 시절 브랜드 'PCS019'와 KT의 자회사였던 KTF의 무선통신 브랜드 'SHOW'의 로고가 새겨진 장비가, 어느 골목길에 철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쌍용제지 비바. 황희진 기자
쌍용제지 비바. 황희진 기자
오리표 씽크. 황희진 기자
오리표 씽크. 황희진 기자
LG텔레콤 PCS019(좌측), KTF SHOW(우측). 황희진 기자
LG텔레콤 PCS019(좌측), KTF SHOW(우측). 황희진 기자

2014년 하나카드로 통합된 '외환카드'와 2017년 DB손해보험으로 이름을 바꾼 '동부화재' 간판도 골목에 있습니다. 금융권은 이런저런 인수합병이 잦아 상표 및 상호 변경 역시 자주 하는 편입니다.

외환카드. 황희진 기자
외환카드. 황희진 기자
동부화재. 황희진 기자
동부화재. 황희진 기자

길바닥에도 있습니다. 한번 설치하면 교체하기 쉽지 않고 상태가 양호하면 굳이 갈지 않아도 되는 맨홀이 대표적입니다.

▷'두루넷'(2006년 하나로통신에 인수된 뒤, 2008년에는 SK텔레콤에 합병돼 SK브로드밴드가 됨.)

▷'하나로통신'(두루넷을 인수한 다음 SK텔레콤에 합병돼 SK브로드밴드가 됨.)

▷'데이콤'(2000년 LG그룹에 편입됐고, 2010년 LG파워콤과 함께 LG텔레콤으로 합병.)

▷'LG파워콤'(한국전력공사의 통신사업 부문이 2000년 분리됐고, 2002년 LG그룹에 편입된 뒤 2010년 LG파워콤과 함께 LG텔레콤으로 합병.)

▷'대구도시가스'(대성에너지의 옛 이름, 2011년 변경.) 맨홀이 대구 시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두루넷, 하나로통신, 데이콤, LG파워콤, 대구도시가스. 황희진 기자
두루넷, 하나로통신, 데이콤, LG파워콤, 대구도시가스. 황희진 기자

이건 사라진 명소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대구 한 식당에는 대구 도심의 나름 유명한 호텔이었던 '뉴종로호텔'의 설탕(혹은 프림)통이 양념통으로 재활용되고 있습니다. 매일신문사의 손님 맞이 공간이기도 했던 '매일커피숍'은 안내판만 남아 있습니다.

뉴종로호텔. 황희진 기자
뉴종로호텔. 황희진 기자
매일커피숍. 황희진 기자
매일커피숍. 황희진 기자

이런 것들이 사라지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잘못된 표기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대신 일부는 근현대문화재급 장소를 알리는 표지판이 될만해 가치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 자체로 근현대문화재급이 될 수 있어 주목할만합니다. 업장은 사라졌지으나 간판은 철거하지 않고 남겨뒀기에 대구관광의 주요 이미지가 됐던 '정소아과의원'이 바로 그렇습니다.

정소아과의원은 최근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간판도 다시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정소아과의원. 황희진 기자
정소아과의원. 황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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