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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위한 자본주의/ 루이기 진갈레스 지음, 김석진·박영준 옮김/ 한국경제신문 펴냄

친기업, 정실주의에 멍든 미국 자본주의에 날선 비판

저자는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미국 자본주의가
저자는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미국 자본주의가 '정실주의' '기운 운동장' 같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미국 자본주의 상징인 뉴욕 맨해튼. 매일신문 DB

자본주의는 '누구든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이 '공평의 룰'은 미국인들은 물론 '아메리칸 드림'의 부푼 꿈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온 수백만 이민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아 왔다. 도덕에서 살짝 벗어난 능력주의와 보편적 원칙에서 벗어난 경쟁도 죄악으로 간주하지 않고 사회 동력으로 치부해준 것도 미국의 자본주의였다.

하지만 최근 미국 각지에서는 '티파티'(조세 저항 운동), '월가를 점령하라' 같은 사회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가 믿고 신뢰했던 미국 자본주의가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의구심이 시민들과 학자들을 광장으로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 위협하는 정실주의=무얼까. 미국의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드 것. 저자는 가장 큰 이유로 미국의 '정실주의'를 든다. 실제로 미국의 정실주의는 생각보다 곳곳에 만연되어 있다. 도산하게 내버려두기에는 너무 큰 대기업과 은행들, 가장 해로운 정실주의가 존재하는 공립학교 제도 등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규제 기관을 '포섭'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1%가 '이 나라의 경제 시스템은 부자들에게 부당하게 유리하다'라고 생각했고, 77%는 '몇몇 부자와 대기업들이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이자 전 세계 자유 수호자들의 본보기였던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저자는 문제점들이 본격 들어난 시점을 2008년 금융위기로 보고 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의 모순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개혁을 주도해야 하는 정부가 시장을 지배하는 대기업과 기득권세력에 의해 포획되고 있음을 알아챘던 것이다.

폴 라이언 위스콘신주 상원의원은 "저자는 경제학자의 날카로운 시선과 이민자의 관점에서 거대 기업과 거대 정부의 악성 공모를 폭로했다"고 평가 했다.

◆이민자 시각에서 미 자본주의 비판=이탈리아 태생인 저자는 1980년대, 정실주의가 만연한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왔다. 당시 이민자의 눈에 비친 미국은 운이나 연고가 아닌 '근면'이 성공의 열쇠인 나라였다.

저자의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선 것은 1998년 무렵. 연방준비위원회가 당시 규모가 가장 컸던 헤지펀드인 LTCM을 구제한 일을 시작으로 저자는 고국인 이탈리아에서 느꼈던 족벌주의와 정실주의의 폐해가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경제 잠재력을 강탈했던 정실주의가 미국의 자유마저 강탈하는 것을 원치 않는 저자는 젊은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이민자의 시각에서 원인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

저자 진갈레스의 주장을 큰 맥락에서 본다면 '친기업이 아닌 친시장 시스템의 복원'이다. 친시장 시스템에서 '경쟁'은 과거 미국이 누린 번영과 자유주의의 장점을 되찾아 오는데 최우선 과제다. 그는 이 책이 '경쟁을 촉진하고 정실 자본주의에 저항하려는 노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적고 있다.

◆경제민주주의 초석은 '평평한 운동장'=저자는 서문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평평한 운동장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미국 경제의 초석을 이루던 시장 시스템이 지난 10년간의 경제 사건들로 인해 부패한 정치인들에 의해 굴러가는 친기업 시스템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 현상에 대한 지적이다.

저자는 자유경제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은 '소득의 균등'보다 '기회의 균등'을 원한다고 말한다. 시장이 공평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운동장이 평평하고 진입이 자유로워야 하지만, 현재 미국의 친기업주의와 정실주의는 이 운동장에 장벽을 계속해서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실력에 따라 보상을 받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는 데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동의한다. '경쟁은 선(善)을 위한 엄청난 힘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경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좀 더 많은 경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나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가 공적인 일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의 제도들을 개선하기 위해 기꺼이 노력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일 때,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평평한 운동장'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시스템이 우리의 현 상황과 같지는 않지만 세계화라는 큰 흐름에서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변화를 이끌어내는 '단초'가 될 것이다. 391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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