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선 작 서과투서

정선
정선 '서과투서'

<6>서과투서(西瓜偸鼠)

겸재(謙齋) 정선(鄭敾)은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명성이 높지만, 산수화가 아닌 다른 그림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특히 세밀한 표현이 중심이 되는 동식물을 소재로 하는 그림에서도 빼어난 솜씨를 발휘했다. 잘 익은 수박을 들쥐 한 쌍이 몰래 훔쳐 먹는 장면을 그린 이 '서과투서'가 바로 그러한 작품으로 정선의 장기로 알려진 진경산수화와는 또 다른 별격(別格)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 덩굴에 하나밖에 달리지 않아서 쥐가 열 마리도 더 넘게 들어 갈만한 큰 수박에 쥐 두 마리가 찾아왔다. 잘 익은 수박을 정신없이 파먹는 쥐와 들킬까봐 머리를 쳐들고 밖에서 망을 보고 있는 쥐의 순간 동작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표정과 몸짓에서 쥐들의 심리상태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수박 속에 쥐가 파놓은 자리가 연분홍빛으로 곯아 있는 것을 보니 쥐들이 이곳을 드나든 것은 오늘이 처음은 아닌 듯하다. 쥐들이 긁어내 먹고 있는 조각들은 주홍빛으로 잘 익어 있다. 수박 위로 잘 자란 덩굴이 휘어져 올라갔는데, 오른편에는 바랭이풀 한 줄기가 단풍이 들어 붉은 빛을 띠고 있다.

한 여름 수박밭을 찾은 쥐들의 은밀하고 정겨운 수박 서리가 정선의 손에서 아름답게 그려졌다. 어린 시절 농촌에서 여름을 보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림을 보는 순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정선도 주변에서 늘상 보고 여러 차례 사생했기에 이만큼 정교하고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화면 오른쪽 위에 '겸재(謙齋)'라고 쓰고, '정선(鄭敾)' 이라 새긴 인장을 그 밑에 찍었다. 이 글씨와 도장이 없었다면, 어쩌면 신사임당 작품으로 전해졌을 만큼 정교하고 우아한 필치이다. 그림 소재의 특성에 따라 이처럼 자유자재로 필치와 기법을 바꿀 수 있는 것을 보면 정선을 화성(畫聖)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오세현(간송미술문화재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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