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 기억이 선하다. 깔끔하게 청소된 새 아파트였다. 주방을 보니 가스레인지 위에는 금방이라도 보글보글 끓을 것 같은 찌개가 든 냄비가 있었고, 전기밥솥에는 따뜻한 밥이 들어 있었다.
외환위기가 터져 온 나라가 신음하던 20년 전, 1998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구 달서경찰서를 출입하던 기자는 가장이 아내와 자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집 안을 목격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끔찍한 사건 현장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온기 가득한 주방 풍경을 봤다.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을 떴을 어린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경찰조사를 보니 가장은 카센터를 차렸고, 새 아파트도 장만했다. 대출을 냈던 그 가장은 외환위기 직후 폭등한 금리에다, 얼어붙은 경기로 영업 부진에 빠졌다. 더는 버틸 수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터.
기자는 외환위기 발생 직후였던 그해, 일가족이 한꺼번에 세상을 뜬 아파트의 비극처럼 유독 끔찍한 현장을 많이 봐야했다. 기자란 직업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가 들기도 했다.
기자가 목격한 현장처럼 수많은 비극을 만들어낸 외환위기의 배경에는 정치적 무능이 있었다.
1997년 해가 밝자마자 5조원가량의 부채를 안고 있던 한보철강이 부도를 냈다. 하지만 당시 김영삼 정부는 수습을 하지 못했다. 3월엔 삼미그룹, 4월 진로그룹, 5월 대농과 한신공영이 자금난으로 법정관리 및 화의 신청에 들어갔고 7월엔 재계순위 8위 기아자동차그룹이 도산했다.
한국의 국제신인도는 급락했다. 외국인들은 앞다퉈 돈을 빼갔다. 1997년 1월 한보의 부도로 경제 전반에 비상등이 들어왔음에도 당시 정치 시스템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작동시키지 못했다. 결국 IMF 구제금융체제로 들어갔고 거의 모든 국민들이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올해 2분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7%로 떨어졌고, 설비투자는 2년3개월 만에 최악 수준이며, 건설업은 6년1개월 만에 최저 성장률이라는 지표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소통 행보'에 나서겠다고 했다. 지난 2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노동계와 직접 만나겠다"고 발언한 것이다. 그리고 26일 저녁엔 서울 광화문 한복판으로 나섰다.
현장을 아는 유능한 대통령,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담아낼 수 있는 대통령, 국민의 신음(呻吟)을 탄성(歎聲)으로 바꿔놓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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