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7일 인구 500만명이 살고 있는 일본 서남부 지역에 연평균 강수량 25%인 1천㎜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일부 지역은 7월 한달 평년 강수량보다 두 배나 많은 비가 내리기도 했다. 사흘간 내린 폭우로 사망자는 200여명에 이른다. 일본 언론은 1982년 299명이 사망한 나가사키(長崎) 수해 이후 최악의 폭우 피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세계적인'방재(防災) 강국'으로 꼽히던 일본은 왜 폭우에 속수무책이었을까. 전문가들은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와 함께 경직된 대응 체계, 정부의 태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이번 폭우는 일본과 유사한 재난대응체계를 갖춘 우리나라도 언제든지 겪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나친 방재 지침 의존과 느슨했던 정부 대응
일본은 사흘동안 내린 기록적인 폭우 앞에 속절없이 당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방재 지침에 지나치게 의존한 점이 꼽힌다. 일본은 그동안 체계적인 재난 대비 지침으로 각종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했지만 이번만큼은 역량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일본 기상청은 지난 5일 일본 서남부 지역에 폭우가 내릴 것으로 보고 '대우(大雨) 특별경보'를 단계적으로 발령했다.
그러나 대피 안내는 지방자치단체가 맡다보니 실제 대피로 이어지진 못했다. 재난 피해 예상 가구중 1%만 실제로 대피한 것으로 나타난 것. 집에 머무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하거나 대피 지시를 무시한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기상청의 방재 기상정보와 지자체의 대피 정보 간에 협조 체제가 미흡했던 탓이었다.
고령 인구가 많은 일본의 인구 특성 상 빠른 대피가 어려웠던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폭우에 따른 사망자 10명 중 7명은 60세 이상 노인들이었다. 특히 사망 원인 중 가장 많은 건 다름아닌 '산사태였다.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노인들이 산사태로 밀어닥치는 토사를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대응도 태만했다. 일본 정부는 폭우 피해를 입은 후에야 뒤늦게 자위대와 경찰 등 8만여명을 동원해 수해 복구에 나섰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폭우 피해가 한창인 시기에 아베 신조 총리와 자민당 핵심 간부들은 초선 의원과 교류모임을 가져 빈축을 샀고, 정부는 비가 그친 8일에야 비상재해대책본부를 설치했다.
폭우 뒤에 몰아닥친 폭염도 재난 복구를 방해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폭우가 지나간 뒤 일본은 극심한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의 경우 낮 최고기온이 41.1℃까지 치솟기도 했다.
명수정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은 "연일 기록을 경신하는 더위처럼 극한으로 치닫는 기후 현상들은 최근 가속화된 기후변화 현상 중 하나"라며 "정부와 지자체 모두 현실로 다가온 기후 변화에 적응할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비슷한 재난대응체계, 한국은 지자체 역량 취약
전문가들은 한국의 상황이 더욱 암울하다고 지적한다. 2014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행한 '해외 주요국의 국가재난관리체계와 시사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일본정부의 재난대응체계와 유사한 구조로 돼 있다. 그러나 일본 지자체의 재난 대응 역량은 한국보다 체계적이고 강하며, 지방과 중앙과의 연계도 비교적 잘 이뤄져 있다.
지난해 5월 6박 7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의 지진, 쓰나미 태풍 등 재난대응을 살피고 온 최병식 경주시 재난안전과장은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 등 큰 재난을 겪으면서 관련 정책도 상당히 많이 진화했다"라며 "대형재난 발생 후에는 기념관이나 체험관 등을 건설하는 등 기록 보전 분야도 아주 우수했다″고 설명했다.
만약 일본처럼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다면 대응 지침조차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우리나라는 더욱 큰 화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국 지자체의 방재 예산이 중앙정부 의존도가 높아 초기대응을 효과적으로 수행 못하는 점은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재난 발생시 중앙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복구비용의 80%를 지원하도록 하는 현재의 방재 시스템은 지방정부의 방재 예산을 후순위로 밀리게 하는 구조적 한계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자연재해 복구비 현황을 보면 전체 복구액 6조8천661억원 가운데 국비가 3조9천609억원(57.7%)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지방비(1조6천683억원)와 자력복구비(1조2천369억원)는 각각 24.3%와 18% 수준이었다.
이와 관련,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재난안전연구센터장은 "오사카 등 주요 대도시는 폭우를 일시 저장하는 시설인 지하댐이 마련할 정도로 우리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방재 대책에 쏟고 있다. 일본은 이번 처럼 침수 피해를 계기로 굉장히 많은 돈을 들여서 또다른 침수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대구경북이 일본 수준으로 안전 기준을 높이려면 필요한 비용을 지출하는데 대한 지역사회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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