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광촌의 애환을 담고 있는 등록문화재 제326호(2007년) 문경 불정역은 문 닫은 국내 간이역 중 가장 독특하고 아름다운 외관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3년 열차운행이 중단되면서 25년간이나 방치됐고 한때는 철거위기에까지 몰리며 사라질 뻔했던 불정역.
그러나 지난해 인형오페라하우스(관장 최상균)로 변신하면서 대반전을 이뤘다.
폐역사를 클래식 공연장 공간으로 재활용하는 전국 첫 사례이자 근대문화유산 활용 모범사례로 꼽히면서 '애물단지'가 단번에 '문화공연 창구'가 된 것. 지금 이곳에서는 국내외 유명 인형극단의 오페라 공연이 잇달아 열려 문경을 찾은 관광객에게 '쉼표'를 찍어준다.
불정역은 지난 1955년 문경의 석탄 수송을 위해 역 앞을 흐르는 영강의 돌(자연석)들로 만들어진 간이역이다. 문경에서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마성면의 진남교반에서 1km가량 떨어져 있다.
인근 대성광업소 등에서 생산되는 연간 수십만 t의 석탄을 전국으로 실어날랐고 광원과 가족들이 드나든 문경 탄광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대합실 개찰실 등은 삼각형의 뾰족한 지붕 형태이고, 벽체는 자연석을 쌓아 만든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국내 유명가수들이 찾는 뮤직 비디오 촬영지가 됐다. 또한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그 풍경을 담고자 즐겨 찾는 명소로 소문이 퍼졌다.
23년째 불정역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청산매운탕 업주 김수진(68) 씨는 자신도 대성탄광 광부 출신이었다며 옛 기억을 회상한다.
"문경에서 가장 큰 탄광 중 하나였던 대성탄광이 1988년 문을 닫으면서 불정역의 쓰임새가 줄어들었어요."
그는 "서울에서 안동으로 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했던 34번 국도에 접한 불정역은 새로 생긴 길 때문에 더 빨리 잊혀졌다"고 했다.
영강을 사이에 두고 2002년 전후로 생긴 왕복 4차로의 새로운 길과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자동차들마저 불정역을 우회, 존재감은 지워져 갔다.
더욱이 불정역 주변에는 민가가 거의 없어 적막감까지 준다.
민가를 찾으려면 또다시 옛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문경에 1981년 큰 수해가 나 새로 생긴 부락이 불정역 주변 마을이었다.
새로 들어선 부락은 사실상 상업시설 용도였다. 당시 탄광산업이 절정이었고 주요 교통로인 불정역을 중심으로 주변에 20호 정도의 '하꼬방'(요즘으로 치면 유흥주점)이 자리 잡아 호황을 누렸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인근에 문경교육지원청이 옮겨왔다. 그 자리에는 대성초교가 있었다. 대성초교가 문을 열기 전에는 대성탄광 광부사택 300호가 그 자리에 있었다.
지난 2006년 한국철도시설공단 재산이었던 불정역은 철거될 뻔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문경시와 문경시민들이 가까스로 이를 막아냈다.
불정역이 철거된다는 내용을 접한 시민과 철도동호인들은 "불정역은 지역 관광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며 철거반대 민원을 제기했었다. 이 민원이 불씨가 돼 문경시가 관광자원화를 위해 불정역을 매입했다.
이후 성악과 오페라 연출을 전공한 문경 출신 최상균 감독이 문경시가 실시한 폐역사(등록문화재) 활용 공모사업에 신청해 당선됐다. 불정역이 세계적으로 드문 인형오페라 공연장으로 변신하게 된 사연이다.
불정역은 스스로 지닌 자태와 지역의 명소를 지키려고 하는 시민들의 관심 덕분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출향예술인의 애향심까지 더해져 이제는 문경의 멋과 문화를 전국으로 실어나르고, 전국의 관광객을 문경으로 불러모으는 기지로 우뚝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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