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돈 까밀로와 뻬뽀네

돈 까밀로와 뻬뽀네

에밀리아 로마나 주의 농촌 마을 브레쉘로(Brescello)는 소설 속 모습 그대로였다. 이탈리아 여느 마을이 그렇듯 성당 종탑 아래로 광장이 펼쳐지고, 광장을 둘러싼 골목 사이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가 오가는 모습은 상상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이 사십 여 년 전이었으니 그간 변한 게 없을 리 없지만, 소설 속 성당은 여전했고 공산당도 건재했다. 심지어 소설이 영화화 되었던 1951년 당시 아역으로 출연했던 소년도 노년이 되도록 마을 박물관에 남아서 돈 까밀로와 뻬뽀네를 기억하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는다.

2차 대전의 상흔이 채 여물지 않은 1948년, 과레스키는 소설 '돈 까밀로의 작은 세상'을 발표했고, 이 책은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영화로 만들어진다. 세계 40여개 국어로 번역되어 팔려나간 책만 7천만 권을 넘고, 다섯 편의 영화와 여러 편의 TV드라마로 제작되어 세계인들을 웃기고 울렸다. 뽀 강 유역의 시골 마을 브레쉘로(소설에서는 '바싸'라고 소개된)에서 깡패 같은 신부 돈 까밀로와 단순무식한 공산당 읍장 뻬뽀네, 십자가의 예수님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소박한 이야기들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작가의 후기는 그 답을 암시한다.

"돈 까밀로와 뻬뽀네, 스미르초, 브루스코 등이 살고 있던 작은 세상에는 지금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여전히 고함을 지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당장에라도 서로 잡아먹을 듯이 날뛰며 으르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홍수가 나거나, 암소가 죽어가는 일이 벌어지면 둘은 또다시 힘을 모아 구조작업을 벌일 것이다. 서로 눈을 흘기고 싸움박질을 하면서도 말이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띠실 게 틀림없다. 그분은 그 미소를 돈 까밀로에게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뻬뽀네나 스미르초에게도 아낌없이 보내신다. 그래서 그들의 어두운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주실 것이다."

소설 속에서 돈 까밀로와 뻬뽀네가 갈등하는 상황은 두 사람에게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극단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협할 수 없는 이념 대립의 마당에서 돈 까밀로와 뻬뽀네는 서로 겨루며 주먹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갈등은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존경이 갈등을 화해와 용서로 풀어내는 실마리가 된다. 작가 과레스키가 "내면의 양심의 소리"라고 일컬은 소설 속 예수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우정과 사랑과 인간미의 다른 표현이다.

갑과 을, 부자와 빈자, 남과 여, 여와 야, 국민과 난민, 노동자와 사용자, 내 편과 적을 가르는 갈등과 분열이 날카롭게 사회를 가른다. 과레스키의 표현대로라면 "자기의 주위가 어둡거나 말거나 오로지 자신의 등불이 비추는 곳에만 머물려고 한다. 그 등불이 아주 좁은 곳만 비출 지라도 오로지 그것에만 매달려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빛이 어디서 온 것인지 상기하는 곳에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풀리기 마련이다. 누구도 그 자체로 빛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빛을 간직하고 있다. 그 빛이 답이다.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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