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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구시의원입니다] 4) 윤영애(자유한국당·남구 제2선거구)

대구시의원. 아는 사람만 압니다. 우리 동네 국회의원은 알아도 또 다른 우리 동네 대변자인 시의원은 잘 모릅니다. 이제 그들에게도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런 관심이 우리 구(區), 나아가 우리 대구를 잘 돌아가게 하는 방법입니다. 매일신문은 이번 6'13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시의원들의 인터뷰를 싣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동네 시의원의 참모습을 확인해보세요.

[나는 대구시의원입니다] 윤영애 대구시의원

4) 윤영애 대구시의원(자유한국당·남구 제2선거구)

42년간이라고 했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공무원 사회에서 여성이 '롱런'하기는 참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그러나 좀처럼 깨지지 않는 유리벽 때문이다. 윤영애(61'자유한국당) 대구시의원은 공무원 생활 42년을 반추하면서 "그래도 지금은 정말 좋아졌다"고 속삭였다. 그녀는 자신을 "지방행정의 산 증인"이라고 소개하면서 인터뷰를 조곤조곤 이어갔다.

◆대구 남구청에서 33년간을 근무했다고 들었는데?
-1975년 6월 경북 상주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고교 졸업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고3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공무원을 시작했다. 1984년에 남구 대명5동으로 전입한 이래 쭉 남구청에서 근무했다. 여성이다 보니 20년 가까이 민원 창구에만 근무했다. 옛날에는 민원실에서 호적등본을 많이 떼줬는데 컴퓨터나 DB화가 안 돼 있어 하나하나 손으로 적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시쳇말로 '노가다'였다.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남녀 차별을 누구보다 느꼈을 것 같은데?
-(쓴웃음을 지으면서)지금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경리, 인사, 기획 등 중요 부서에 여성을 배치해주지 않았다. 여성 공무원은 주로 민원실에 배치했다. 업무 분담에 차별을 많이 뒀다. 예전에는 출산휴가도 제대로 못 갔다. 법적으로 60일이지만 2~3주 정도 가는 것이 전부였다. 저도 출산한 지 1개월이 안 돼 출근해야 했다. 상사가 일찍 출근하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던 시절이었다. 2000년대 전까지는 여성이 소수니까 분위기상 목소리 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업무적으로 남성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그래야 승진의 기회가 있었다. 1991년에 관선으로 여성인 이현희 남구청장이 왔는데 그때 경리계로 발령받았다. 당시로써는 파격적이었다. 경리계는 남자직원이 독점하다시피하는 부서였다.

윤영애 대구시의원
윤영애 대구시의원

◆올해 상반기 '미투' 운동이 거세게 불었다. 미투 운동을 쭉 지켜봤을 텐데?
-무엇보다 '이제는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다 덮고 갔을 상황인데 사회가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과거에는 술자리에 가면 상사들이 '술을 치마 입은 여자가 따르면 맛있다'는 이야기를 으레 하고 여직원들도 속은 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이런 잘못된 문화를 공개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아쉬운 점은 있다. 그런 이야기를 꺼낸 당사자를 낙인찍고 남성 중에는 '여자가 행동을 잘하지'하는 생각이 여전히 무의식 속에 깔려 있다. 그렇다 보니 이야기 꺼낸 당사자가 2차 피해를 본다.

◆양성평등전문강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양성평등을 위해서는 가정부터 달라져야 한다는데?
-지난해 1월 여성가족부로부터 양성평등전문강사 자격증을 땄다. 양성평등이라면 굳이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지 않고 차이점을 인정하는 것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차이보다 차별에 비중이 실려 있다. 이런 사회적 인식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엄마들이 "사내아이는 울면 안 돼",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지 마"라고 이야기한다. 여전히 엄마들은 아들이 그런 행동을 하면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그런 경향은 무의식 속에 아들은 강하게 키우고 딸은 곱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그런 생각은 할머니 때부터 계속 이어져 왔다. 이런 생각이 육체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부분은 사실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 언론 매체나 담당 기관에서 지속적인 홍보를 하고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많이 해야 한다.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제도나 법규는 우리나라가 잘 돼 있지만, 의식이 못 따라가는 상황이다..

◆공무원을 하면서 가장 보람됐던 때가 있다면?
-2012년 대명3동장을 할 때였다. 당시 우리 동사무소에서 '사랑의 쌀독'을 운영했는데 한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쌀을 챙겨갔다. 그런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고 할머니에게 물어봤더니 평소 폐지를 줍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먹고살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더라. 좀 더 자세히 물어보니 4대가 허름한 빌라에 살고 있었고 아들이나 며느리 등은 몸이 좋지 않고 거의 할머니 혼자 생계를 책임진다고 하더라. 궁금증에 그 가정을 직접 찾아갔는데 아들과 며느리가 외부에 자신들이 못 사는 것이 알려지는 게 싫다고 하더라. 예전에 사업했는데 부도가 났고 지금은 생계조차 챙기기 어려운 상황을 자존심 때문에 외부에 말 못한다고 했다. 너무 안타까워 아들을 계속 설득했고 결국 국가 혜택을 받도록 했다. 얼마나 그 할머니를 우연히 받는데 저를 보고 고맙다고 하더라. 정말 뿌듯했다.

◆누구보다 남구에 대해 잘 알 거라 생각된다. 지금 남구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또한 시의원에 재직하면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가장 시급한 것이 역세권 개발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남구는 중구'서구와 함께 가장 살기 좋은 구였다. 당시 공무원들도 발령받고 싶어했던 곳이었다. 특히 남구 중에서도 대명동은 대구의 부촌으로 손꼽혔다. 이후 달서구와 수성구에 개발이 급격히 일어나면서 남구가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또한 남구는 미군부대가 있어서 건축 고도 제한도 걸려 있다. 이런 이유로 한때는 구민이 23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15만 명에 불과하다. 남구에는 지하철 1호선과 3호선이 통과하니까 특별법이라도 제정해서 이런 역세권을 본격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앞으로 대구시에 꾸준히 이런 부분을 요구하겠다. 앞산 개발도 꼭 이루고 싶다. 앞산은 대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남구는 물론, 달서구와 수성구를 낀 전형적인 도심형 산이다. 앞산을 신천과 연계해 관광자원화해서 대구의 랜드마크로 만들고 싶은 것이 꿈이다. 그러려면 과감한 개발이 필요하다. 얼마 전에 보니까 원주 소금산에 출렁다리가 생겨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하더라. 앞산에 이처럼 친환경 구름다리를 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윤영애 시의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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