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전쟁'이 시작됐다. 이미 각 지방자치단체가 요구한 내년도 국비안이 부처에서 기획재정부로 넘어가 1, 2차 심의까지 끝났으니 진행 중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7일까지 미결·쟁점 사업 심의가 이뤄진다니 다음 주 초쯤엔 지자체의 사활을 건 국비 확보 전쟁 1차 성적을 가늠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국비 확보 가능성을 점치려면 여기에 국비 요청 사업이 반영돼야 한다. 정부안에 담지 못한 사업을 국회 심의 과정에서 담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이 이 심의 과정에 필요사업을 언급해 놔야 그 사업은 나중에라도 다뤄질 수 있다.
그래서 시도 예산 담당자들은 이 기간을 가장 긴장된 시기로 꼽는다.
기재부가 함구하니 예산 담당자들은 기재부는 물론 부처에서 나오는 한마디를 듣고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를 위해 이른 시기부터 여의도로, 세종으로 '발품'을 팔아 왔다. 치열한 '첩보전'은 진행 중이다.
유독 이 시기에 지자체장이 기재부를 찾아간다느니, 국회의원을 만난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 것도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수집한 정보가 바탕이 됨은 물론이다.
내년에 완공해 2020년 문을 여는 울진의 국립해양과학교육관은 기재부의 '벽'에 귀를 댄 경북도 예산 실무자들이 빚어낸 성과의 한 예다. 이 사업은 2012년 말 기재부 예비타당성 조사대상 사업에 이름을 올렸으나 사업의 확정 여부는 안갯속이었다. 1천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어서 경북도와 울진군은 사활을 걸다시피 했으나 예타의 결과를 가늠할 수 없었다. 예타가 통과되더라도 서둘러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하세월 될 판이었으니 답답함은 커져갔다.
그때 기재부의 한 관계자가 당시 경북도 국비 담당 사무관이던 김일곤 경북도 예산담당관에게 "조금만 힘을 실으면 된다"는 팁을 줬다. 김 담당관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곧바로 울진군수에게 사실을 알리며 기재부장관 등에게 매달려 사업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알리라고 귀띔해줬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기재부발(發) 짧은 이 팁 하나가 예산 확보의 결정적 '키'(Key)가 된 것이다. 그 한마디를 듣고자 김 담당관이 쏟았을 노력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무용담을 들으며 웃을 겨를도 없이, 현장에서 전해오는 지역의 내년도 국비 확보 기상도는 잔뜩 흐리다.
기자가 4년 가까이 국회를 출입하며 지켜봐 왔던 예산 정국에서 국비를 가장 확실하게 확보하는 방법은 '사업의 당위성' '단체장의 의지' '정치권과의 협력', 이 세 가지 조건이 어우러질 때였다. 혹자는 합리적 설득과 건강한 채널을 꼽기도 한다.
기본에 충실할 때 최고의 힘이 발휘됨은 예산 정국서도 마찬가지다.
정치적으로 자유한국당이 주류인 대구경북이다보니 더불어민주당이 대세인 권력 지형서 '예산 홀대론' 우려가 나온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압승 속에 유이(有二)하게 한국당 단체장을 배출한 곳이어서 지레 예산 패싱을 감내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안 될 일이다. 만약 국비 확보 성적이 나쁘더라도 '홀대론'이 면책사유가 될 수 없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 그들이 예산 정국서 보여준 활약을 시·도민들은 오롯이 봐왔다. 지역 단체장·정치인이 명심해야 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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