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자/ 김문주 지음/ 마음서재 펴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사실이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고, 패자에게는 변명할 기회조차 주어지는 않는다. 승자는 승리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과 혁혁한 전과 위주로 역사에 쓰여지고, 패자는 과정에서 좋았던 일이나 업적은 다 묻히고 망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기록된다. 하다못해 술자리에서 병권을 잡고만 있어도, 다음 술잔의 양과 마시는 방법 등을 결정한다. 나라의 흥망과 관련된 역사야 오죽할까.

백제 의자왕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의 최대 희생양이 될만한 역사 속 인물이다.이 책은 백성과 강토를 지키지 못한 왕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의자왕이라고 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삼천궁녀'가 말해주듯, 이긴 자들이 기록으로 남긴 왜곡과 조롱의 수준은 잔인할 정도다. 주로 학교폭력을 고발하는 장편동화를 써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의자왕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파헤친다.
'부여의자'는 백제 최후의 왕으로서 시호를 받지 못한 의자왕의 본명이다. '삼국사기'는 의자왕에 대해 "왕이 궁인과 함께 음황탐락하여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의자왕이 집권 초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신라를 쳐서 대야성 등 40개가 넘는 성을 함락했다는 것은 역사를 기록한 승자들이 숨겨온 진실이다. 의자왕은 19년 재위기간 동안 15년이나 신라를 불안에 떨게 했던 용맹한 왕이었다.

저자는 단순한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사서를 비롯해 '일본서기', '당서' 등 당시 시대상을 엄정하게 고증해 의자왕과 관련한 다른 단면들을 이 책 속에 정연하게 담았다.
의자왕에 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성한 백제를 꿈꾼 의로운 군주이나 백제의 끝자락을 안타깝게 마무리한 왕"이다. 어린 시절에는 효성이 지극하고, 학문과 도덕이 높다 하여 '해동증자'로 추앙받았다. 즉위 후에는 왕권을 강화하고, 아버지 무왕의 숙원이었던 신라정벌에 나선다. 의자왕의 공세에 놀란 신라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은 당나라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다. 김춘추가 신라왕이 되어 당나라와 손을 잡으면서 의자왕은 도리에 수세에 몰리게 된다.
660년, 신라군 5만과 당나라 군사 13만이 가세한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백제의 운명을 최후를 맞게 된다. 계백이 이끄는 5천 결사대가 황산에서 나당연합군에 맞서 결사항전을 펼치지만 결국 패배하고 만다.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나라가 무참히 유린되는 굴욕을 견디다가, 결국 당나라에 끌려가서 파란 많은 생을 마감한다. 의자왕은 "내가 용서를 구할 사람은 오직 나의 백성들 뿐이다."라고 충정어린 마지막 유언을 남겼지만, 역사를 기록한 자들은 '타락과 무능의 프레임에 갇힌 의자왕의 변명'으로 치부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가 다루지 않은 의자왕의 다른 단면 뿐 아니라 충절의 표상으로 알려진 계백, 성충, 흥수 등 백제의 최후를 지킨 장수들과 궁인들의 충심어린 마음과 절개 등도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의자왕의 위업을 바르게 이해하고, 왜 왜곡과 편견없이 그의 실체에 다가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99쪽, 1만3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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