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사법권은 법관들 것이 아니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사법권 독립은 국민 보호 위한 수단
美 배심재판으로 자의적 판사 견제
법원행정처 해체, 판사도 각성 필요
법률 바꿔 국민참여재판 확대 시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생명과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 미국 독립선언의 내용으로, 프랑스 혁명 등에 영향을 끼친 사상이다. 독립의 이념적 배경에 비해 덜 알려진 것은 독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열거한 부분이다. 국왕(조지 3세)의 잘못을 하나하나 지적한 가운데 특이한 게 눈에 띈다. "국왕은 판사의 임기, 봉급의 액수와 지불에 관해 오로지 국왕의 의사에만 의존하도록 했다." 요즘 말로 국왕이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했다는 주장이다. 임기와 봉급 등을 국왕 멋대로 함으로써 판사들이 왕의 뜻에 따라 재판을 한다고 보았다. 판사의 (종신) 임기와 봉급 규정이 미국 연방 헌법에 명시된 이유이다. "(연방) 판사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직을 유지할 수 있으며 보수는 재임 중 감액되지 않는다." 권력자(왕)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법부 독립을 제도화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대법원장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임기 규정은 미국과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 정치권력 눈치를 보지 않고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법관의 독립' 규정 역시 같은 맥락이다.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사법부'를 만들려는 제도적 보장이다. 근대 헌법이 이처럼 사법권 독립을 중시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려는 노력이다. 미국에서 보듯 독립되지 않은 사법부는 무소불위로 '인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국왕'을 낳기 때문이다. 임기는 중요하지 않다. 사법권 독립은 본래 법원이나 법관들을 위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재판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게 목적이다. 한마디로 사법권 독립은 수단일 뿐, 그 목적은 국민을 보호하려는 데 있다.

이른바 '사법 농단' 사건이 점입가경이다. 새로 공개된 문건은 법원의 문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뒷조사와 밀실 거래 등 음습한 공작의 냄새를 풍긴다. VIP(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협조하기 위한 각종 판결 사례를 든 것부터 어이가 없다. 사실상 판결 내용에도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대법원이 청와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헌법재판소와 경쟁을 벌인 의혹이 있다. 판사의 해외 파견 확대를 위해 외교부와 거래한 내용도 드러났다. 판결 내용을 협의하기 위해 법원행정처 판사가 청와대를 방문한 기록도 나온다. 비리 법관 재판에 대한 관심을 돌리려 '이석기 사건' 재판을 활용한 정황도 있다. 검찰의 수사를 자청해 놓고도 의혹 핵심 인물에 대한 영장은 법원이 족족 기각한다.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힘겹다. 법을 밥벌이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한 사람으로 참담하다.

미국은 사법권 독립을 보장하지만 법관 견제 장치가 있다. 배심재판이 대표적이다. 판결은 물론 영장 발부도 기본적으로 배심원 결정에 따른다. 법관의 자의적 해석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사법권 역시 국민이 위임한 권력임을 알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우리 법원과 법관들은 사법권 독립의 목적을 망각하고 있다. 사법권의 궁극적 귀속자가 누구인지도 잊고 있는 듯하다. 사법권이 법원의 고유 권한인 양, 사법권 독립이 법원과 판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 양 착각하고 있다. 영화의 대사처럼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배심재판의 완전한 도입은 헌법 개정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법률 개정으로 가능한 범위까지 배심재판(국민참여재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법원행정처를 해체하고 판사들이 재판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판사들의 각성이다. 사법권은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권한이며, 사법권 독립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임을 깨달아야 한다.

약력: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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