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입추(立秋)다. 음력 6월 하순, 폭염은 여전하지만 '가을' 소리에 위안을 느낄 정도로 반가움이 앞선다. 입추는 모두 여섯 개의 가을 절기 중 첫 번째다. 말복(16일)과 칠석(17일)을 넘기고 더위가 끝난다는 처서(處暑·23일)도 지나면 아무리 고약한 기후도 풀이 꺾이고 계절의 변화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9월 백로와 추분, 10월 한로와 상강으로 이어지면 가을도 점점 깊어진다.
늦은 저녁, 아파트 인근의 중학교로 걷기 운동을 나간다. 체력을 지키고 더위도 쫓을 겸 매일 빼먹지 않고 나서는 걸음이다. 그런데 그제 운동장 한쪽 풀숲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귀를 스치듯 짧게 울렸다가 지나간다. 삼복더위에 귀뚜라미라니, 잘못 들은 건 아닐까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분명 귀뚜라미 소리였다.
속담에도 '알기는 칠월 귀뚜라미'라고 했다. 모든 일에 아는 체 나서는 사람을 '칠월 귀뚜라미'에 비유한 까닭은 그만큼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고 먼저 움직인다는 뜻일 것이다. 귀뚜라미의 주 활동 시기 또한 8월에서 10월인 점을 감안하면 비록 지금은 희미하지만 귀뚜라미의 존재가 결코 무리는 아니다. 귀뚜라미를 '가을의 전령사'로 부르는 것도 계절 변화에 민감한 속성을 잘 말해준다.
1897년, 미국 물리학자 아모스 돌베어는 귀뚜라미 울음 길이와 기온의 상관관계를 계산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이른바 '돌베어의 법칙'대로 요즘 밤 기온이 30℃를 훌쩍 넘기는 탓에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길게 이어지거나 깊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 어둠 속에서 여름 성장기를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귀뚜라미의 움직임은 부인하기 힘들다.
입추 소식에도 폭염은 그 기세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속담에도 입추 즈음에는 '귀 밝은 개, 벼 자라는 소리 듣는다'고 하지 않았나. 개가 들을 정도로 벼가 쑥쑥 자라는 것은 한여름 무더위와 강한 햇볕이 있기 때문이다. 무더위 속에 조금씩 싹트는 가을 기운이 말해주듯 이제 두 계절은 서서히 겹치고 조금씩 자리를 바꿀 것이다. 당장은 폭염이 계속 어깨를 내리누르지만 그래도 입추는 입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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