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그대 진정, 춘향을 아시나요?

김광순 역주『춘향전』, 박이정, 2017.

광한루
광한루

우리나라 성인들 중 춘향전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판소리는 물론 영화나 뮤지컬 등으로도 재탄생해 현대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작자 미상의 판소리계 한글 소설인 '춘향전'은 이본(異本)이 무려 150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 이렇게 이본이 많은 것은 사람들에게 그만큼 인기가 많았던 탓이리라. 필사자에 의해 필사될 때마다 취향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추가되거나 변형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이본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남원의 기생 성춘향은 광한루에 그네를 타러 나갔다가 사또의 아들 이몽룡을 만난다. 이렇게 청춘 남녀는 인연이 시작되고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한다. 춘향과 이몽룡이 사랑을 계속하던 중 사또가 서울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래서 둘은 헤어지게 된다. 이몽룡과의 약조를 지키려는 춘향은 새로 부임한 사또의 수청을 죽기를 무릅쓰고 거절하다가 옥에 갇혀 죽을 위험에 처한다. 이때 암행어사가 되어 나타난 이몽룡이 춘향의 목숨을 구하고 함께 평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이렇게 희극으로 끝난다.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사또의 생일잔치에 나타나 그들을 징계하는 장면은 읽는 이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한다.

"푸른 철릭에 홍띠를 매고 한 손에 마패 들고 또 한 손에 등채 들고 사방에서 들어가며, 중방은 옷을 쥐고 서리는 고함칠 때 이놈도 치고 저놈도 쳤다. 또 서문에서 암행어사, 남문에서 출도소리, 동문에서 고함하며 북문에서 자리 공방하며 일시에 고함치며 벼락같이 달려드니, 엎어진 놈 자빠진 놈 낙상하여 뒹구는 놈 허다하고, 거문고는 부서지고 장구통은 벌어져서 뒹구는 것이 북통이요 깨지는 것이 해금이라." (P,176)

해마다 5월이면 전북 남원에서 성대하게 춘향제가 열린다. 춘향의 묘소에서 제를 올리고 각종 문화행사를 벌인다. 소설의 내용과 달리 이몽룡으로부터 버림받은 춘향의 원혼을 달래는 한편 그 정절을 높이 기리는 행사이다. 비로소 이 책 '해제' 설성경의 조사에서 밝힌 성춘향과 이몽룡은 실존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광순 역주 '춘향전'에서는 원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필사본의 원문이 실린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40여 년을 대학 강단에 섰던 김광순 교수가 그동안 수집해온 고소설은 필사본과 복사본까지 총 474종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선정된 '김광순 소장 필사본 고소설 100선'은 문학적인 수준이 높거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유일본과 희귀본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이런 문화 재료를 보존하기 위해 고소설 문학관이나 고소설 박물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땅하다.

이 책은 원문에서 사라진 옛말과 고어체로 적힌 한자를 풀이해주는 각주가 171쪽에 무려 770개나 달렸다. 각주를 세심하게 달만큼 실존 인물임을 추론해내는 연구도 세심했던 작품이다. 다만 작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연구 중이다. 춘향에 대해 아직 어렴풋이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판소리 '춘향가'와 창극 '新춘향전'과 다른 그윽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임정희 학이사독서아카데미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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