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원래 첼리스트였다. 심한 근시였던 그는 앞에 놓인 악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어, 매번 연주 때마다 외워서 연주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은 오페라 공연 중간에 청중들의 조소와 야유로 지휘자가 더 이상 공연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황한 오케스트라 단원과 가수들은 고육지책으로 토스카니니를 대리 지휘자로 추천했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 곡을 전부 외우고 있던 사람은 오직 토스카니니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날을 계기로 위대한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탄생했다.

레너드 번스타인 또한 대타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25세 때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임명되었었는데, 당시의 객원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독감으로 앓아눕자 대신 지휘대에 올랐다. 이 연주회는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에 전파됐다. 이로 인해 잘 생긴 청년 지휘자 번스타인은 역사상 최초로 자국(미국) 출신의 뉴욕필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게 되었다.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완성한 지휘자 유진 오르먼디에게도 이런 행운이 찾아왔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주가를 올리던 그는 생계를 위해 삼류 뮤지컬 극장에서 콘서트마스터로 일을 했다. 위대한 음악가를 꿈꾸던 그가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보내던 중 기회가 왔다. 갑자기 병마로 쓰러진 지휘자를 대신해 지휘봉을 잡아 대성공을 이뤄냈고, 지긋지긋한 삼류극장을 탈출하게 됐다. 그에게는 또 한번의 기회가 있었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던 토스카니니가 병으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을 못하게 되자, 그 대역으로 지휘를 하게 됐다. 마침내 그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성악계에서도 스타의 탄생은 있었다. 196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테너 프랑코 코렐리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공연을 취소하자, 당시 27세의 무명 테너가 대역을 맡았다. 그가 세계 3대 테너로 칭송받고 있는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역시 1963년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라 보엠' 첫날 공연 직후 갑작스럽게 출연을 취소하게 되자, 남은 공연을 맡게 되면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대타가 '새로운 스타'로 뜬 경우는 음악계에선 종종 있으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면 대신 연주를 하거나 지휘를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미래는 준비된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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