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 면접시험에서 한 교수님이 '관동별곡' 마지막 부분을 외워 보라고 했다. 긴장을 많이 한 터라 더듬더듬 '명월(明月)이 천산만락(千山萬落)에 아니 비친 데 없다'를 이야기하자 다른 교수님이 해석을 해 보라고 했다. 다행히 아는 내용이라 자신 있게 "임금의 은혜가 온 세상에 미치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칭찬할 줄 알았는데 교수님들은 "뭘 근거로 그렇게 해석하는 건가?", "다르게 해석할 수는 없는가?" 하고 공격적으로 질문을 했다. 정신이 반쯤 나갔다가 겨우 "학교에서 그렇게만 배웠는데요. 대학에서 좀 더 잘 배워서 답변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답을 했었다.
지금 그 질문을 들었으면 조금 여유 있게 여러 가지 답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전시가에서 세상을 다 비추는 것으로 표현된 존재는 주로 임금님이므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고, 임금에서 잘 보이려는 마음이나 자기가 관할하는 지역이 이상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오늘날로 치면 강원도 도지사가 보름 넘게 일도 안 하고 놀러 다니는데도 아무 일도 없는 것에서 느끼는 평화로움과 여유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작가인 정철이 그런 기분을 느꼈던 곳, 바로 울진의 망양정에 가 보면 '아! 이래서 정철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망양정에 올라가 바다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바다 밧근 하ᄂᆞᆯ이니 하ᄂᆞᆯ 밧근 므서신고 / ᄀᆞᆺ득 노ᄒᆞᆫ 고래, 뉘라셔 놀내관ᄃᆡ / 블거니 ᄲᅳᆷ거니 어즈러이 구ᄂᆞᆫ디고"에서처럼 노한 고래가 물을 내뿜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름난 정자들이 그렇듯이 망양정도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부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시원한 바람이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오면서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화풍(和風)이 습습(習習)ᄒᆞ야 냥ᄋᆡᆨ(兩腋)을 추혀 드니 / 구만리댱공(九萬里長空)애 져기면 ᄂᆞᆯ리로다"고 한 말을 직접 느낄 수 있는데, 날지 않고 그냥 정자에 누워만 있어도 신선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전문학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바로 옛사람들이 있었던 장소에 우리도 가 볼 수 있으며, 그 장소에서 옛사람들이 느꼈던 것들을 함께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과서로만 배우고, 그냥 외우기만 하면 고전문학을 배우는 의미는 반감된다.
아직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면, 혹은 동해안 쪽으로 여행 갈 일이 있다면 울진 망양정에 올라가 한숨 자고 오는 것을 강력 추천하고 싶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