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군은 '인문학도시'로 전국적 명성이 높다. 매년 30여 개 지자체에서 벤치마킹하러 올 정도다. 2000년 평생학습으로 인문학에 입문한 칠곡군은 2013년 창조지역사업을 진행하면서 인문학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
군의 인문학 관련 사업은 인문학마을 만들기, 전국 대학생 인문학 활동, 칠곡 할매시집 발간, 마을인문학예술단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인문학마을은 2013년 9개 마을에서 출발해 현재 26개 마을에 이를 만큼 국내 최고 수준의 활동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2013년부터 6년 연속 '한국의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대상'에서 문화교육 선도도시 부문 대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인문학마을'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문화브랜드'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역량을 결집해 칠곡군과 칠곡인문학마을협동조합은 오는 25일 오후 1시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전국 인문학도시 포럼'을 연다.
국내 지역활동가 300여 명이 참여하는 이날 행사는 스타강사 김미경 씨가 진행하는 '인문학콘서트'와 '마을공동체! 인문학에 길을 묻다'란 주제로 마련되는 포럼(토크콘서트 형식) 등으로 구성된다. 또 인문학버스킹과 인문학전시회 등으로 꾸며지는 '인문학마당'과 전국 인문학사업 지역활동가 100여 명이 참여하는 칠곡 인문학마을 투어도 펼쳐진다.
이번 행사의 의의는 '인문학도시 칠곡'의 브랜드 파워를 확실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이는 지난 10여 년 간 마을에서, 또 인문학 관련 협동조합에서 묵묵히 일해온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칠곡 인문학의 특징은 책과 이론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니라 우리네 일상에 녹아있는 '삶 속의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문학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표적인 인문학 리더 3명의 활동기를 통해 칠곡군 인문학의 발자취와 현주소를 짚어본다.
◆신현우 칠곡인문학마을협동조합 이사장
2013년 약목면 남계3리에서의 인문학마을살이를 시작으로 인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우리 마을은 산촌이기 때문에 나무가 적게 드는 고효율 화덕과 난로를 만들어 자급자족하고 다른 마을에 기술 전수도 해줬다. 인문학마을에는 1년에 400만~500만원의 예산이 지원됐는데 이 돈으로 1년 내내 주민들이 행복해하는 걸 보고 이 사업은 계속돼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려면 정부 지원과 상관없이 사업자금을 직접 조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겠다 싶어 마을사업 반장을 그만두고 2015년 칠곡인문학마을협동조합을 만들어 협동조합 일만 했다.
칠곡군 내 인문학마을 17곳이 현재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칠곡인문학마을협동조합은 인문학마을살이의 보조 및 인문학 관련 사업 추진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게 주 역할이다.
인문학마을살이를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은 나라는 개인주의가 없어지고 우리라는 개념으로 마을이 합쳐졌다는 것이다. 또 인문학마을을 총괄할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인문학은 잘 살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즐겁게 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전 주민이 선생이고 전 주민이 학생이 될 수 있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 바로 인문학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조그만 지식도 공유할 수 있다.
칠곡군의 인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그냥 사람 사는 세상이다. 어르신의 지혜를 공부하고 배우는 사람 사는 세상이 인문학인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끊기더라도 칠곡군 전 마을이 인문학으로 소통할 수 있는 군이 됐으면 좋겠다는 게 마지막 바람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 칠곡군 전체로, 경북도로, 우리나라 전역으로 퍼졌으면 좋겠다.
◆김성호 왜관읍 금남2리 인문학마을 사업반장
2013년부터 현재까지 왜관읍 금남2리 인문학마을의 사업반장을 맡고 있다. 사업반장의 역할은 프로그램 기획에서부터 참여자 모집, 프로그램 운영, 주민 평가 및 피드백, 사업 마무리까지 아우른다. 남편은 마을 이장이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우리 마을만의 특화된 인문학 프로그램은 '아버지요리교실'이다. 아버지들에게 요리를 배우게 해 늘 밥상을 받기만 했던 어머니들에게 요리를 대접하게 하는 수업이다. 어린이들이 요리를 배워 부모 및 조부모에게 대접하는 '어린이요리교실'과 마을 특산물인 오이를 활용한 '특산물요리교실'도 인기다. 사진사랑방도 운영하고 있는데 사진동아리 결성으로 전시와 책자를 제작하고 마을 곳곳에 꽃밭도 만들고 있다. 압화를 활용한 '압화 체험교실'도 진행하고 있다.
6년째 인문학마을 사업반장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큰 보람은 마을주민 전체가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농사일로 바쁘다 보니 주민 대부분이 비닐하우스에서 일하고 집에 가서 자는 것이 전부인 생활을 해왔는데 인문학마을살이를 통해 공동체 프로그램을 많이 하다 보니 서로 한집 식구처럼 소통하고 자연스럽게 모여서 즐기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생각하는 인문학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생활, 그리고 즐거움이다.
하지만 현재의 인문학마을 성과에 만족할 수는 없다. 인문학마을은 애초 정부 및 지자체 예산에 의해 시작됐다. 이를 주민 자발적 의지에 의해 어떻게 삶에 묻어가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또 농촌에는 어린아이들이 거의 없다. 우리 세대만 인문학으로 즐겁게 살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이를 물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정태원 인문학목공소 협동조합 이사장
북삼읍 휴먼시아아파트의 입주자 대표를 맡고 있던 2011년, 아파트 부녀회랑 마을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 행사를 하게 됐다. 이것이 마을공동체 활동의 시작이었다. 이후 어린이날 행사로 내 아파트, 이웃 아파트 가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 먹였다. 이때부터 '이웃이 행복하고 아이들이 살기 좋은 곳'을 만들자는 마을공동체 활동 목표가 생겼다.
이를 위해 휴먼시아아파트 마을신문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신문 제작에 도움을 받기 위해 칠곡교육문화회관 지선영 평생교육담당을 만나게 됐고 이 만남은 내 운명을 바꿔놓았다.
이후 인문학의 세계에 풍덩 빠져들게 됐다. 2012년 첫 인문학축제를 시작으로 2013년 인문학마을살이에 들어갔다. 그해 10개 마을이 인문학마을에 참여했고 마을 간 결속과 발전을 위해 12월 칠곡인문학마을협의회를 만들었다. 이를 동력 삼아 북삼인문학거리축제를 열어 돌무지행사를 재현했다. 이 행사는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2015년 1월에는 칠곡인문학마을협동조합을 결성해 지역의 다양한 문화사업 및 마을공동체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인문학 관련 직함은 총 3개를 갖고 있다. 칠곡인문학마을협의회 사무국장과 칠곡인문학마을협동조합 사무국장, 인문학목공소 협동조합 이사장이 그것이다. 지난 6년간 이러한 활동을 하면서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마을 어르신과 아이들, 주민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다. 사람 중심의 생활 인문학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의 바람은 칠곡군 내 210여 개 마을 전체를 인문학마을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다. 군민 모두 행복하고 살맛나는 칠곡군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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