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북유럽 학생들은 어디서 무엇을 배우나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입시 무관한 북유럽 취미사회활동
정규교육만큼 중요한 학습 과정
부모의 적극적 관심과 도움이 한몫
대학과 노동시장서 높은 성과 보여

지난 7월, 스웨덴 친구의 초청으로 노르쇠핑 도시의 한 기계체조 공연에 참석했다. 아마추어 학생 행사여서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뜻밖에 북유럽 교육의 속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다와 숲이 가까운 가설공연장에 도착하니 60명의 학생이 부모 30여 명과 텐트촌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매일 저녁 공연을 하고 바비큐 파티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주일간의 여름 캠프였다. 2시간 동안 지구환경을 주제로 수준급의 체조 공연이 펼쳐졌고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은 신속히 무대 장치를 걷고 설치하며 손발을 맞춰냈다. 기획에서 실행까지 학생들의 아이디어 회의와 연습이 일궈낸 멋진 작품이었다.

행사 주체인 노르쇠핑 청소년서커스단(Norrköpings Ungdomscirkus)은 40년 역사의 인기 높은 기계체조 단체이고 6~19세 지역 청소년을 회원으로 받는다. 인구 12만의 노르쇠핑에는 스포츠 단체 200여 개를 포함, 650개의 다양한 자유 단체가 있고 대다수는 학생 활동과 연관된다. 그런데 이 모든 청소년 활동은 입시나 성적과 무관하고 학교, 교사와는 더더욱 별개로 행해진다. 노르쇠핑 청소년서커스단은 회비와 25%의 정부 지원, 그리고 부모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된다. 체조 교사는 특정 기간에만 초청되고 평시에는 회원 선후배 간의 전수로만 서로 배우고 훈련한다. 전문체조선수를 기대하는 것도 아닌데 부모들은 열성적으로 자녀를 뒷바라지한다. 평소에는 장비 점검, 청소, 간식 준비에 손을 보태고 행사 때면 함께 무대복을 만들며 의료인은 의료 처치를, 엔지니어는 장비 관리를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한다.

학교나 성적과 상관없는 이런 활동을 왜 할까. 학생들의 대답은 하고 싶어서, 재미있어서, 멋져 보여서 등이었다. 부모들은 '아이가 원하니까'에 더하여 자녀 건강에 도움이 되니까, 공동체에서 책임과 신뢰를 배울 테니까, 부모끼리 친분을 쌓고 아이 문제를 상의할 수 있어서 등을 거론했다.

북유럽 교육에는 학교 정규 수업 못지않게 가정과 자유 단체, 사회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덴마크는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적극 인정하는 대표적인 나라인데, 법률상 의무교육의 개념을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닌 '교육을 받는 것'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덴마크의 한 여의사는 청소년 시절 체조 단원으로 유럽 각국 대회에 출전한 경험을 소중히 여겼고, 축구선수 호날두 사진으로 방을 도배한 코펜하겐 의과대학의 여학생은 고교 때까지 한 청소년 축구클럽의 그 나름 스타 공격수였다. 스톡홀름에서 만난 여성 엔지니어는 초중고 동안 치어리더 단체 트위스터(Twisters)의 일원으로 국제경연대회에 수차례 참가했다. 어린 나이의 취미 활동과 여행, 부모와의 친밀한 관계는 학교 수업 못지않게 일반적이고 중요한 이곳의 학습 과정이다.

인생에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경험들이 있고 특히 어린 나이에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그리고 학교가 이 모두를 책임질 수는 없다. 우리가 교육의 이상과 현실을 고민하는 동안, 북유럽은 다양하고 폭넓은 교육을 제도적 관습적 문화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덕분에 여기 학생들은, 핀란드를 제외하면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에서 겨우 중간치에 불과한데 대학이나 상급직업학교에서 전공과 실무 역량에 집중하며 국제성인역량평가(PIAAC), 학문 역량, 노동생산성 등에서 한국을 앞질러 선두그룹에 나선다.

여전히 해가 중천이던 스웨덴의 여름밤. 90명 대가족의 바비큐 테이블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날 파티에서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 국영수 문제를 푸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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