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호(가명·39) 씨가 딸랑이를 흔들자 아들 성규(1) 군이 배시시 웃었다. 태어난 지 두 달이 갓 넘은 아이의 티 없이 맑은 미소에도 백 씨는 밝게 웃지 못했다. 심한 당뇨병에 시달리는 백 씨가 일을 하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는데다, 미등록 이주민인 베트남 출신의 아내와 혼인신고가 되지 않아 아내와 성규 군 모두 복지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의료복지사각지대에 머무는 아내와 아들
아내 투안(가명·29) 씨는 2년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외롭게 살아 온 백 씨에게 삶은 녹록치 않았다. 사업 실패에 당뇨병까지 겹쳤고, 삶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그랬던 백 씨도 투안 씨를 만나며 삶의 기쁨을 찾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과 함께 부부에게 넘기 어려운 난관이 닥쳤다. 미등록외국인인 아내와는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고, 아들 성규 군의 출생신고도 불가능했다.
아내와 아이는 의료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내는 출산 후 3일 만에 서둘러 퇴원했고, 성규 군은 아직 1차 예방접종도 하지 못했다. 출생신고가 됐다면 건강보험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다행히 성규 군은 아직 이렇다할 병치레가 없었지만 미안함과 불안함이 크다.
백 씨는 "가족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아내는 내가 한국인인데 왜 아들이 당장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없는 지 답답해하며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백 씨와 투안 씨가 혼인신고만 정상적으로 하면 되지만 해결해야할 문제가 적지 ㅇ낳다. 우선 투안 씨가 베트남으로 가서 성규 군의 출생신고를 해야하고, 미혼이었음을 증명하는 서류 등도 발급받아야 한다. 모자가 베트남을 오가는 비용과 현지 법률서비스 비용 등을 포함하면 500만원 정도가 든다. 백 씨 부부에겐 엄두도 내지 못할 비용이다.
◆심한 당뇨병에 일자리 막막…음식점 운영 실패로 거액 빚져
백 씨는 3년 전부터 앓고 있는 당뇨병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혈당 수치는 100㎎/㎗ 미만이 정상이지만 백 씨는 300㎎/㎗ 을 넘나든다.
당뇨병이 심해지기 전까지 백 씨는 10년 이상 정육점에서 고기를 손질하는 정형사로 일했다. 하지만 당뇨로 체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다른 직업을 찾아야했다. 일용직으로 근근이 버텼지만 당뇨병으로 자주 저혈당 쇼크에 빠지면서 그마저 쉽지 않았다.
백 씨는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며 어지럽고 손발이 떨리는 일이 잦다. 지난해에는 빌라 공사 현장에서 어지럼증 때문에 4층에서 2층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면서 "다행히 여기저기 긁히고 며칠 쉬면서 회복했지만 생계를 꾸리긴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만성 당뇨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백 씨는 "약제비나 혈당측정키트 구입 등에 매달 15만원 정도가 든다. 약값을 아끼려고 알약을 쪼개먹기도 하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병원비를 냈지만 결국 다 갚아야 할 돈"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과거에 음식점을 운영하다가 진 1억원의 빚도 그를 내리 누른다. 백 씨는 "법원에서 개인회생 결정을 받아보려해도 일정 금액을 갚아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일단 700만원 정도라도 갚아보려 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백 씨는 현재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한 상태다. 그러나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법적으로 1인 가구여서 세 식구의 생계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백 씨는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잘 돌보지 못해 속상하고 답답하다. 법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성실하게 재기해 가족들을 책임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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