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당신의 분노조절 장애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누군가를 미움을 넘어 경멸해 본 적 있는가. 사람에 대한 분노가 그것을 용납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로 번진 적 있는가. 그것이 돌고 돌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자신에 대한 분노가 된 적은. 하필 그 때, 당신이 내 앞을 지나가다 기폭제가 된 것일지도, 물벼락을 맞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타인에 대한 분노가 나를 갉아먹을 때가 있다. 상대방은 기억도 못하는 상처를 혼자 입고 아파할 때가 있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지난 다음에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사람의 감정은 그렇게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좌절이나 분노처럼 보기 싫은 감정일수록, 방어적으로 행동하거나 상대를 외면하기 쉽다. 내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비난의 화살을 바깥으로 돌릴 때도 있다. 내 안에 머물게 하다가는 내 속이 다 타버릴것 같거나, 자신의 무능한 모습을 직면하기 두렵기 때문이다.

분노조절 장애인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사자일 수도 있고, 공작일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다. 그를 대하는 사람들은 똥이 무서워 피하는 것일 수도 있고, 더러워 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화를 참을 필요가 없어서, 분노조절 불능의 상태에 이른 사람들도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화나는 일도 있고, 억울한 일도 겪게 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상급자나 갑의 위치에 있으면, 충동을 억제해야 하는 의지나 필요성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반면 하급자나 을의 입장은 화를 참을 수 있어서 참는 것이 아니라 참아야 하기에 참는 것이다.

반면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또한 분노조절 장애가 아닐까. 사람이 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처럼 화를 내야할 때와 표출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오히려 엉뚱한 시점에 누적된 화가 폭발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부인해오던 사람이 스스로 감정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이는 전통적으로 화를 참고 타인을 용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지나친 분노억제 또한 스스로를 병들게 만든다.

분노조절 장애는 의학적인 정의일 뿐만 아니라 비유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사회에 대한 절망 때문일까. 분노에 대한 임계치는 점점 낮아지고 있는 듯하다. 감정은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그것을 흘려보내는 과정도 중요하다. 괜찮은 척, 아닌 척했던 감정을 완전히 가리지는 못한다. 어쩌면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하다는 자기고백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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