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16일(목)이 말복, 다음주 23일(목)이 처서다. 이젠 더위도 한풀 꺾일 때가 됐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다. 한달 가량 계속됐던 폭염이었지만 며칠 전에도 스콜(열대성 강우)처럼 간간이 단비가 내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내가 즐겨듣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병약했던 쇼팽은 요양을 위해 연인과 함께 마요르카 섬으로 장기여행을 나선다. 쇼팽의 나이 서른 살 무렵의 이야기다. 하지만 마요르카 섬에서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 만큼 탐탁치 못했다. 지중해성 기후로 비가 계속 내리는 날들이 이어졌고, 폐결핵 증상을 보였던 쇼팽을 받아주는 곳이 없어 거처도 가까스로 구해야만 했다. 쇼팽은 자신이 머물던 집을 '바람의 집'이라고 불렀다는 걸 보면, 바람마저도 거셌던 모양이다.
'피아노의 시인'이라고도 불렸던 '쇼팽의 24개 전주곡(24 Prerules, Op.28)은 이렇게 그가 요양하고 있는 동안 작곡됐다. 이 작품은 간결하고, 각각 서로 다른 주제의 선율로 이뤄져 있어 '오선지의 일기'라고도 불린다.
'빗방울 전주곡'은 이 중 15번째 곡이다. 거센 비가 몰아치던 날, 식료품을 구하러 간 연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쇼팽이 외로이 홀로 피아노에 앉아서 불안한 맘으로 빗소리를 들으며 이 곡을 써내려 갔다고 한다.
첫 소절부터 뚝뚝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려오고, 중간 부분으로 넘어가면 먹구름이 점차 짙어져 폭풍우처럼 묘사된 부분이 있다. 조용히 음미하면, 무겁고 깊게 느껴지는 어두움에 죽음의 공포와 절망감까지도 함께 묻어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그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소설가)가 무사히 집에 도착했을 때, 쇼팽은 눈물 범벅이 되어 빗방울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상드의 저서에는 당시 쇼팽이 "물방울들이 가슴을 내리친다"며 환각에 괴로워했다고 적고 있다. 그녀는 그날의 비를 '쇼팽의 눈물'이라고 남겼다. 당시의 악보를 보면, 각혈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병세의 심각함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쇼팽은 그 이후 얼마 가지 못하고, 향후 39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감미롭고도 섬세한 그의 작품은 사후 150년을 넘기고도 여전히 변함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자주 듣는 빗방울 전주곡이지만, 매일 다른 하루처럼 매번 다른 느낌으로 들리는 것이 신기하다.
대프리카(더운 대구)의 한 여름에 가끔 듣고 있는 빗소리를, 먼 옛날 지구 반대편의 쇼팽도 듣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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