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진정한 관객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기획팀장

강두용 대구콘서트하우스 기획팀장
강두용 대구콘서트하우스 기획팀장

10여년전 미국 '위싱텅 포스트'지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워싱턴 랑팡플라자역에서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에게 거리의 악사처럼 허름한 옷을 입고, 35억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거리에서 연주해 보라고 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스타인 조슈아 벨을 알아본 사람들이 사인해 달라고 마구 덤비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행인들은 그를 알아보기는커녕 그 아름다운 음악을 귀담아듣는 사람조차 없었다. 다들 휴대전화로 통화하느라 정신 없었고, 바삐 출근하느라 걸음을 멈추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역내의 구두닦이만이 그 음악을 알아들었다고 한다. 조슈아 벨은 이날 35억짜리 바이올린으로 45분간 연주하여 150달러를 벌었다.

영국 런던의 워털루역에서도 미모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타스민 리틀이 같은 이벤트를 했다. 45분간 길러리에서 연주하는 동안 다녀간 1000여 명의 행인 가운데 8명만이 발길을 멈추었고, 이날의 연주로 그녀는 14파운드 10실링(2만 5000원 정도)을 벌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이벤트가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교수가 출근길에 청바지와 허름한 남방을 입고 강남역에서 70억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연주를 했다. 이날 5명의 관객만이 그의 연주에 귀를 귀울였고, 그는 연주로 1만 6900원을 벌었다.

이 실험 결과들을 보면 브랜드, 스타성에 영향받고 좌우되는 건 비단 우리나라뿐만은 아닌 것 같다. 클래식 문화의 선진국 미국에서도 꽃미남 조슈아 벨을, 영국에선 타스민 리틀을 몰라보고, 탁월한 그들의 연주를 알아채지 못했다니 말이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악기들로 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스타의 명성을 좇아 티켓을 사고, 공연장을 달려간건 아닌지, 남들이 박수를 보내니까 덩달아 그들의 연주에 열광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그리고 국제적 명성이나 개런티, 과대광고 등에 현혹되어 내 귀를 맡겨버린 것은 아닌지, 티켓이 비쌀수록 좋은 연주, 실력 있는 연주자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진정한 관객은 화려하게 포장되지 않아도 묵묵히 실력을 쌓아온 내실 있는 연주를 알아듣고, 나태해진 스타연주자의 추락한 연주를 꾸짖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이라 생각한다.

음악회의 계절이 다가온다. 진정한 귀를 가진 관객을 만나길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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