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할리데이비슨 타는 박용한 씨 "할리, 네가 있어 내 심장이 뛴다"

박용한 씨
"일탈이 아니라 자유를 탄다"고 말하는 박용한 씨. 박노익 기자 noik@msnet.co.kr

남성들의 로망이자 모터사이클(오토바이)의 대명사 '할리데이비슨'(Harley Davidson, 이하 할리)을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타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만큼 한 번 할리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텅텅텅, 부덩 부덩 부르릉~~'하는 북소리와도 같은 독특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할리의 배기음은 사람의 심장박동수와 비슷해 탔을 때 바이크와 내가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거기다 할리의 엔진으로부터 허벅지로 전해져오는 짜릿한 진동이 더해지면 심장은 더욱 크게 뛴다. 애호가들은 이런 느낌을 맛보기 위해 할리를 탄다.


◆'일탈' 아닌 '자유' 느끼기 위해
퇴근 후 늦은 오후, 중고차 딜러 박용한(46) 씨는 사무실 옆 창고에 고이 모셔두었던 할리의 커버를 벗긴다. 커버를 벗기는 용한 씨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절로 번진다. 시동을 걸자 마치 말발굽 같은 할리의 엔진소리가 하루종일 피곤에 절어 있는 용한 씨의 몸을 흥분시키고 심장을 뛰게 한다. 그리고 '달리고 싶다'는 충동을 일게 한다.

할리족은 집단 라이딩을 할 때는 로드캡틴의 통제에 절대 복종한다.
박용한 씨

잠시 마음의 준비를 끝낸 용한 씨는 이런저런 엠블렘 장식을 꿰매붙인 가죽 재킷과 부츠, 헬멧, 짙은색 선글라스까지 하고는 애마 할리를 이끌고 신천을 지나 팔공산으로 향한다. 특별한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할리만의 고유한 엔진 소리를 들으며 적막한 밤공기를 가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중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즐긴다. "달리는 기쁨을 알기 때문이죠. 이거는 말로 표현이 안되는 것 같아요. 직접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용한 씨는 할리만이 줄 수 있는 자유와 낭만이 스트레스에 찌든 현대인에게 해방구가 된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가 아니라 잡념을 깨끗이 사라지게 할 정도로 내 안의 쌓인 것들을 청소해주거든요. 할리를 타면 다른 생각할 틈이 없어요. 골프나 등산도 좋지만 할리에 비할 바가 아니에요."

용한 씨는 주말에는 할리 동호회 회원들과 경주, 청도 등 대구 근교로 드라이브를 간다. 국도변 경치를 맘껏 감상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는 등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돌아온다. "그렇게 하면 일주일이 그냥 간다"고 했다.
용한 씨는 할리는 위험한 바이크가 아니라고 했다. "할리는 스피드를 즐기기에 적합한 바이크가 아니예요. 강렬한 소리와 진동을 느끼는 쪽으로 제작한 바이크다보니 최고시속이 200km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낮고 푹신한 시트에 눌러 앉은 채 시속 80km 안팎의 속도로 주행하면서 경치를 감상하는 맛으로 탑니다. 상체를 꼿꼿이 세운 라이딩 자세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빨리 달리려고 하면 바람의 거센 저항을 받습니다. 그냥 천천히 즐기면서 탑니다."

그리고 "나를 찾기 위해 달린다"고도 했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자유이지 일탈이 아닙니다. 그 자유란 일상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는 자유이며,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배려가 있는 자유"라고 했다.
용한 씨는 또 더 나은 일상을 위해 할리를 탄다고 했다. "시원하게 뻗은 길을 달리다보면 가슴속의 응어리 한 톨까지 다 사라집니다.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바람을 마주하고 있으면 그동안 묵혀두었던 가슴 속 응어리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립니다. 이때의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 아내 설득이 가장 힘들어

용한 씨는 할리를 타기 전에는 수상스키, 제트스키, 골프 등을 즐겼다.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고민하던 2007년 어느날, 지축을 울리는 듯한 할리의 배기음에 반했다. "마치 마약 같았어요. 할리가 '두두두두둥' 하고 지나가는 걸 보았는데 그날 밤 잠자리에서도 그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거예요. 당구를 처음 배운 사람들은 불을 끄고 누우면 천장이 당구대로 보이는 것처럼 둥근 것은 무엇이든 할리의 바퀴로만 보이는 것예요. 그 강렬한 잔상이 꿈에까지 나타났으니 결국 할리를 타지 않을 수 없었죠."

'아내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고 일을 저질렀다. 처음에는 숨겼다. "처음 몇 달간은 할리를 산 사실을 숨겼습니다. 아내 몰래 사무실 옆 창고에 가져다놓고 몰래 탔죠. '주말에 무슨 일이 그렇게 많냐'고 핀잔을 들으면서도 아내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어요."
3개월만에 털어놨다. 아내는 "'누구 생과부 만들 일 있냐'며 당장 팔아라"고 했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해달라, 안전장구 확실하게 갖추고 짬짬이 타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고 겨우 허락받아냈다.
용한 씨는 말한다. "할리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예요. 까다로운 2종 소형면허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몇천만원을 눈 한번 질끈 감고 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아내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용한 씨는 지금 바이크를 타기까지 일곱 번 할리의 손바뀜이 있었다. 현재 2014년식 스트리트 글라이드(1,600cc)를 탄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최상위 기종인 투어링 모델을 소유하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멋있잖아요."
용한 씨에겐 꿈이 하나 있다. 할리데이비슨 본사가 있는 미국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서 매년 열리는 HOG(Harley-Davidson Owner's Group)축제에 참여하는 것이다. "수십만 전세계 HOG인들과 함께 랠리도 펼쳐보고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어요. 물론 아내를 설득해야 하지만…"

할리족은 집단 라이딩을 할 때는 로드캡틴의 통제에 절대 복종한다.
할리족은 집단 라이딩을 할 때는 로드캡틴의 통제에 절대 복종한다.


◆ "우린, 지킬 건 지킨다"
할리 라이더들은 바이크 구입과 함께 '할리데이비슨 오너스 그룹'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동호회 호그(HOG)에 자동으로 가입된다. HOG는 단순한 모터사이클 동호회라기보다는 할리를 매개로 공통된 라이프 스타일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다. 한국에선 1999년 HOG 코리아챕터가 결성됐고, 호그 대구 챕터코리아는 지난해 1월 결성돼 250여 명의 회원이 있다. 호그 대구 챕터코리아 회장이기도 한 박용한 씨는 호그 회원들 간 유대감이 강하다고 했다. "마치 형제 같아요. 국내에서 투어를 다닐 때 다른 그룹을 만나도 반갑게 손을 흔들거나 목례를 나눕니다. 외국 투어를 나갈 때도 할리를 탄 사람을 보면 서로 다가가 포옹하고 인사하고 한참씩 수다를 떱니다. 이처럼 할리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 같은 것이 흐릅니다. 다른 브랜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정서죠."

할리족은 집단 라이딩을 할 때는 로드캡틴의 통제에 절대 복종한다.

이들은 매년 모터사이클 안전문화캠페인을 벌이며 안전운전문화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그리고 잠깐 동안 '길 위의 인생'에서 누리는 소중한 자유를 느끼기 위해 그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지킨다. 용한 씨는 "요란한 복장의 옷을 입고 즐기는 사람도 있고 사이렌에다 경광등을 단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할리족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공공의 선을 지키며 라이딩을 즐깁니다. 할리 문화는 결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은 집단 라이딩에서 누구보다 교통법규는 물론, 질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집단 라이딩을 할 때는 로드캡틴의 통제에 절대 복종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자유'는 통제되고 절제된 자유이기 때문이다. 과속·추월·경적 금지, 차간거리·차로 유지 등등 지켜야 할 수칙을 꼭 지킨다. 박 회장은 "이것이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라이더의 바른 정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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