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구에 사는 조모(41) 씨는 지난 5월 정부와 대진침대가 '라돈 침대' 를 전량 회수한다고 발표한 지 4개월이 지난 이달 초에야 집에 있던 침대를 반품했다.
조 씨는 그동안 수십차례나 대진침대 본사와 원자력안전위원회, 대구시 등에 회수 일정을 문의했지만, "밀린 신청이 많다, 기다려 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는 대형 비닐로 매트리스를 꽁꽁 싸맨 뒤 베란다에 두고 하루빨리 악몽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조 씨는 "오랜 기다림 끝에 침대는 반품했지만, 이미 수년 간 사용한 터라 부작용이 걱정스럽다"고 한숨을 쉬었다.
'라돈 침대' 사태가 발생한 지 4개월이 흘렀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라돈 검출로 파장을 일으켰던 대진침대 리콜 사태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까사미아 등 다른 제품에서도 라돈이 검출되는 등 생활 환경 속 라돈 검출 논란이 숙지지 않고 있어서다.

◆첫 검출 후 4개월, '생활 방사능' 불안 커지기만
지난 5월 대진침대 등 국내 업체가 생산한 음이온 침대 4종에서 방사성물질 라돈이 발견된 것으로 드러났다. 음이온 효과를 내고자 희토류(모자나이트, 토르말린 등)를 첨가했는데, 이 물질들이 자연붕괴 과정에서 라돈을 배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음이온 제품은 방사능 물질이 함유돼 있어 수 년간 착용하면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침대에서 검출된 라돈은 실내 공기질이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던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이어 대진침대의 매트리스 7종을 방사선을 내는 결함제품으로 확인하고 수거명령 등을 내렸다.
당시 리콜 대상이 된 침대 매트리스는 모두 한국표준협회가 인증한 '국내품질인증(K)'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인증 과정의 허술함을 드러냈다.
숙지는 듯했던 라돈 논란은 최근 다시 불 붙었다. 지난달 28일 한 소비자가 간이 측정기로 직접 침대의 라돈 검출량을 측정해 본 결과, 대진침대에 이어 까사미아 침구류에도 라돈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된 것.
'라돈침대' 사태가 처음 불거진 후 정부가 국내 49개 침대 매트리스 제조·판매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현장조사에서도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까사미아는 2010년 이후 출시한 매트리스와 깔개, 베개 등 라돈 검출량이 기준치를 초과한 제품 1만2천300여 개를 즉각 회수하는 한편, 다른 제품에 대한 안전성 검사 결과도 신속히 공개하겠다고 밝혔지만 공포감은 더욱 확산되는 형국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 "정부 차원 대책 내놔야"
'라돈 침대' 사태 이후 4개월여간 대구시와 각 구·군, 피해자 모임 등에는 문의와 원성이 빗발쳤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개설된 '대진침대 라돈 사건 집단 소송' 카페에는 18일 가입자 2천180여 명, 게시물 1만1천800여 건이 등록됐다. 대구시와 각 구·군에도 라돈침대의 회수 절차를 묻거나 회수를 요청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소비자들은 문제 제품 회수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대구 수성구에 산다는 한 누리꾼은 '5월 9일 수거신청을 한 뒤 다음날 회수해가겠다는 문자를 받았으나 이후 우체국이 수거사업자에서 제외됐고 2개월 넘게 연락도 못 받았다. 더블킹 사이즈라 엘리베이터에도 들어가지 않아 치우기도 어려워 너무 괴롭다'고 호소했다.
커져가는 불안감에 비해 피해 구제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피해 보상을 받을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라돈 제품 사용이 건강에 해를 끼쳤다는 인과 관계를 증명하기 쉽잖기 때문이다. 또한 생활주변방사선법 상에 가공제품에 대한 피해보상 관련 규정이 미비해 법 개정 외에는 특별한 해법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구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전국 생활방사능 측정소가 실험한 결과를 모아 이르면 이달 중으로 방사능 의심 제품들에 대한 공개시험을 정부에 의뢰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적합한 제품을 만든 제조사보다는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제조사가 사전에 안전성 검사를 엄격히 진행했거나, 사태 발발 이후라도 정부와 각 제조사가 자발적으로 검사를 벌였다면 공포감의 확산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양순남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국내 법은 가공제품에 대한 건강·의료 규제와 정보 안내를 공급자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어 소비자의 정보접근성이 심각하게 낮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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