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 한 제 하러 가자"던 홍보 문구가 제법 쓰이던 때가 있었다. 울진에 용하다는 한의사가 개업해 입소문이 대구까지 났나보다 하고 따라나선 길이 '울진금강소나무숲길'이던 때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녀온 사람들은 저마다 온 몸의 숨구멍이 열리는 듯했다고 전했다. 교과서에 아무리 써놔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포유류 피부 호흡의 주인공으로 거듭난 이들은 제각기 자신의 몸이 열리던 순간을 간증했다.
'그걸 호스피스 병동에 배달해주고 싶다'던 박애주의형 경험자에서부터 '그걸 팔 수 있다면 떼돈을 벌 텐데 가져올 방법이 없다'던 4차 산업 시도형 경험자까지 '보약 한 제'라는 데 이견은 없었다.
뜨거웠던 2018년의 여름을 마무리하며 잘 이겨낸 스스로에게 '보약 한 제' 선물을 내린 이들과 함께 '울진금강소나무숲길' 중에서도 가장 부담이 없다는 '가족탐방로'를 걸었다. 과연 홍보 문구는 과장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관절염만 없다면 부작용 없을 '보약'이었다.

◆먹기 힘들었던 보약
'울진금강소나무숲길' 탐방로의 데뷔전은 2010년 여름이었다. 순서대로 번호가 붙은 것이겠지만, 제 1구간이 공개됐다. 덕구온천과 그리 멀지 않은 울진군 북면 두천1리에서 시작해 소광2리에서 맺는 구간이었다. 편도 13.5km, 걷는 데만 7시간이었다. 출발지로 자가용을 가지러 가고, 두천리까지 온 김에 덕구온천까지 들르면 꼬박 10시간이 걸렸다.
잇따라 선보인 구간들도 큰마음 먹지 않고선 참여하기 까다로웠다. 말이 대구경북이지 대구에서 울진까지 보약 먹으러 가는 길은 수월하지 않았다. 물리적 거리는 서울보다 가까웠으나 심리적 거리는 그보다 멀었다.
대구에서 간다면 중앙고속도로로 영주까지 간 뒤 봉화를 횡단해야 했다. 불영계곡을 '강제 감상'하고서야 닿을 수 있었다. 개인 취향에 따라 대구포항고속도로로 포항까지 간 뒤 동해안 국도를 선택하기도 했다. 바닷길 감상 루트인 7번 국도를 타고 울진까지 가서 다시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당일치기 코스 개설
그러다 2016년 '파인토피아로'라는 새로운 36번 국도가 일부 개통됐다. 울진 삼근교차로까지 말끔하게 길이 열렸다. 당일치기 탐방의 가능성이 슬슬 열리는가 싶더니 드디어 올해 5월, 당일치기 탐방로가 나왔다. '가족탐방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전 10시 출발인데다 3시간이면 끝나는 5.3km 코스다.
'울진금강소나무숲길'에는 6개 구간이 있다. 이중 2개 구간(2구간, 5구간)은 단체 전용이다. 튼튼한 허벅지들이 주로 도전하는 1구간(편도 13.5㎞)과 3구간(왕복 16.3km)은 1박 2일을 각오해야 한다. 3-1구간(9km)이 그나마 짧은 구간이었다.
가족탐방로 코스는 '산림수련관 → 500년송 → 못난이송 → 미인송 → 제2탐방로 → 산림수련관'이다. '대왕소나무'를 못 본다는 점이 아쉽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대상은 '대왕소나무'다. 대왕소나무를 보려면 4구간(10.5km)을 신청해야 한다. 5구간에서도 볼 수 있지만 난도가 높은데다 15km 장거리 코스다. 단체에만 개방된다.

◆가족탐방로 맛보기
'가족탐방로'는 이름에 걸맞게 2인 이상 가족 단위로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 단위'라는 말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핏줄이 섞여야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결코 요구하지 않는다. 마음 맞는 사람 2명 이상이면 충분하다.
가볍디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다. 그래서 등산화, 등산복을 추천하지만 강제하진 않는다. 다만 슬리퍼는 곤란하다. 탐방은 다소 굵은 빗줄기에도 아랑곳 않는다. 오히려 피톤치드 향을 더 강하게 자극하기에 운치 있다.
탐방로 중 일부는 1968년 이후 처음 열렸다. 갖가지 나무, 풀, 야생화를 보며 놀랄 수도 있지만 이름을 몰라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그래서 해설사의 설명에 귀 기울이면 한층 재미있는 탐방이 된다.
금강소나무는 '남귤북지'의 전형이다. 같은 소나무 종자라 해도 경북, 강원 동해안 지역에서 자라야 곧고 높이 자라는 금강소나무가 된다. 다음은 해설사의 공식 설명이다.
"금강소나무는 백두대간을 따라 북한의 금강산 등지를 비롯해 울진, 봉화, 강릉, 삼척 등에서 자생하는 소나무를 지칭한다. 줄기가 곧고 가지가 중간중간 뻗어나가지 않아 건축용으로 제격이었다. 궁궐, 사찰 등의 건축 재료로 사용됐다. 나이테가 일반 소나무보다 3배나 촘촘하다. 뒤틀림이 적고 강도도 높다. 조선 시대에는 황장목, 일제강점기엔 적송, 광복 후엔 춘양목 등으로 불렸다."
20m 이상의 장신 군락이다. 얼마나 멋지게 뻗어들 있던지 죄다 200년씩은 된 줄 알았다. 하지만 평균 수령은 150년 정도였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50년 정도 된 나무도 많았다. 왜 50년씩이나 내버려뒀나 했더니 1968년 있었던 울진삼척무장공비 침투와 관련이 있었다. 무장공비 침투 이전에는 화전민들이 살았지만 정부는 이 근방의 집을 모두 없앴고 민간인의 출입을 막았다.

◆자유로운 생물들의 어울림
인위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덕분인지 정부의, 회사의, 상사의 통제를 받지 않았던 소나무들은 자기들끼리 자유롭게 자랐다. 두 나무가 하나로 합쳐져 난데없이 '부부금슬'이나 '화합'에 비유되는 연리목이라든지, '공생목'이라 이름 붙은 나무가 그랬다.
공생목은 쓰러지려는 소나무를 참나무가 받쳐주고 있었다. 소나무가 참나무보다 크고 두꺼웠다. 두 나무의 관계가 아름답게 보일지 참나무의 일방적 희생으로 보일지는 보는 이의 심리 상태에 달렸다. 하긴, 새들이 통상적으로 나눈 대화고 목청껏 부른 외침을 두고 노래한다며, 운다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암수 서로 정답다고 묘사한 사람도 있으니. 현상은 하나인데 관점은 여러 가지다.

보약 좋은 건 동물들도 안다. 멧돼지, 산양, 고라니가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산다. 혹여 마주쳐도 각자 가는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는 게 가장 좋다. 공간을 공유하는 존재에 대한 존중이다. 다만 새끼 멧돼지가 나타나면 경계해야 한다. 어미 멧돼지와 한판 뜨거나 줄행랑을 칠 각오가 돼 있더라도 함께 탐방하는 이들을 위해 참아야 한다.
산책 같은 탐방을 마치고 먹는 점심 식사는 아침에 체했던 이도 허겁지겁 먹을 정도로 기막힌 맛이다. 주민들이 공수해온 밥과 찬이 매우 정갈하다. 콩나물무침, 가지무침, 매실장아찌, 이름 모를 산나물 등등이 찬으로 실려 온다. 고기반찬이 없으니 안 먹겠다고 할 수도 있으나 6천원 내고 반드시 먹는 게 좋다. 3시간 탐방 뒤 먹는 끼니 역시 '보약'이다. 아침식사는 민박을 이용할 경우에만, 뷔페식은 아니나 호텔 조식처럼 먹을 수 있다. 역시나 6천원이다.
'가족탐방로'는 11월 30일까지 매주 금, 토, 일 운영한다. 이달 말까지는 하계 특별운영으로 매일 진행된다. 사전 전화예약은 필수다. 문의=054)781-7118.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