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국회 특활비 폐지는 특권 철폐의 첫걸음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수사'정보와 거리 먼 정부기관도
특활비 편성해 쌈짓돈처럼 사용
이번에 국회 스스로 족쇄 버리고
'감시 제대로 하라'는 게 국민 바람

모처럼 정치권, 국회를 칭찬할 일이 생겼다. 특수활동비, 이른바 특활비와 관련해서다. 꼼수 논란 등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국회는 특활비를 거의 없애기로 결정했다. 국익을 위한 의장단 활동 경비 5억원 정도를 유보한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야박한 말이지만 기왕 결단하는 마당에 모두 폐지로 가닥을 잡았다면 훨씬 좋았을 터이다. 액수는 문제가 아니다.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특활비는 '수사·정보 및 그에 준하는 활동'에 소요되는 예산이다. 영수증 첨부를 요하지 않는 것도 비밀 유지의 필요성 때문이다. 국회는 그런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용처를 밝히지 못하는 돈을 특활비라는 이름으로 사용하는 특권을 즐겼을 뿐이다. 어쨌든 특활비 '거의 폐지'만으로도 국회는 '고무·찬양'의 대상이다. 마지못해 한 것이라도 문희상 국회의장의 말처럼 '국민 앞에 납작 엎드린' 자세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찬사를 넘어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국회의 움직임은 특활비라는 이름의 특권을 없애는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사실 국회 특활비 예산은 별것(?) 아니다. 전체 예산 대비 그렇다는 말이다. 80억원대였던 국회 특활비는 올해 60억원대로 줄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8년 예산 가운데 특활비는 7천800여억원에 이른다. 공정위, 과기부, 국무조정실, 국민권익위, 민주평통 등 수사정보와 거리가 먼 기관들도 특활비를 편성했다. 그냥 현금으로 쌈짓돈처럼 쓰는 돈을 특활비라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특활비에 대한 통제가 부실했던 이유는 명백하다. 국회 스스로 큰소리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투명해진 국회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최근의 움직임을 보면 드러난다. 국회는 내년 예산에서 정부 기관들이 특활비 필요성을 소명하지 못하면 모두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은 감사원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특활비를 편성한 기관에 대해 감사원이 매년 특활비의 적정한 집행 여부를 감사하고,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명시했다. 일보 진전된 방안이다. 정보, 수사 활동과 관련 없는 특활비는 없애야 하고 관련 예산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문제는 특활비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보기관의 경우다.
국정원 등 정보기관 특활비는 감사원 감사로 통제하기 어렵다. 지난 정권에서 국정원은 특활비 일부를 청와대에 상납한 것으로 밝혀졌다. 형사 처벌 여부와는 별개로 용도에서 벗어난 특활비 사용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른 기관은 감사원 감사라도 받지만 국정원 예산은 규정상 감사원이 손댈 수 없다. 해당 상임위인 국회 정보위에도 단순 합산 내역만 보고된다. 세부 내역 없는 한 장짜리 보고서로 때우는데 국민의 눈길을 의식하고 돈을 쓸 리 만무하다. 과거 보도를 보면 일부 국회의원들도 국정원 특활비를 받았다고 한다. 미국 대학에 기부하고 안가를 수리하는 데 돈을 쓴 국정원장도 있다. 퇴임하는 국정원장이 뭉칫돈을 들고 나선다는 보도도 있었다. 특활비 오용이 비단 직전 정권에서만 있었겠는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돈이야말로 권력 그 자체이다. 고삐 풀린 돈을 써 대는 기관이 특권 계급처럼 군림할 수 있는 게 세상 이치다. 미국처럼 정보기관도 비밀 유지를 조건으로 예산 집행 내역을 국회 정보위에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관련 법을 개정하는 것이 국회의 할 일이다.

시민단체나 언론이 집요하게 국회 특활비 폐지를 추진한 것은 국회만 문제라서가 아니다. 국회 스스로 족쇄를 벗어던지고 국민의 돈을 감시하는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해 달라는 바람 때문이다. 그런 일을 잘하는 국회라면 비난받을 일이 있겠는가. 앞으로도 국회를 칭찬할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약력: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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