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알코올의존증 부모에게서 방임, 학대 받은 박연주 양

부모 방임에 인지발달 늦어져…그래도 낙천적이고 성실
심각한 부정교합…음식물 섭취 힘들고 발음도 어렵지만 치료비 없어

박연주(19) 양은 알코올의존증과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후 10년 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방치됐다. 현재도 부정교합과 치아 손상 등으로 힘들어하고 있지만 1천만원 정도가 예상되는 비용 탓에 치료를 미루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박연주(19) 양은 알코올의존증과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후 10년 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방치됐다. 현재도 부정교합과 치아 손상 등으로 힘들어하고 있지만 1천만원 정도가 예상되는 비용 탓에 치료를 미루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앳된 얼굴의 박연주(가명·19) 양이 보육원 사무실 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수줍게 인사를 건네더니 까르르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밝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던 박 양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묻자 말을 잃고 고개를 숙였다. 갓난아기 때부터 10년 이상 학대와 방임 속에서 버텨냈던 기억 때문이다.

◆심각했던 부모의 방임, 열 두살이 되도록 의사소통 안돼

어린 시절, 박 양은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 대신 학대와 방임 아래 방치됐다. 어머니는 우울증과 알코올의존증이 심했고,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아버지는 타지를 떠돌았다.

늘 술에 취해있던 어머니는 박 양에게 관심이 없었다. 가뭄에 콩 나듯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이면 집안은 부부싸움으로 소란이 벌어졌다. 박 양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됐지만 부모는 계속 입학을 미뤘고, 누구 한명 박 양을 돕지 못했다.

7년 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박 양도 그 시절에 대해선 입을 꾹 다문다. 보육교사들은 박 양이 미술심리치료에서 남긴 그림으로 대략이나마 과거를 유추했다. 7년 전, 박 양이 심리치료 차 미술학원에서 처음 그려온 그림은 충격적이었다. 온통 검은 바탕 위에 박 양이 웅크린 채 울고 있고 발가벗은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어머니가 숨지면서 박 양은 뒤늦게 사회복지서비스의 도움으로 보육시설로 들어왔다. 아버지가 살아있었지만 제대로 된 직업이 없고 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탓이었다.

방임 속에서 성장한 박 양은 인지발달이 심각하게 늦은 상태였다. 초등학교 5학년 나이였지만 말을 거의 못해 의사소통 자체가 극도로 어려웠다.

박 양의 생활지도교사는 "전문적인 진단을 하려고 시험지를 풀어보라고 주면 모른다는 말도 못한 채 웃을 정도였다. 그림으로 검사를 하려 해도 동물의 머리와 꼬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이어서 결국 포기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심각한 부정교합…치료에 거액 들어 엄두못내

박 양에게 가장 시급했던 건 언어와 사회화 교육이었다. 그러나 장애진단이나 특수교육을 극도로 거부한 아버지 탓에 속절없이 시간만 흘렀다. 결국 초등학교 5학년 나이이지만 1학년 학급에서 3년 이상 일반 교육을 받다가 4학년이 되면서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 다니는 조건으로 아버지의 승낙을 받았다.

박 양은 지적장애 2급 진단을 받고 수년 째 언어치료를 받고 있지만 시기를 놓친 탓에 극적인 개선은 어려운 상황이다. 여전히 6, 7세 수준의 짧고 단순한 문장을 쓰고 조음장애가 있어 'ㅅ'이나 'ㄹ' 등 특정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박 양을 더욱 괴롭히는 건 치아 문제다. 박 양은 아랫턱이 돌출한 부정교합이 심한데다 왼쪽 송곳니가 났어야하는 자리에 어금니가 자리잡아 치아 발달을 막는 등 치열에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윗턱과 아랫턱이 제대로 맞지 않는 부정교합 때문에 음식물 씹길 어려워하고 딱딱한 음식은 거의 먹지 못한다. 부정교합은 발음에도 지장을 주는 데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떨어뜨린다.

부정교합과 치열 교정을 하려면 적어도 3년 이상 교정치료가 필요하고, 비용도 1천만원 정도로 예상된다. 비교적 소액인 후원금이나 장애 수당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다행히 박 양은 천성이 낙천적이고, 사람에 대한 정도 많다. 후원자나 봉사자가 오는 소식이 들리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기다리고 손을 잡으며 땀이 나도 놓지 않는다.

매사에 성실하고 적극적인 점도 장점이다. 학교에서도 교사의 지시에 잘 따라 칭찬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천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던 박 양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인터뷰 끝나면 빨리 학원에 가서 공부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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