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본_[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천(千)의 손

천(千)의 손 / 우옥자

장갑만 파는 가게가 있다면 저마다 다른 설명서가 붙어있을까

뒤처리가 버거워질 땐 빨간 고무장갑을 낀다 기름 때 비린내 그의 타액 까지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쿨한 이별이라고 가끔 빼내기 어렵고 잘 찢긴다는 걸 주의하라고,

사각의 갑에 천 개의 손을 상비한 보살의 손, 크리넥스 뽑아 쓰듯 톡! 하고 비닐 손을 꺼내 나물을 조물거리다 홀랑 뒤집어 버린다 손가락 끝에 코팅된 눈이 반짝! 장미를 꺾을 땐 바닥이 단풍든 목장갑을, 달아오른 손을 잡을 땐 누군가는 가죽장갑을 추천한다

손뜨개 벙어리장갑이 눈덩이를 굴린다 아기를 안아 올린 산파의 피 묻은 장갑, 죽음을 닦는 장의사의 장갑, 추운 장날 마디 잘린 장갑을 끼고 지폐를 세던 장꾼들, 장갑만 끼면 알통과 근육이 솟는 공사판 남정네들, 삶아 빨아 걸어놓은 푸줏간의 목장갑들…그들은 모두 손의 전신

가장 오래된 戰士는

저기 바닥에 굳은 살 박히고 물때 낀,

슬픔조차 맛깔스런

맨손이라는 장갑을 낀 어머니 손

뜨거운 것 번쩍 들었다 귓불에 대고 호 불던

마지막까지도 벗지 못한 저승꽃 흐드러진 저 장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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