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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 추억의 TV] <3> 한국 사람 드라마 애호 유전자 만들어 준 '전설의고향'과 '여로'

전설의 고향 타이틀. KBS
전설의 고향 타이틀. KBS

<3> 한국 사람 드라마 애호 유전자 만들어 준 '전설의고향'과 '여로'

▶꼬맹이라고 TV 만화만 본 것은 아닙니다. 드라마와 쇼의 맛도 TV를 통해 알았습니다. 요즘이야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전 연령, 7세 이상, 12세 이상, 15세 이상, 19세 이상 시청가 등으로 방송프로그램 등급제가 시행(2001년부터)되고 있지만, 그땐 그런 게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특히 드라마는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의 세계는 물론, 몰랐던 세상의 다양한 문화를 알려준 창구였습니다.

여름의 막바지에 생각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납량특집'이라는 수식을 국내에 퍼뜨린 원조격 드라마 '전설의 고향'입니다. 1977년 KBS에서 첫 방영됐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의 무서운 전설, 설화 등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꾸민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교육 효과도 꽤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말미에 성우 김용식 아저씨가 이 드라마 내용이 실은 '어느 지역에서 내려오는 어떤 전설'이라고 가르쳐주셨거든요. TV가 마냥 바보상자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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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전설의고향'. KBS

저는 태어나서 귀신을 본 적은 없었기에, 귀신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쳐다볼 순 없었습니다. 제 두 눈과 타협을 했습니다. 절충안이라고 찾은 게 눈을 뜨지도 감지도 않은 상태, 바로 '실눈'이었습니다. 식구들 모두 모여 전설의 고향을 볼 때 혼자서 실눈으로 본 기억이 납니다.

한국의 귀신들 가운데 전설의 고향을 통해 스타가 된 귀신이 있습니다. 바로 '구미호'(九尾狐)입니다. 꼬리가 아홉개 달린 여우라니, 역시 제가 태어나서 시골 뒷산에서도, 1970년 5월 5일 개장한 달성공원 동물원에서도 본 적 없는 여우입니다.

구미호는 인기를 얻을만한 캐릭터였습니다. 무섭기만 한 게 아니라, 미모의 여배우들에게 잇따라 배역이 주어졌으니까요. 매년 전설의 고향에서 구미호 편을 틀어줄 때마다, 올해는 누가 구미호를 맡는지가 화두가 됐습니다. 첫 구미호 한혜숙에 이어 장미희, 김미숙, 선우은숙, 박상아, 임경옥, 송윤아, 노현희, 김지영 등이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구미호를 연기했습니다. 가장 마지막인 2008년 전설의 고향의 구미호는 박민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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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전설의고향'에 초기에 등장한 구미호. KBS
전설의고향에서 1대 구미호를 연기한 배우 한혜숙의 1970~80년대 모습. 네이버영화
전설의고향에서 1대 구미호를 연기한 배우 한혜숙의 1970~80년대 모습. 네이버영화
전설의 고향 마지막 구미호 박민영. KBS
전설의 고향 마지막 구미호 박민영. KBS
전설의 고향 마지막 구미호 박민영. KBS
전설의 고향 마지막 구미호 박민영. KBS

이게 전설의 고향이 아닌 다른 구미호 소재 드라마에서도 이어졌습니다. KBS2 구미호 외전(2004)에선 김태희가, KBS 구미호 여우누이뎐(2010)에선 한은정이, 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에선 신민아가 구미호를 맡았습니다. 모두 미모의 여배우들이죠.

방영이 거듭 중단된 전설의 고향은 2018년 여름에도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요즘은 TV에서 납량특집 드라마를 거의 편성하지 않습니다. 안방에서 '실눈' 뜨며 보던 그 매력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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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구미호 외전'의 주인공 김태희.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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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홍보 이미지. 신민아와 이승기. SBS

▶당시 드라마가 TV 보급률을 높였다고들 합니다. 경제가 급히 발전해 주머니 사정도 좀 나아지면서 어른들은 즐거운 저녁시간을 책임져 줄 TV를 잇따라 집 안에 들여다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영향을 준 드라마로 '녹슬은 단검'(1967) '아다다'(1972) '꽃피는 팔도강산'(1974) 등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시대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영구 역으로 장욱제, 분이 역으로 태현실이 출연한 드라마 '여로'(197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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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여로'. 매일신문DB

최고 시청률 70%라는 믿기지 않는 대기록을 쓴 드라마입니다. 물론 시청률 집계가 지금보단 체계적이지 않을 때 나온 상징적 숫자이긴 하지만, 이후 태조왕건(60.4%, 2001), 첫사랑(65.8%, 1996), 사랑이 뭐길래(64.9%, 1992), 모래시계(64.5%, 1995) 등이 쓴 최고시청률 기록 모두 60%대에 그쳤습니다. 채널은 많아졌고, TV는 예전만큼 보지 않는 요즘, 드라마가 시청률 70%를 기록하기란 이제 불가능에 가깝겠지요. 여로가 방영되는 오후 7시 30분은 그야말로 전국이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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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여로'의 한 장면. 중간은 주인공 영구 역을 맡은 배우 장욱제.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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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여로'의 한 장면. 오른쪽은 주인공 '분이'를 연기한 배우 태현실. 영상 캡처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다보니 드라마에 너무 감정을 이입한 나머지 불상사도 벌어졌다고 합니다. 바보 남편을 돌보며 눈물겨운 인생을 사는 착한 분이를 시어머니·시누이와 짜고 괴롭히던 악한(惡漢) 달중(배우 김무영)이 그 불상사의 주인공입니다. 1995년 3월 31일 MBC '그 사람 그후' 프로그램에서는 20여년 뒤 아버지의 금고회사를 이어받아 사장이 된 김무영 씨를 찾아갔습니다. 이 방송에서 김무영 씨는 "여로가 방송되던 1972년 여름 가족과 강릉으로 피서를 갔는데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못 견뎌 곧바로 서울로 돌아왔다"며 "드라마 속 달중이는 인간쓰레기나 다름 없는 인물이었지만 나중엔 분이와 영구를 남몰래 돕는 등 개과천선했다"고 전했습니다. 요즘도 인기 드라마에서 악역을 실감나게 연기하는 배우들이 현실에서 시청자들로부터 종종 꾸지람을 듣기도 하죠. 김무영 씨가 바로 그런 현상의 시초격인 셈입니다.

도움말 홍사흠 혼다 대구지점장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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