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보몰 효과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불확실한 미래, 사이 사이에 고리가 끊어져 있는 기억들, 원인과 결과가 섞여 있는 불안정한 이론. 30년 후에 다가올 국민연금 기금고갈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견해와 주장이 엉킨 듯이 어지럽게 춤을 추지만, 논쟁은 꼬리를 물고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시간이라는 변수가 머리 속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일이다.

시간은 변화에 대한 일종의 가정법이므로,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예측은 가정이 제대로 작동하는 경우에만 유효할 뿐이다. 30년은 고사하고 3개월 후에 벌어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향방 조차도 예측하기 어렵다. 복지와 관련된 논쟁의 시제는 미래형이기 때문이다.

시간·정치·경제 그리고 의료가 뒤섞인 난맥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한 권의 책이 있다. 윌리엄 보몰은 그의 책에서 "비용질병: 왜 컴퓨터는 점점 저렴해지는데, 의료비는 그렇지 않은가?" 라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는 임금의 증가가 생산성의 증가에 비례한다는 가정하에 제조업의 임금상승은 당연하지만, 음악가의 연주나, 교수의 강의, 의료에서의 간호는 30년 전에 비해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데 임금은 제조업에 비례해서 상승하는 원인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는 주된 이유로써 업종 간의 경쟁을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자동차 공장의 높은 생산성에 따른 임금 상승만 있다면, 간호사나 의사는 병원을 버리고 자동차 회사에 취업할 것이고, 병원은 붕괴할 것이다. 이에 대항하여 의료진의 급여를 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경제 발전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는 일종의 질병으로 파악하여 '비용질병'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렇게 생산성 증가가 없는 분야에서 생산성 증가 분야에 비례하여 임금이 올라가는 현상을 저자의 이름을 따서 '보몰 효과' 라고 한다.

의료비는 아프거나 다치지 않았으면 지출하지 않아도 되었을, 치료를 하고서도 기쁘게 낼 수 있는 돈이 아니어서 기쁘지 않은 비용이다. 산업혁명 에너지혁명 등 각종 생산성 증가의 결과로 30년 전엔 상상 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을 벌지만, 의료비·교육비·금융비용과 같은 '비용질병' 역시 증가하였다. 때문에 더 많은 즐거움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충분하지 않다.

물론 교육비나 의료비 상승에는 '보몰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40년 전과 비교해 대학 진학율과 질이 바뀌었고, 의료 서비스 공급의 종류와 전체 총량도 급격히 증가하였다. 50년 전 심장병으로 진단받으면 경구 디기탈리스 서방정 처방전 하나 만을 받았다면, 현대에는 심장 초음파는 물론이요 심장 MRI 검사까지 한다.

미국의 최근 40년 동안 상대적 가격 변화를 살펴보면, 가전제품·자동차·장난감과 같은 공산품은 하락하였고, 식료품 가격은 현상 유지하였으나, 이에 비해 의료는 2배, 대학 교육비는 3.5배 증가하였다.

더웠던 올 여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관련된 주요 의제 중 하나였던 뇌 자기공명영상 적용에 대한 세부 상황과 관련, 정부·의협 및 관련 의학회 간에 매우 치열한 토론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환자들을 본인 부담금 감소 효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과도한 의료보험 지출에 따른 보험 기금의 부실화가 우려된다. 판단의 핵심은 우리 경제의 생산 능력이다.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