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이상헌 체육부장
이상헌 체육부장

1년에 며칠 안 되는 휴가를 궂은 날씨 탓에 망친다면 무척 당혹스럽다. 그것도 모처럼 나선 외국 여행에서라면 자신의 박복(薄福)을 한탄하는 수밖에 없다. 이달 초 떠났던 아내와의 바캉스가 꼭 그랬다.

목적지는 팔라완이었다. '필리핀 최후의 미개척지'답게 청정자연에서만 서식한다는 반딧불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지하 강'(Subterranean River)이 유혹했다. 하지만 연일 비가 내리면서 일정은 모두 취소됐고 시원한(?) 바다에서 물놀이만 하다 왔다.

팔라완이 국제 영유권 분쟁지역인 남중국해 남사군도(南沙群島)에서 가장 가까운 필리핀 최서단 국경이란 점도 내 발길을 이끌었다. 스프래틀리군도(Spratly Islands)라고도 하는 이곳은 중국·필리핀·대만·베트남·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이 서로 소유권을 주장한다. 미국 브랜드인 갭(GAP)은 얼마 전 남사군도, 대만 등이 제외된 중국 지도를 그린 티셔츠를 출시했다가 중국 누리꾼들의 항의에 혼쭐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보다 훨씬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남북 단일팀이 출전한 카누 경기에서다. 지난 26일 드래곤보트 500m 여자 결선에서 남북은 종합스포츠대회 사상 단일팀 첫 금메달을 합작했지만 국기 게양대에는 독도가 누락된 한반도기가 걸렸다.

물론 앞서 18일 개회식 공동입장 때 남북 기수가 들었던 한반도기에서도 독도는 찾을 수 없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역시 독도가 표기되지 않은 한반도기를 썼다. 이에 드래곤보트 금메달리스트들은 독도가 있어야 할 자리에 흰 테이프를 붙인 한반도기를 들고 시상대에 올라 무언의 항의를 했다.

한반도기에 독도를 표시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국력이 약하다는 방증일 뿐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평창올림픽 당시 '정치적 행위'라며 사용을 금지하자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도 이번에 남북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독도가 자국 영토라고 우겨 전략적으로 국제 분쟁으로 만든 일본의 꼼수가 스포츠 외교에서도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28일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억지 주장을 14년째 반복한 올해 방위백서를 각의에서 채택했다. 백서는 '일본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된 채로 존재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한국 광복절이자 일본 패전일인 지난 15일 도쿄 야스쿠니(靖國)신사에 취임 이후 6년 연속으로 공물료를 납부, 공분을 자아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도 일본의 도발에 매번 '깊은 우려'만 표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가가 앞장서 강력한 대응을 하고 민간도 함께 노력해 국제사회에 우리 입장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표명한 대로 2030년 월드컵을 남북이 공동 개최하고, 대구경북 체육인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2030년 아시안게임 지역 유치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한반도기를 국기 게양대 가장 높이 올리고도 찝찝한 기분을 털어낼 수 없을 것이다. 제108주기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을 보내며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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