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아파트값은 거품일까? 아닐까? 대구 아파트값이 수성구, 중구, 남구 등을 중심으로 이상 급등을 지속하면서 거품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거품 논란의 골자는 현재 대구 아파트 매매시장이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이라는 데 있다. 아파트 매매량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거래 절벽' 현상이 심화하는 데도 일부 지역 아파트값은 오히려 더 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매도자 우위 시장의 허점을 노린 '호가 부풀리기'가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거래는 줄어드는데 집값은 들썩
통상 부동산 시장에선 거래량이 줄면 집값이 하락하고 거래량이 늘면 다시 상승한다. 그러나 요즘 대구 아파트 매매시장에선 이 같은 공식이 깨지고 있다. 거래량은 주는데 가격은 오히려 오르는 이례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대구 아파트 매매건수는 2천518건으로 지난 1년간 가장 저조했다. 전월 3천704건 대비 32.01%(1천186건)나 급감했다.
이는 지난해 8·2 대책 이후 정부 부동산 규제가 쏟아지면 매물이 끊긴 탓이다. 4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에 따라 1~3월 매매 거래량이 일시적으로 증가했지만 4월 이후 줄기 시작해 거래 절벽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구·군별로는 수성구, 중구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수성구 7월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376건으로 전년 동월 946건과 비교해 3분의 1 토막이 났다. 중구 역시 지난해 7월 125건에서 지난달에는 80건으로 뚝 떨어졌다.
이처럼 거래량은 점점 줄고 있지만 중구, 수성구 아파트값은 오히려 강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달 중구 아파트값은 유례없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월 대비 0.90% 올라 수성구(0.41%)를 제쳤고, 전국 시·군·구 가운데 서울 영등포구(0.99%) 다음으로 가장 많이 올랐다.
중구 아파트값 급등은 이달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분양권 시장이다. 올해 1월 분양한 e편한세상 남산 분양권 전매 제한(6개월)이 풀리면서다. 이 단지 84㎡ 기준 분양가는 최저 3억9천만원에서 최고 4억700만원으로, 분양 당시 중구 지역 아파트 가운데 처음으로 '분양가 4억원'을 돌파했으며, 1순위 청약 마감 결과 평균 청약경쟁률 346대 1을 기록했다. 올해 분양한 아파트 단지 가운데 전국 경쟁률 1위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매 제한이 풀리자마자 최고 1억8천만원 가까이 웃돈이 붙었다. 평균 1억5천만원 안팎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며 "지난 2016년 분양한 남산역 화성파크드림 분양권 가격까지 덩달아 치솟고 있다"고 전했다.
수성구 역시 이달 들어 아파트값이 다시 뛰고 있다. 8월 셋째 주 현재 이달 누계 상승률은 0.62%로 지난달 상승률(0.41%) 대비 0.21%포인트나 올랐다.
수성구 대형 아파트의 대장주로 꼽히는 '두산위브더제니스'는 '거래량과 집값'의 함수 관계를 깬 대표적인 단지다. 올해 2분기 이 단지 매매거래량은 6건에 불과하다. 지난해 2분기 40건과 비교해 극히 저조한 수치다.
반면 매매가는 이상 급등 양상을 보인다. 전용면적 137㎡ 기준으로 올해 2분기 실거래가는 15억원대(매매건수 3건)로 지난해 2분기 10억원대(매매건수 13건)과 비교해 평균 5억원이나 올랐다.
일대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대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거래량이 줄어도 가격은 계속 치솟고 있다. 한두 명이 웃돈을 줘서라도 투자에 나서면 급등한 호가가 실거래가가 되고, 이는 다시 호가 상승을 부른다"고 했다.
◆"2억원 더 높게"…호가 부풀리는 집주인
대구 수성구 공인중개사 A씨도 최근 집값 상승의 주범 중 하나가 호가를 인위적으로 올리는 집주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심리로 호가를 높여 부르면 다른 매물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어쩌다 집이 팔리면 결국 그 가격 선에서 시세가 굳어진다는 것이다.
A씨는 "요즘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매물 가격을 보면 기가 찬다. 일단 지르고 보자는 건데, 너도나도 지르다 보니 시장 거품과 착시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달 22일 네이버 부동산에 오른 수성구 수성1가 B아파트 전용면적 84㎡형 매물 가격은 무려 9억8천만원이다. 같은 단지, 같은 주택형의 마지막 실거래가는 지난달 7억500만원이었고, 올해 최고가는 5월 7억8천만원이었다. 불과 2, 3개월 새 2억, 3억원이나 뛰었다. 인근 공인 중개사는 "호가 부풀리기가 도를 넘어섰다"며 "'전형적인 호가 띄우기용 매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호가 부풀리기는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최근 실거래보다 1억, 2억원씩 뛰기 일쑤다. 문제는 이 같은 호가 끌어올리기가 시장에서 먹히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규제로 매물이 귀해지면서 매도자 우위 시장이 형성된 탓이다. 요즘 수성구 집값은 집주인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이렇다 보니 같은 단지, 같은 면적의 아파트인데도 실거래는 천차만별이다. 84㎡ 기준 B아파트의 5월 기준 또 다른 실거래가는 6억원으로 같은 달 최고가 7억8천만원과 1억 8억천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동이나 층, 향, 조망권에 따라 같은 면적이라도 가격 차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례적 현상이다.
공인중개사 관계자들은 "집주인이 부풀린 호가가 같은 아파트 단지뿐 아니라 주변 단지까지 가격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했다.
◆'거품 붕괴' vs '상승세 유지'
이처럼 거래절벽과 호가 부풀리기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대구 아파트값 거품이 한순간에 가라앉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과거 사례에 비춰 봤을 때 이 같은 이상 현상은 오래갈 수 없다고 진단한다. 거래 증가→가격 급등 이후 거래 감소→가격 정체→거래 급감→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 부동산 순환 구조가 당연하다는 얘기다. 집값이 너무 오르면 매수세가 따라붙지 않아 거래량이 더욱 꺾이고, 결국 집값은 조정기에 진입한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이미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상황에서 올 하반기 금리 인상 가능성, 내년 종합부동산세 인상, 정부 추가 규제 등 다양한 변수가 남아 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이달 27일 서울 4개 구 등을 투기지역으로 추가 지정하면서 대구 지역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만 국토부는 대구 중·남·수성구 3개 구를 '집중 모니터링 지역'으로 지정해 과열 우려가 커질 경우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대구가 정부 규제를 일단 피해갔지만 집값 과열 양상을 반드시 잡겠다는 정부 기조상 언제라도 추가 규제 가능성은 남아 있다.
지역 공인중개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청약조정대상지역 지정에 따른 양도세 중과다. 업계 관계자는 "청약 열기가 뜨거운 수성구, 중구 경우 정부 추가 규제에 따른 세금 부담이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현재 대구 아파트 시장을 거품으로 진단하기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분양대행사 (주)대영레데코 송원배 대표는 "정부 규제로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시대가 열리면서 상위 10~20%가 대구 부동산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막대한 유동 자금도 여전히 갈 데가 없다"며 "대형-소형, 새집-헌집 등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순 있지만 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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