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갤러리]김득신의 야묘도추

김득신 작
김득신 작 '야묘도추'

<11>김득신의 野猫盜雛(야묘도추)

살구나무에 꽃망울이 움트는 화창한 봄날 도둑고양이가 병아리를 잽싸게 채어 달아난다. 놀란 어미닭은 상대가 고양이라는 사실도 잊은 듯 새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무섭게 뒤를 쫓고, 마루와 방에 있던 주인 부부는 하던 일을 팽개치고 한꺼번에 내달으며 병아리를 구하려 한다.

마루 위에서 동동걸음을 치는 아내의 동작과 탕건이 굴러 떨어지는 줄도 모른 채 장죽으로 고양이를 후려치려는 남편의 동작이 그림에 생생한 활기를 불어넣는다. 굴러 떨어진 자리틀로 보면 남편은 자리를 매고 있었던 듯하고, 아내가 맨발인 걸 보면 아마도 길쌈 중이었던 듯하다.

두 날개와 꼬리깃을 있는 대로 활짝 펴고 온 몸의 깃털을 곤두세운 채 무서운 기세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며 고양이에게 달려드는 어미닭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은 꼬꼬댁 소리가 들릴 만큼 박진감 넘친다. 반면 장죽이 미치지 않을 만큼 잽싸게 달아나는 검은 고양이는 이미 병아리 한 마리를 입안 가득히 물고 있는데, 나름 여유로운 자세로 주인 부부의 눈치를 살피며 속도를 조절하는 듯하다.

이 그림은 김득신의 풍속화를 모아놓은 화첩 '긍재풍속도첩'(兢齋風俗圖帖·보물 제1987호) 속에 수록되어 있다. 화첩의 표제 '긍재필풍속도'(兢齋筆風俗圖)를 오세창이 썼는데, 화첩의 말미에 김득신의 그림에 대한 발문도 기록했다.

"긍재(김득신의 호)가 그린 풍속도는 세상에 많이 있지 않은 작품이다. 사람들은 모두 단원 풍속도를 첫 손가락으로 꼽지만 그러나 복헌선생 연원으로부터 같이 나왔으니 함께 마땅히 보배로 삼아야 할 것일 뿐이다. 위창 노부가 쓴다."

오세창은 김득신이 그의 숙부 복헌(復軒) 김응환(金應煥, 1738-1789)을 비롯해 조선후기에 화원을 대거 배출한 대표적 화원 가문 개성(開城) 김씨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화원 가문 출신으로 타고난 그림 실력을 바탕으로 숙부와 김홍도에게 그림을 배운 김득신의 작품으로 한적한 농가에서 일순간에 벌어진 소동을 표정까지 정확하게 포착하여 그려낸 최고의 풍속화이다.

오세현(간송미술문화재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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