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비닐 라떼 한 잔 드실래요?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비닐 라테 한 잔 드실래요?

'손님 여러분, 우리 카페에서 새롭게 선보일 메뉴는 태평양 한가운데서 퍼 올린 35년산 비닐 폐기물을 주성분으로 하는 비닐 라테랍니다.' 하면서 신메뉴를 소개하는 카페가 있다면….

우리 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이름은 올리브나무카페다. 우리 동네에서는 주민들로부터 꽤나 사랑받는 카페다. 메뉴를 보면 커피와 케이크를 포함하여 63가지나 된다. 라테만 해도 카페 라테, 바닐라 라테, 녹차 라테, 고구마 라테, 홍차 라테, 오곡 라테, 팥 라테, 민트초코 라테 등 8가지다.

대표목사인 내가 사장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운영은 매니저에게 일임했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내가 명실상부한 사장이 되어 이 많은 메뉴를 직접 주문받고 만들어 서빙하겠다는 다부진 꿈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는 나만의 새로운 메뉴도 개발하겠다는 소망도 있다. 그 꿈의 하나가 '비닐 라테' 개발이다. 아니 당장 메뉴에 첨가할 수 있는 라테도 하나 있다. '낙동강 표 녹조 라테'가 그것이다.

바닷가에서 죽은 채 발견된 갈매기의 위에서 플라스틱 조각들이 나왔다. 플라스틱 장난감, 일회용 라이터, 음식물 포장지가 가득 차 있었다. 이제 자연은 경고가 아닌 재앙을 통해 사람에게 반격과 보복을 시작했다. 그동안 자연의 신음을 무시하고 흘려버렸던 사람에게 이제는 도저히 흘려버릴 수 없는 고통으로 갚아주고 있다.

인류는 연간 3억톤의 플라스틱을 생산한다. 그중 8백만톤 이상이 바다로 유입된다. 현재까지 인류가 생산한 플라스틱의 누적량은 8조kg 이상이고, 현재 거의 전량이 쓰레기의 형태로 지구상에 쌓여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연 216억개의 플라스틱 제품을 소비한다. 국민 일인당 연 460개의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고 버린다.

이 중에서 1억 5천만톤 이상의 플라스틱이 바닷속에 이미 유입되었다. 하와이 인근에 남한 면적 14배 되는 쓰레기 섬이 형성되었다. 전 세계 해안에 30m 높이의 쓰레기 벽을 쌓을 수 있는 양이다. 진작 알았다면 이 폐기물들을 집적하여 웬만한 쓰나미도 막을 수 있는 해안 방어벽이라도 만들 것을 그랬다.

바다는 정직하다. 바다는 침전물의 마지막 저장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대로 간직한다. 바닷속으로 오랜 시간 흘러 들어간 많은 양의 비닐이 분해되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다의 생명체가 바다 공해 물질의 정화기가 될 것이다. 바다의 생물이 공해의 피해자로서 죽임당하듯, 사람 또한 자신이 버린 공해 물질을 자신의 세포 속에 가득 담으며 죽게 될 것이다.

사람은 생명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렸다. 자연을 착취하고 학대했다. 사람과 자연이 피조물로서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되었다. 우리가 자연에 자비를 베풀지 않으면, 자연도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인류는 공감 능력을 잃어버렸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 동물, 식물, 땅과 바다, 우주 공간을 마구잡이로 사용, 이용, 과용, 오용, 악용, 학대한다.

우리가 생명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렸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관심사가 경제적인 이용 가치에만 머물러 있다. 이제 그동안 무시되었던 생명의 관점에 무게를 두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긴급한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카페 메뉴에 태평양 비닐 라테, 낙동강 녹조 라테를 넣으면 어떨까? 우리 후손들이 비닐 라테에 고문당하듯 매일 마시게 될 날이 곧 올 것 같다. 후손들이 마시게 될 음료를 조상인 우리가 미리 맛이라도 보아야 하는 것이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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