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 논쟁이 여전히 뜨겁다. 개인, 자유, 민주화 시대 국가주의라니, 해묵은 논쟁일까 지나치려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견이 분분한 만큼 살펴보게 됐다. 국가주의의 사전적 의미, 사상과 이념에 따른 다양성, 역사적 유래까지는 논외로 치자.
요즘 우리 사회의 현실과 논의의 쟁점을 갈음해 볼 때, 야당 비대위원장이 '국가주의'를 꺼내든 배경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국가가 없어도 될 곳엔 있고, 있어야 할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비단 이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긴 하나, 사회 각계각층에서 줄기차게 이어지는 논쟁을 보며 오래전 발표된 소설 속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 저). 소설 속 엄석대와 무리는 시골 읍 작은 학교를 주 무대로 등장한다. 그곳에서 본인들의 힘으로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의 단단한 성을 쌓고 모든 것을 그들만의 방식대로 좌지우지한다. 아주 사소한 학급의 일까지도 엄석대 체제의 시스템 안에서 돌아간다.
말할 것도 없이 학교는 학교답지 못했다. 건전한 문제의식도, 비판도 사라진 교실. 학교는 그렇게 오랜 시간 적체된 수많은 문제로 고이고 썩어들어 갔다. 다수의 학생도 신규 담임교사가 부임하기 전까지 엄석대와 잔당의 위력과 횡포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스스로부터의 반성과 문제의식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소설 속 이야기를 반추하며 국가주의가 다시 떠올랐다. 어딘가 모르게 소설 속 작은 학교는 2018년 대한민국의 시국과 많이 닮았다. 이전 정권 적폐청산에 날이 새고 지더니 어느덧 정권 2년 차가 되었으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은 촛불 정권에 걸었던 기대만큼 우려가 크다.
특히나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 성장은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롭다. 의도한 바와는 달리 저소득층 일자리와 소득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소득분배는 통계가 작성된 이래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으며, 체감실업률도 역대 최고조의 상황을 보여준다.
정부가 바라는 것이 '소득'과 '성장'없는 소득주도성장, '일자리'가 없는 소득주도 성장이 아니라면 지금쯤 경로수정을 해야 마땅하나, 26일 발표된 청와대 정책실장과 기자간담회 내용을 살펴보면 염려가 된다.
고용᠊소득분배 지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어 정확한 원인 규명과 그에 맞는 처방이 요원함에도 정책 기조 변화 없이 더욱 과감하게 속도를 내겠다는 것, 포장은 재정확대지만 실상은 세금 때려 붓기 수준의 땜질식 대처에 급급한 것이 실정이다.
'한강의 기적' 이라 불릴 정도로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며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발전을 이룬 대한민국 경제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도 모른 채, 고장 난 철로를 무작정 달리기만 하는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가 된 형국이다.
정확히 1년 3개월이다. 일자리 늘린다고 쓴 국가 예산이 54조원이 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악화를 넘어 참사 수준의 성적표를 받았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낙제를 받은 정책을 지금처럼 끌고 갈 수는 없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명약관화일 것이다. 스스로 성역을 허물어야 한다.
모든 것을 국가가 관장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큰 정부는 필연적으로 시장의 왜곡을 초래하고 자생적 선순환 경제시스템을 교란한다. 망국적 포퓰리즘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심심찮게 목도할 수 있다.
이것 아니면 저것,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이분법적 사고로도 문제해결은 소원하다. 소득주도 성장에 문제를 제기하는 야당과 국민들에게 이전 정권을 탓하고 그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회귀하자는 거냐고 되묻는 수준은 뛰어넘어야 한다.
좌우 날개 양쪽의 균형점이 맞아야 새도 날 수 있다. 정치도, 경제도, 국가운영도 마찬가지다. 야당과의 협치가 중요한 이유다. 국가가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고, 또 잘해야 한다는 국가 만능주의로는 또 다른 일그러진 영웅을 만들 뿐이다.
경기선행지수를 포함해 각종 경제지표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일단 멈추라는 신호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수출주도 성장형의 대한민국 경제에는 맞지 않는 옷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외무역 파트너인 미국, 일본은 이미 완전고용에 가까울 정도로 일자리가 넘쳐 때아닌 경제호황 국면을 맞고 있다.
총체적 난국 속 밥상머리 물가조차 심상치 않다. 경제는 불황인데 물가는 저 혼자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민생경제 파탄이 따로 있지 않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무서운 덫이 두려운 이유다.
군주민수(君主民水), 강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 불과 1년 전 경험한 사실이다. 큰 정부는 크게 망한다는 말이 그저 누군가의 기우이길 빈다. 시간이 없다.
매일신문 디지털 시민기자 남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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