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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기관, 헌팅하듯 찾아내고 사 가, 미술'사진작품 타지 유출 지금도 심각

외지기관, 헌팅하듯 찾아내고 사 가

대구 원로음악인 고 이점희 영남대 교수의 아들 재원 씨가 피아노를 비롯한 이 교수의 유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재원 씨가 들고 있는 서류는 1955년 매일신문 주최
대구 원로음악인 고 이점희 영남대 교수의 아들 재원 씨가 피아노를 비롯한 이 교수의 유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재원 씨가 들고 있는 서류는 1955년 매일신문 주최 '이점희 독창회'를 알리는 팜플렛이고, 유품 피아노도 1930년대에 독일서 생산된 '렌너' 제품으로 골동품적 가치가 높다. 한상갑 기자

지난 2010년 '정점식 화백 유품이 유출됐을 때 남문시장 고서점에서 정 화백의 서적을 발견한 학강미술관 김진혁 대표가 다리미로 다리고 한지(韓紙)로 수선해서 '정점식 아카이브 특별전'을 열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역 문화계에선 아카이브가 주요 의제로 다뤄지게 되었다.

9년이 지난 후 대구 원로예술인들의 유품, 유작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마구잡이식 유출은 개선되지 않았다. 취재진이 몇몇 원로예술인과 가족을 만나본 결과 지금도 많은 유품들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창고에 방치돼 있는가 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고물상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서울 컬렉터들이나 학예사들이 대구 화랑을 누비며 사냥하듯 근대미술품을 사들이는 현상도 여전했다.

◆원로음악인 유작, 유품 수 십 년째 방치

지난 달 30일 대구 원로음악인 고 이점희 교수 아들 재원 씨 집을 찾았다. 79㎡(24평) 남짓한 아파트 곳곳엔 이 교수의 유품들이 널려 있었다. 이미 장식장, 선반, 베란다까지 가득 차서 생활이 불편할 정도 였다. 여기엔 1950년대 당시 오페라복, LP판, 오페라 대본도 있었고 1930년대 독일에서 생산됐다는 '린너'(Renner)피아노도 있었다.

어머니가 사는 본가는 유품들이 창고처럼 가득 차 취재, 촬영이 힘들 정도였다. 재원 씨는 "선친이 보시던 책 1트럭분과 바리톤 취입 LP 등 수백점이 이미 유실됐다"며 "선친의 자료 가치를 알아보고 활용할 곳 이 있다면 언제든지 기증 하겠다"고 말했다.

지역 음악의 자부심이 이렇게 홀대받는 상황에서, 유족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유품을 지켜왔지만 문제는 앞으로 향방도 막막하다는 것이다.

1926년생 이기홍 선생은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전신인 대구현악회를 만들었고, 대구시립교향악단 초대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그는 1957년 6월 2일 창립한 대구현악회 창립 포스터(30부 한정판)를 소장하고 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향후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1926년생 이기홍 선생은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전신인 대구현악회를 만들었고, 대구시립교향악단 초대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그는 1957년 6월 2일 창립한 대구현악회 창립 포스터(30부 한정판)를 소장하고 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향후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매일신문 권정호 전 사진부장도 "많은 원로작가들이나 가족들이 집에 몇 박스씩 자료들을 쌓아두고 있다"며 "이 자료들 처리방법을 문의해올 때 상당히 난처하다"고 말했다.

기다리다 못한 몇몇 작가들은 서울의 전시기관이나, 컬렉터들이 기증을 문의해오면 뒤도 안돌아보고 줘버리기 일쑤라는 것. 대구에서 방치되거나 사장되는 것보다 전문기관에 보내는 것이 작가를 위해서라도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미술, 사진작품 타지 유출 지금도 심각

수차례 '최계복, 박현기 유작들 외지 유출'에서 지적했듯이 지역에서 아카이브 구축이 답보 상태를 거듭하면서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분야는 미술, 사진 쪽 이다. 자료의 유출 차원을 넘어 유작이나 작품 유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009년 '대구의 근대미술전'에 참여했던 한 미술계 인사는 지역 출신 근대 화가들의 작품을 서울에서 빌려오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친정 작품'을 고향으로 모셔오는데도 적잖은 '서류품'과 비용이 들었고 그 상실감이 컸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전시회 후에도 발생했다. 당시 대구 소장품으로 전시했던 작품 중 상당수가 몇 년 후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려있었던 것. 그 관계자는 서울에서 근대미술 컬렉터나 학예사들에게 대구는 사냥터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름 있는 작가들이나 유족에게 접근해 '전국적인 작가'로 조명하겠다는 말로 유혹하며 헐값에 가져간다는 것.

지역에서 근대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했던 대백프라자갤러리의 김태곤 팀장은 "1960~70년대 약전골목이 활성화됐을 때 집집마다 이인성, 이쾌대 등 유명작가 작품이 한두 점씩 걸려있었다"며 "먼저 가치를 알아본 서울의 수집상들이 헐값에 가져갔다"고 말했다.

아카이브 구축 부진 탓에 사진 장르도 큰 피해를 봤다. 이미 10년 전쯤 서울의 대형 전시관이나 대학들은 '근대 사진작가전'을 경쟁적으로 벌이면서 자신들이 구축한 아카이브에 근거해 지역의 웬만한 사진자료들을 그야말로 쓸어 담듯 가져갔다. 대구사진협회 관계자는 당시 서울 컬렉터들이 유족들에게 '글로벌 콘텐츠로 띄워 주겠다'며 인수 서류도 쓰지 않고 그냥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대구시나 관계기관이 미리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지역 근대 화가들의 작품 목록이나 유작 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면 이런 낭패는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원로예술인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데는 저작권, 예산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문제가 돼온 아카이브 구축 문제에 있어서도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앞으로 기본 틀을 만들고 콘트롤타워 마련 같은 정책적 대안에 집중하겠다"고 설명했다.

◆ 박스/ 대구 미술 서울 유출 막자, 30여 년 전부터 사들였죠/대구근대미술 수집 남성희 총장

대구보건대 남성희 총장
대구보건대 남성희 총장

"대구 근대 화가들의 작품이 서울 컬렉터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데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요."

대구보건대 남성희 총장은 30여 년 전부터 고미술, 고서, 미술작품들을 수집해왔다. 특히 근대 미술에 관심을 기울여 지역대미술화가들의 작품을 상당수 소장하고 있다.

처음엔 그냥 그림이 좋아 취미로 시작했다. 초기엔 이인성, 주경, 이강소, 황술조, 손일봉 등에 관심이 많았고 점차 변종하, 이강소, 김종복 작가 등 근현대 작가로 범위를 넓혀갔다.

2000년 이후 서울 화랑에서 이상한 흐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대구 근대 작가들의 작품이 부쩍 눈에 띄기 시작한 것. 화랑이나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근대미술전'을 잇따라 개최하면서 초창기 한국 화단의 산실이었던 대구 작가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 이인성, 이쾌대, 서진달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대거 서울로 팔려갔다.

서울에서 대구를 타겟으로 삼고, 이들이 대구 화랑가를 '활보'하는 사이 지역 화랑에서도 방어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백프라자갤러리, 동원화랑 등이 공세적으로 매집을 시작했다.

같이 '대구 작가 유출 저지'에 나섰지만 남 총장의 구매 패턴은 조금 달랐다. 다른 화랑들이 대구에서 유통되던 근대작가작품들을 방어적 차원에서 수집했다면 남 총장은 이미 대구에서 서울로 팔려간 지역 근대화가 작품을 역으로 사모으는 방식이었다.

남 총장은 '소장은 하되 팔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정해놓고 있다. 이렇게 수집한 근대미술품들을 앞으로 인당아트홀 전시회를 통해 시민들에게 널리 알릴 예정이다.

남 총장은 대구시의 아카이브 정책에 대한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대구시는 우선 작고화가나 원로작가들 작품 목록부터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대구시의 아카이브 사업이 대부분 유명화가 위주로 진행돼 화단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고 화가들의 작품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는 것. 작품 리스트라도 먼저 만들어야 어떤 작품이 거래되고 유출입되는지 현황 파악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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