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악사
둘만 모여도 노래방에 간다. 이 덕에 전국노래자랑 출연자들은 애고 어른이고 멜로디 좋고 리듬 좋다. 담임선생이 점심 도시락을 검사하던 무렵 우리나라 술집은 막걸리가 주된 종목이었다.
우리말에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다. 말 타면 마부 잡히고 싶고, 한잔 술이라도 여자가 따르는 술을 마시고 싶고, 취하면 노래 부르고 싶고, 반주가 있으면 더욱 좋은 게 인지상정이다.
옛 서민들의 술좌석 노래는 유행가였다. 노래도 생물이라 시기에 따라 형식이나 가사도 달라진다. 일제 강점기 유행가는 눈물 젖은 두만강, 울며 헤진 부산항, 북국은 5천키로, 나그네 설움, 애수의 소야곡, 추억의 백마강 그리고 감격시대가 인기 곡목이었다.
해방이 되면서는 가거라! 삼팔선, 귀국선, 신라의 달밤, 꿈에 본 내 고향이 유행하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단장의 미아리 고개, 전선야곡,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등이 주당들의 인기곡들이 된다.
서양군인들이 들어오면서 우리 유행가에 서양 버터 냄새가 섞인다. 샌프란시스코, 홍통아가씨,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아리조나 카우보이가 나오고 댄스곡으로 댄서의 순정, 비의 탱고, 도라지 맘보가 등장한다. 이때까지 성인들은 같은 취향의 노래를 부르다가 60년 대 부터는 '노론소론'으로 갈린다. 나이든 축은 여전히 트롯으로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과 돌아와요 부산항을 부르는데 젊은이들은 세노야, 친구, 아침 이슬 등의 새로운 감각의 노래를 부른다. 70년 대 이후 술집 노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고유의 유행가에다 샹송, 칸초네, 팝송 등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초창기 가요의 악기는 젓가락이었다. 주점의 작부와 수작(酬酌)을 할 때도, 친구들끼리 노래 부를 때도 장단은 젓가락이다. 60년 대 막걸리에서 맥주로 주종이 변할 때 악기가 등장한다. 아코디언이 나왔다. 대구 최고의 아코디언 주자 '조경제'가 60년 초 만경관에서 최무룡의 '외나무다리'를 반주한 뒤 서민들의 주점에도 서서히 젓가락이 살아지고 악기가 등장한다.
오입쟁이 한량들은 오비카바레, 대화카바레, 대안카바레, 남남카바레를 누비며 주색잡기, 가무음주를 즐겼다. 70년대 까지 향촌동 술집에는 떠돌이 아코디언 악사들이 많이들 다녔다. 이들이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호객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쓰러웠으나 능력 있는 악사들은 요정을 다니며 전두환, 노태우대통령 술자리에도 불려가고 봉급쟁이의 10배 넘는 돈을 벌었다고 한다.
박대통령이 서거하는 무렵 떠돌이 악사들도 뜸해진다. 대신에 방석집이나 룸살롱에 기타 치는 전용 악사와 양주가 등장한다. 일본에서 가라오케가 들어왔다. 나중에 노래방이란 이름으로 명칭을 바꾸고 술 마시거나 안마시거나 전 국민 애용 악사 노릇을 하게 되었다.떠돌이 악사들은 없어졌다.
그러나 그들이 연주하던 가요는 여전히 살아 남아있다. KBS 전국노래자랑, 가요 무대에 온 국민이 열광하고 지방의 소규모 축제에도 가요는 기세등등하다. 일본의 NHK에서도 일요일 전국노래자랑을 하며 가요무대도 있다.
가요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원조타령을 한다. 자동차는 미국에서는 다임러, 독일에서는 벤츠가 거의 동시에 발명했다. 가요도 같은 시대 같이 탄생한 것으로 생각이 된다. 떠돌이 악사가 아코디언을 메고 술집을 기웃거리거나 혹은 기타와 반주기를 끌고 술좌석에 오던 가슴 짠한 풍경이 사라져 한편으로는 잘 되었다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객이 살아진 향촌동이 삭막하게만 느껴진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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