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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해상 공항의 굴욕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간사이(關西)국제공항은 오사카·교토에 갈 때 이용하는, 친숙한 공항이다. 세계 최초로 바다를 매립한 인공섬 위에 세워져 있어 푸른 바다와 반짝이는 햇살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그렇지만, 이 공항은 일본의 자부심이면서도 '돈 먹는 하마'라는 비아냥을 동시에 받고 있다. 자부심은 일본의 첨단 공법을 전 세계에 알린 대표적인 구조물이라는 점이다. 1987년 공사를 시작하면서 '자연에 도전하는 토목공사'로 불릴 만큼 온갖 신기술과 아이디어가 동원됐다. 태풍, 지진은 물론이고 무른 지반을 견딜 수 있는 공항 건설이 목표였다. 가장 큰 난관은 수심 20m의 연약 지반에 구조물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었다. 공학자들은 직경 40㎝, 길이 20m의 모래 기둥 220만 개를 설치해 펄 속의 물이 빠지도록 설계했다.

지반 침하를 예상하고, 건물마다 침하 차이를 고려해 900개가 넘는 기둥의 높낮이를 조절하도록 한 것은 첨단 공법의 백미다. 내려앉은 건물 기둥에 금속판을 끼우는 방식으로 높이를 유지한다. 1995년 한신 대지진 때 유리창 한 장 깨지지 않고 끄떡없이 버텨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 같은 첨단기술로 2001년 미국 토목학회가 주는 '20세기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상'을 수상했다. 1.6㎞에 이르는 길쭉한 제1터미널은 1994년 개항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장 아름다운 터미널로 평가됐다.

첨단 기술과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느라 무려 200억달러(23조원)가 들어갔다. 공항 이용료가 인천공항보다 2배나 비쌀 수밖에 없었고, 한때 항공사로부터 외면받았지만 저가항공 특화 전략으로 되살아났다. 자민당 의원은 투자 대비 효용성을 들어 '바보 공항'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일본 기술의 자부심인 간사이 공항이 4일 태풍 '제비'에 의해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활주로는 물에 잠기고, 연륙교는 유조선과 부딪혀 교통마저 두절됐다. 3천 명이 고립되는 아수라장을 연출했으니 일본의 자존심은 완전히 바닥에 떨어졌다. 한국에서도 가덕도공항 같은 해상 공항 건설의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아무리 첨단 기술과 자금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자연을 이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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