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험한 기도처 대구 앞산'…곳곳에 타다만 양초와 쓰레기 가득 몸살

골짜기나 바위틈에서 기도·제사…산불 위험 크지만 단속 어려워

이미 그을린 흔적이 넓게 퍼져있는 앞산 왕굴 안 에는 기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초와 향로, 성냥갑이 널려 있었다. 이주형 기자.
이미 그을린 흔적이 넓게 퍼져있는 앞산 왕굴 안 에는 기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초와 향로, 성냥갑이 널려 있었다. 이주형 기자.

대구 앞산이 기도나 제사를 지내는 무속인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험한 기도처라는 인식 탓에 골짜기나 바위틈 등에서 초를 켜고 기도나 제사를 올리는 무속인들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타다남은 양초나 향, 음식물 등 쓰레기가 넘쳐나 화재 위험이 높고 자연환경을 훼손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8일 오후 찾은 앞산 왕굴. 성인 남성 3명 정도가 들어갈만한 작은 바위 틈 안에서 촛불과 향이 타오르고 있었다. 바위 틈 천장은 양초가 뿜은 그을음이 시커멓게 묻어있었다. 틈 안에는 향로뿐만 아니라 성냥갑, 깔개, 빗자루와 쓰레받기 등이 널브러져 있었고, 버려진 검은 비닐봉투 속에 타다만 양초가 가득했다.

왕굴은 927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벌인 공산전투에서 패한 뒤 피신한 곳으로 유명하다. 남구청이 펴낸 '앞산여행 왕건이야기'의 코스로도 지정된 장소지만 관리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등산객 김봉욱(66) 씨는"10년 째 앞산을 오르내리는데, 올 때마다 왕굴과 산자락 곳곳에서 촛불을 본다. 산불이 날까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무속행위가 실제로 산불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2월 21일 오후 1시 40분쯤에는 앞산의 남부도서관 뒤편에서 불이나 산림 0.03 ha를 태우기도 했다. 소방당국은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막걸리와 양초 등에 미뤄 무속인이 촛불을 켜고 고사를 지내다가 낙엽에 불이 옮겨 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산에 무속인이 몰리는 이유는 앞산의 풍수지리적 이점 탓이다. 앞산은 산줄기가 광범위하고 신천 및 용두산이 맞닿아있어 영험한 터라는 것이다.

무속인 김모(55) 씨는 "과거에는 앞산 용두방천골이 정말 유명했는데 지금은 개발되면서 없어졌다"며 "그래도 안지랑골 입구에 선황나무, 왕굴 등 기운이 좋은 곳이 많아 아직도 촛불을 켜고 무속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앞산 안지랑골관리사무소 뒷편에는 직원들이 수거한 양초들이 가득했다. 이주형 기자.
앞산 안지랑골관리사무소 뒷편에는 직원들이 수거한 양초들이 가득했다. 이주형 기자.

앞산공원관리사무소는 부족한 인력으로 무속 행위를 단속하고 쓰레기를 수거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안지랑골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직원들이 수거한 양초만 매일 6~7봉지씩 쌓일 정도로 쓰레기가 많다"며 "입산을 막을수도 없고, 화재 위험에 대비한 계도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는 "앞산은 무당골이라는 지명이 있을 정도로 과거부터 무속행위로 유명했다"며 "무조건 막기보다는 구역을 정하고, 관련 규정을 엄격히 적용해 관리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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